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징, 리텅]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통신네트워크를 통해 이번 눈사태가 강력한 지진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그들은 구조가 즉시 이뤄지지 못할 수 있으니 먼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1호 캠프의 경우 텐트가 심하게 파손되지 않아 지니고 있던 식량과 물로 며칠은 버틸 수 있으나즉시 하산해야 한다. 눈사태가 끝나고 오래지 않아 셰르파인과 경험이 풍부한 산악인들로 구성된 분대가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 쿰부빙하를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오면서 세워둔 사다리와 끈이 지진으로 모두 파손되었고 캠프 전체에 20~30분마다 소규모의 눈사태가 발생해 눈꽃이 날리고 가시거리가 오후보다 좁아진 절망적인 상황을 발견했다. 훗날 다니엘은 트위터에 “우리는 결국 1호 캠프에서 구조를 기다리기로 했다.”고 남겼다.
그는 또 다른 탐험대 역시 산 위의 대원들이 순조롭게 하산할 수 있도록 베이스캠프에서 1호 캠프로 통하는 새로운 노선을 찾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계속되는 여진으로 그들의 이러한 노력을 성공하지 못했다.
베이스캠프 내에서 ‘실크로드’등산대의 황춘구이대원이 방금 전화를 끊었다. 눈사태 후 그는 제일면저 중국등산협회 왕용펑(王勇峰) 부대표에게 전화해 중국에 중국등산대원들의 상황을 간략히 보고한 후 리졘훙, 뤄허우와 함께 베이스캠프 중앙지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그들은 국제등산대에 참가하고 있는 또 다른 베이징 산악인 웨이안지에(魏安杰)를 만났다. 그는 눈사태 당시 셰르파 가이드의 보호로 온 좋게 다치지 않았다. 네 명의 생존자는 함께 여성등산대로 향했다. 가는 길에 들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뿐이요 보이는 것은 새하얀 눈 위의 얼룩덜룩한 핏자국뿐이었다. 사람들이 부상자들의 상처를 싸매며 사망자에게 흰 천을 덮고 있었다.
리졘훙은 구조지점 밖에서 ’밀’이 들것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오른쪽 다리가 싸매어져 있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최소 5명의 외국인들이 그녀의 옆에서 어떻게 그녀를 IMG회사의 텐트로 들어올릴지를 토론하고 있었다. 당시 베이스캠프 중앙에 위치한 의료텐트가 파괴되어 미국등산회사 IMG의 텐트가 임시의료구조지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리졘훙은 땅에 부릎을 꿇고 ’밀’의 손을 잡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물 좀 마실래요?” ‘밀’은 입술을 가느다랗게 몇 번 움직였으나 소리가 없었다. 리졘훙은 고개를 숙여 그녀가 하는 말을 들어보려 했으나 외국대원들이 그녀를 데려가 버렸다.
동포를 만나서인지 이동을 기다리던 여성등산대의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 울었다. 리졘훙은 울지 말라며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여러분들은 운 좋게 살아 남았어요. 이 아픔을 반드시 견뎌내야 해요.”라며 쪼그려 앉아 계속해서 그들을 위로했다.
곧이어 몇 사람이 송위쟝과 샤보위의 등산대를 보기 위해 바쁘게 지나갔다. 중국대원들의 인명피해상황을 대략 파악한 후 황춘구이는 왕용펑에게 다시 한 번 상황을 알렸다.
베이스캠프는 산세에 따라 지어진다. 도로도 없고 울퉁불퉁한 노면과 높은 해발고도로 부상자 이송 역시 ‘프로젝트’가 되어 4~5명이 투입되어야 환자 한 명을 이송할 수 있었다. 황춘구이와 뤄허우는 남아서 의사들이 환자를 이송하는 것을 돕기로 했고, 리졘훙과 웨이안지에는 여성등산대의 캠프로 돌아가 대원들이 마음을 추스르는 것을 도왔다.
IMG텐트에 누운 ’밀’은 점차 인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전문의료진은 보이지 않았지만 캠프의 구조작업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다. 등산대의 자원봉사자들이 끊임 없이 부상자를 텐트로 이송해 오면 전문의 3명이 상처를 간단히 처치한 후 부상 정도에 따라 환자를 분류해 라벨을 붙였다. A가 부상이 가장 심각해 먼저 이송이 필요한 환자이며 밑으로 F까지 있다.
그때, 에베레스트 산자락의 작은 마을 판라이쳬의 의료진료소가 베이스캠프에서 이송되어 오는 부상자들을 다급히 기다리고 있었다. 판라이쳬는 해발 4,200미터에 위치한 에베레스트 등반객들이 오르내리다 쉬어가는 곳이자 에베레스트의 베이스캠프에서 가장 가까운 정규진료소이다. 미국 유타대학에서 온 의학연구원 앤드류 니펙(Andrew Nipeg)은 자원봉사자로서 3명의 다른 의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지진 중에 마을에는 부상자가 머리에 상처를 입은 여성 한 명 밖에 없었다. 이에 진료소는 베이스캠프에서 이송해 온 부상자를 최대한 빨리 치료하리라 기대했다. 앤드류는 근처 동료에게 끊임 없이 소식을 전하며 산 밑의 상황을 물었으나 정확한 정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카트만두(Katmandu)본부가 위성전화를 통해 베이스캠프 의료소의 전원은 무사하나 텐트와 모든 시설들이 전부 파손되었다는 소식에 판라이쳬 의료소는 언제든 이송되어올 수 있는 부상자들 맞을 준비를 항상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의료소를 찾은 첫 번째 부상자는 지진 당일 저녁 9시에 말을 타고 달려온 젊은 셰르파 청년이었다. 눈사태의 폭풍으로 뒤에 있던 암석이 덮친 것이다. 그를 살리기에 급했던 친구가 말에 그를 태우고 9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 산을 내려갔다.
앤드류는 긴급히 검사했다. 갈비뼈 몇 대가 골절되어 뼈가 폐와 신장을 찌른 위급한 상황이었다. 친구가 그를 황급히 이송해 시간을 벌었고 의사들이 부족한 중에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진료소의 의사 네 명 전원이 응급구조에 모든 힘을 쏟고 있었다. 그 후 인터뷰에서 앤드류의 형은 “다음 날 헬리콥터가 구조에 투입되면서 진료소의 의사와 환자의 비율이 1:15까지 급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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