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징, 리텅] 2015년 4월 25일 에베레스트 남쪽의 등산객들은 생애 가장 특별한 하루를 맞았다. 네팔 현지시각 12시경. 송위쟝(宋玉江)은 차를 마시다 갑자기 발 밑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지진이다!” 그는 큰 소리로 알리며 카메라를 집어 들고 대원들과 함께 텐트 밖으로 뛰쳐나왔다.
‘실크로드’ 등산대원 뤼쥔(吕俊) 역시 텐트에서 책을 읽다 강한 진동을 느끼고는 손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책을 놓고 대원 리졘훙, 베이징(北京)올림픽 성화봉송의 네 번째 주자 황춘구이(黄春贵)와 함께 뛰어 나왔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눈사태의 굉음과 함께 베이스캠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텐트 밖으로 뛰어 나왔다.
그러나 날리는 눈발과 짙은 안개로 아무도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송위쟝은 대원들에게 “지진 강도가 7~8급은 될 테니 얼음붕괴와 눈사태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말했고 리졘훙 등은 약속이나 한 듯 베이스캠프 정 북쪽 쿰부빙하를 향해 카메라를 겨눴다. 전날 오후에도 쿰부빙하에 큰 얼음붕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몇 분을 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송위쟝 등산대원 중 윈난(云南)여성 아부(阿不)가 갑자기 “저것 좀 보세요!”라고 소리쳤다.
송위쟝이 고개를 돌려보니 100미터 높이의 거대한 흰 벽이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천지가 하얀 김으로 뒤덮이더니 빙설과 돌 조각 들이 휩쓸려갔고 눈 깜박할 사이에 100미터도 되지 않는 곳까지 윙윙거리며 다가왔다. 서로를 챙길 틈도 없이 모두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가장 가까운 텐트를 향해 내달려 텐트 뒤쪽에 몸을 웅크렸다.
마침 텐트가 산비탈 뒷면에 있어 송위쟝과 대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산비탈과 텐트로 눈사태의 위력이 조금 약해지기를 기대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송위쟝은 “눈사태를 여러 번 보았지만 당시에는 다가오는 것이 사태인지 기류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어디로 피하라고 외치지 않았어요.
피할 만 한 곳도 없었고요. 그때 제가 한 일은 묻히는 것이었어요. 페닉상태였죠. 텐트 뒤의 돌로 피하면 깔리지 않을 수도 있다…”라며 당시의 기억을 되돌리며 <중국신문주간> 말했다.
윙윙거리는 광풍으로 텐트가 몸 위로 통째로 날아가고 대략 40초 후 대원들은 온 몸이 온통 눈 알갱이인 것을 발견했다. 다행히 산비탈의 돌이 막고 있어 다친 사람은 없었다. 등산대의 한 셰르파 가이드가 눈 더미 속에서 날려 온 안경을 찾아내고 “괜찮아”을 연발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송위쟝과 대원들은 몸 위로 무너진 텐트를 젖힌 후에야 자신들이 베이스캠프에서 운 좋게 눈사태의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베이스캠프 중앙에 자리잡은 여성등산대 대원들 역시 이상한 소리를 듣고 텐트를 뛰쳐나온 후 거대한 눈덩이가 바로 산 아래에서부터 솟아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당황해 방향을 돌려 뒤쪽의 산 위로 내달렸다. 그러나 눈사태는 높은 곳에서부터 휩쓸고 온 폭풍이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그들은 공중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땅으로 떨어졌고 얼마 후 수 많은 얼음과 돌 조각들이 그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여성등산대회원 후바오리(胡宝利)가 눈밭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네덜란드인 수행촬영감독 마르크(Marc, 24)가 얼굴이 피범벅인 채로 땅 위에 꿇어 앉아 있었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어 그가 머리를 다쳐 정신을 잃었음을 알았다.
