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2022년 6월 1일 ‘터키’의 국호를 ‘튀르키예’로 변경·승인하였다. ‘터키인의 땅’을 의미하는 튀르키예는 영어 단어 터키(Turkey)가 터키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칠면조를 가리키는 데다 겁쟁이, 패배자 등을 뜻하는 속어로도 사용되는 것에 터키인들은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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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르네에 있는 셀리미예 모스크, 1574년에 지어졌으며 건축가 미마르 시난의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
한때 한국에서 ‘터키탕’이 퇴폐 목욕탕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1996년 주한 터키 대사관과 당시 주한 터키 대리대사의 문제 지적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현재의 명칭인 ‘증기탕’으로 변경하였다. 국제사회에서 국명을 바꾼 여러 사례가 있다. 마케도니아가 북마케도니아, 페르시아가 이란, 시암이 태국, 버마가 미얀마, 크메르가 캄보디아, 로디지아가 짐바브웨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필자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미국학회 논문 발표하러 갔을 때 중간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이스탄불 유적지를 여러 곳을 다녀보았다. 또한 이란 테헤란에서 국책연구사업 공동추진 협의를 위해 전 한국경제학회장 구 교수님과 함께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스탄불에서 스탑오버 (공항 경유시 24시간 이상 체류)를 이용하여 이스탄불 시내를 구경할 기회를 가졌다.
이스탄불은 터키 서부에 있고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해협을 가운데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 있다. 이스탄불은 유럽과 중동에서 인구 규모가 가장 큰 도시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렀으며 오스만 제국 때까지 수도로 존속하다가 현재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23년 이후로는 앙카라가 터키의 수도가 되었다. 1985년 유네스코는 이스탄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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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타 대교로 아시아와 유렵 대륙을 연결한다. 터키는 97퍼센트가 아시아 대륙이며 이스탄불을 포함한 3퍼센트가 유럽 대륙이다. 갈라타 다리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다리 1층에는 시장과 식당이 있어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
필자는 아야소피아 박물관과 술탄 아흐메트 자미, 톱카프 궁전, 선착장, 탁심 광장과 이스티크랄 거리 구경과 페리를 타고 보스포러스해협을 여행하였다. 이는 흑해와 마르마라 해를 잇고,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터키의 해협이다. 길이는 30km이며, 폭은 가장 좁은 곳이 750m이다. 깊이는 36에서 120m 사이이다.
오랫동안 군사적인 요충지로 알려져 왔고, 18세기 이후에는 다르다넬스 해협과 함께 해협의 항행권을 둘러싼 ‘해협문제’로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터키의 유럽 영토와 아시아 영토는 다르다넬스 해협과 보스포러스해협을 사이로 나뉜다. 1973년에 완성된 해협 횡단의 보스포러스 다리는 세계 유수의 현수교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국제간선도로이다. 해협을 횡단하는 3개의 다리가 건설되어 있으며, 2013년 해저 터널을 통과해 이 해협 아래를 지나는 마르마라이 철도가 개통되어 운행 중이다.
평소에 호기심이 많은 필자는 터키, 그리스와 불가리아 접경지역을 가보고 싶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인터넷 검색을 한 후 기대감과 불안감을 가지고 국경지역인 에디르네로 갈 수 있는 버스터미널을 찾아 갔다. 서울고속터미널과 비슷한 규모로 전국으로 가는 버스 노선이 있어서인지 엄청나게 혼잡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대합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 국경 가는 버스를 알려달라고 물었지만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많은 노력 끝에 젊은 학생의 안내로 국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스탄불에서 고속버스로 3시간 30분, 240㎞ 떨어져 있는 에디르네로 향했다. 이스탄불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 3시간 이상 해바라기가 지천에 깔려있다. “국민성은 해바라기 성향이 아닌 강렬한 다혈질 국민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많은 해바라기를 심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사실 경제적 가치가 가장 높은 식물 중 하나인 해바라기는 세계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터키에서도 농업 생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버스 안에서 잘 생긴 젊은 남자 승무원이 가는 동안 중간 중간 커피, 음료수와 과자도 나누어 주었다. 고속버스 초창기 운행시 필자는 고향 가는 고속버스에서 여자 승무원들이 나누어 준 물과 커피를 얻어 마셨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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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남철 (경제학 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
에디르네는 그리스, 불가리아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터키 속의 유럽’이다. 에디르네는 터키의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로 에디르네 주의 주도이다. 영어권에서는 아드리아노플로 알려져 있다. 동로마 제국 비잔틴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점령하기 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수도이자 발칸 지역의 행정 중심지였다.
에디르네는 근대에 이르러 수차례 전쟁을 거치면서 외국의 지배를 받고 파괴되어 점차 쇠퇴해갔다. 러시아가 1829년과 1878년에, 불가리아가 1913년 제1차 발칸전쟁 중에 에디르네를 점령한 후 다시 터키로 넘어갔다. 1920년 터키 독립전쟁 중에는 그리스에 빼앗겼으나, 1922년 결국 다시 터키로 넘어왔다. 에디르네는 파란만장한 수난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글, 사진/이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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