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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840미터의 루카라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보행기점이자 베이스캠프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이 있는 곳이다. 해발이 높고 기상변화가 심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최고봉 탐험가들에게 헬리콥터구조는 최후의 수단이다. 네팔은 911 응급구조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고 전문 수색구조대도 없어 에베레스트에서 위험이 발생하면 같은 등산대의 대원들과 가이드, 마음씨 좋은 주민들, 먼 곳에서 온 탐험회사를 제외하고는 헬리콥터가 마지막 희망이다.
2012년까지 네팔 전역의 헬리콥터는 25대, 그 중 군용은 한 대에 불과했다. 따라서 지진발생 후 거의 모든 상업회사의 헬리콥터가 고산지대의 부상자들을 구조하는데 동원되었다.
스위스의 비행사 유에르(Juerg)는 “극지구조는 매우 위험한 작업이죠. 기온과, 해발, 풍력 등의 여러 문제들을 고려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1만5천시간 비행경험이 있으며 네팔에서 가장 큰 헬리콥터회사의 최우수 비행사 중 하나이다.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이 가시도 인데 구조 첫 날 가시도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며 이륙 후 루카라공항에 안개가 짙게 깔려있어 몇 시간 동안 다음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15분 후 유에르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그는 보이는 광경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베이스캠프는 아수라장이었다. 곳곳에 텐트가 부서져 있고 사람들이 힘겹게 폐허더미를 파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었다. 유에르는 “산지구조 20여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고백했다.
이착륙장의 조건은 비(非)인력적인 것에 따라 결정된다. 지표면의 상황뿐만 아니라 기류와 쌓인 눈 아래 있는 것이 헬리콥터를 지탱할 수 있는 바위인지 눈인지, 주변에 소규모 눈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의 잠재적인 위험까지 고려해야 한다. 다행히 유에르의 첫 번째 비행은 베이스캠프 근처에 착륙했다.
그가 문을 여는 버튼을 누르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상자를 헬리콥터 가까이로 올리고 있었다. 유에르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두 명 밖에 태울 수 없다고 표시했다. 가장 위급한 환자부터 비행기로 옮겼는데, 한 명은 머리에 중상을 입었고 한 명은 전신에 크게 골절을 당했다.
두 사람 모두 의식불명상태로 언제든 사망할 수 있었다. 나선프로펠러 굉음의 중간중간 유에르는 의사를 찾으며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세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유에르는 “정말이지 좋은 뜻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신경 쓸 겨를이 있나요? 안전하게 비행을 보장하기가 매우 어려워졌어요.” 라고 말했다.
루카라공항의 열악한 기상조건으로 헬리콥터구조가 카트만두공항으로 옮겨졌다. 피쉬테일에어의 또 다른 비행사 아쉬시 세르찬(Ashish Sherchan)은 ‘9N-AKA’편 ‘Squirrel’ B2형 헬리콥터를 몰고 에베레스트의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1시간 비행 끝에 비로서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구조는 중상자, 경상자, 시체, 기타의 순서로 이뤄집니다.” 비행경력 7,000시간 이상의 아쉬시가 말했다. 오후 3시 피쉬테일에어가 세 번째 “9N-AII”편 Bale 206BIII형 헬리콥터를 보냈다.
그러나 지진 후 첫날은 기상조건으로 더 높은 1, 2 캠프까지 가지 못했다. 통신정보를 통해 베이스캠프에서는 150명의 등산객들이 산 위에 남아있음을 파악하였다. 베이스캠프의 부상자 51명 만 지진 후 첫째 날에 구조되었으며 그 중 중국등산대 대원 8명은 모두 중`경상환자였다.
카트만두에서 중국 국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 리량(李亮) 역시 환자 우송대원 중 한 명 이었다. 그는 네팔에 있는 유일한 중국등산협회 회원이다. 중국등산협회 왕용펑 부대표는 ‘실크로드’대원 황춘구이의 전화를 받고 즉시 리량과 연락을 취했다.
그는 “여성등산대의 대원 8명이 부상을 입었고 나머지는 안전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리량이 잘 협조하여 8명의 대원들을 구조하고 조국에 위문을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협조를 통해 리량은 결국 특허를 얻어 피쉬테일에어 헬리콥터를 타고 카트만두에서 구조지역으로 향했다. 그는 4월 26일 오전에 루카라공항에 도착해 중국부상자들이 모두 베이스캠프에서 판라이쳬로 이송되었다는 것을 파악하고 중국부상자들을 보살피기 위해 신속히 이동하였다.
맑은 날씨보다 비행사들의 사기를 돋우는 것은 없다. 지진 후 이틀째인 4월 27일. 가시거리가 높은 좋은 날씨로 헬리콥터구조가 활기를 띠었다. 피쉬테일에어 헬리콥터 세대 뿐만 아니라 기타 항공사의 헬리콥터 두 대 역시 부상자이송작업에 투입되었다.
아쉬시는 “5대의 헬리콥터가 일을 정확히 분담했다.”며 “피쉬테일에어의 세 대는 1, 2호 캠프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베이스캠프로 이송하고, 나머지 두 대는 베이스캠프와 루카라를 왕복했다.”고 설명했다.
헬리콥터는 연료를 가득 채운 상태에서 3시간을 연속 비행할 수 있으나 안전을 위해 피쉬테일에어는 1시간비행만큼만 연료를 채웠다. 유에르는 “두 캠프 모두 해발 6,000미터 이상이라 비행기가 가볍고 조정이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번 돌 때마다 승객 한 명 밖에 태우지 못했다.
구조활동은 새벽 5시30분부터 시작되었다. 베이스캠프에 있는 송위쟝이 주목해본 결과 “헬리콥터들이 30분도 채 쉬지 않고 긴밀하게 수백 번을 연속해서 왕복했다.” 오후 1시 30분 날씨가 다시 돌변해 이송활동도 어쩔 수없이 중단되었다. 1캠프와 2캠프에 묶여있던 등산객 100여 명이 이송되었다.
그러나 SC등산대를 통해 에베레스트로 신혼여행을 온 부부는 트위터에 이렇게 남겼다. “하지만 샘무(Sam mu)와 알랙스가 아직 산 위에 있다.” 1캠프에는 두 부부까지 등산객 8명과 셰르파인 9명 밖에 남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가지 않은 다니엘 역시 “내일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라며 걱정하는 글을 남겼다.
다니엘의 바람대로 4월 28일 자원해서 베이스캠프에 남은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산 아래로 성공적으로 이송되었다. 아쉬시는 “이제 다른 지역의 이재민을 구하러 가야겠다.”고 밝혔다. 5월 3일 하루 그는 새벽 5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비행을 계속했다. 보이지 않을 만큼 날이 어두워져서야 하루의 비행구조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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