대장 ’밀’은 땅에 누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고 대원 한즈쥔(韩子君)은 머리에 뚜렷한 상처가 나 계속해서 피를 흘렸으며 한 일본대원은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두 다리가 부러져 누운 채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후바오리 자신의 상황도 좋지는 않았다. 왼다리가 두꺼운 빙설과 돌 밑에 깔려 다쳤는지 부러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광풍과 이어지는 거대한 폭풍은 1분도 계속되지 않았으나 베이스캠프의 사람들에게는 생사를 넘나드는 긴 시간이었다. 등산객이자 FT중국어홈페이지의 직원이었던 중국인 뤼톄펑(吕铁鹏)은 이렇게 썼다. “바람이 그쳤다. 눈을 떠 텐트 안의 천막을 젖히니 온통 하얗다. 순간 ‘종말이 왔다! 나 혼자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혼자만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후바오리는 셰르파인과 다른 대원들에 의해 한 텐트로 끌려들어갔다. 그때 그는 여성등산대 캠프부근에서 4명이 사망했음을 알게 되었다. 가장 처음 발견된 사람은 거전팡으로 장쑤(江苏)의 등산애호가였다.
눈사태기 발생했을 때 그는 텐트에서 자고 있었는데 커다란 얼음덩이가 그의 머리를 직접 가격했다. 후바오리는 “아주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8,000미터이상의 봉우리를 3개나 등정한 경험이 풍부한 친구라 틀림없이 피했을텐데.”라며 그를 추억했다. 이 밖에 셰르파 도우미 두 명과 호주 여성등산대 대원 한 명 역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가장 운이 좋았던 대원은 류칭(柳青)이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당시 녀는 옷을 갈아입다 소리를 듣고 텐트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녀는 강한 기류에 의해 빙하호수면으로 밀려갔고 죽을 힘을 다해 기어서 캠프로 돌아왔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밑에 있는 얼음이 갑자기 갈라졌다.
해발 5,300미터의 얼음호수로 쓰려지려는데 셰르파인 두 명이 얼음이 다시 갈라질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끌어냈다. 여성등산대 캠프 옆은 구글 임원 프레딘버그가 소속된 JG의 캠프였다. 당시 캠프는 텅 비어있었고 대원들과 텐트 역시 폭풍으로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후에 그의 동료 미셸 바트리는 트위터에 이렇게 묘사했다. “그녀가 댄을 찾았을 때 그는 그는 머리에 돌을 맞아 죽어있었다. 단 40초 만에 방금 전까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그렇게 먼 곳으로 떠났다. 운명은 참 불공평하다.”
정말 그렇다. 가장 위험한 쿰부빙하에 있던 인도군인 30명은 모두 무사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그들은 같은 끈으로 묶여 있었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정규적인 방법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상업등산객들은 자신의 안전과 모르는 사람이 연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안전 끈과 고정시킨다.
그러나 인도군인들은 단체행동 때문인지 서로 견제하고 보호하는 전통적인 단체등산방식을 사용했다. 이번에도 증명 되었듯이 이러한 방법이 그들의 생명을 구했고 한 사람도 격렬한 흔들림 속에서도 빙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1호 캠프에서 아래로 굽어보면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눈사태가 일어났을 때 SC는 막 텐트를치고 밥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진동을 느꼈으나 짧은 소동 후 부상자가 없음을 발견하고 생존자의 행운을 가지고 베이스캠프를 바라보았다.
다니엘 마주르(Daniel 미터azur)대장은 그의 트위터에 이렇게 남겼다. “푸모리봉 위의 눈이 세 방향으로 베이스켐프를 향해 동시에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모든 물건들이 휩쓸려가고 구역 전체가 ‘초연이 가득한 전쟁터’처럼 순식간에 자욱한 눈안개로 뒤덮였다.
산 전체의 눈이 흘러 내렸고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1호 캠프는 폭풍우 속의 외로운 배 한 척처럼 언제든 눈사태로 멸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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