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봉 구원 72시간 (1)
- 세계최고봉의 캠프. 81년만의 최고강진과 이에 따른 급격한 눈사태로 19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을 입는 등 사망자가 가장 많은 에베레스트 등정사상 최악의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5-27 09:56:26
[글/마징, 리텅] 4월 25일 네팔력 2072년 12일. 자욱한 안개 아래의 에베레스트 남쪽캠프의 가시거리는 400미터도 되지 않고 공기 중에는 눈발도 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해발 5,334미터의 고도에서 이런 날씨는 특별한 것도 아니다.
새로운 한 해의 등산시즌이 시작되었다. 등산객들과 현지 셰르파(Sherpa)인들 모두 이 등산시즌을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기도한다. 등산 전 매 번 제사가 이어진다. 산악인들은 산 아래에서 모셔온 라마교경전 봉독소리를 경청하며 하늘을 향해 손에 있는 생쌀을 던진다.
경전봉독이 끝나면 생밀가루를 대원의 얼굴에 발라 신에게 순조롭고 평안한 등산이 되도록 보호해 달라 빈다. 세계 각지에서 온 30여 개의 산악 팀과 400명의 등산객, 산행을 보조하는 1,000명의 셰르파인 모두 예외일 수 없다.
비극 후의 새로운 등산시즌
이번 등산시즌은 매우 중요하다. 에베레스트 등정사상 가장 힘겨운 한 해를 보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갑작스런 눈사태로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에베레스트 등정사상 가장 하루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사망자가 모두 상업활동을 위해 준비, 보조, 가이드업무에 종사하는 네팔의 셰르파인이었기에 네팔정부가 사망자 배상금으로 지불한 금액은 1인당 400달러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등산 팀으로부터 받는 등록비는 7인규모를 기준으로 7만 달러에 달한다. 이렇게 거대한 차액은 셰르파 등산가이드들의 집단파업으로 이어져 보통 2달간 이어지던 등산시즌이 4월 말로 끝나버렸다.
아마추어 등산객이 셰르파인의 도움 없이 텐트, 짐, 식량, 산소를 직접 매고 전문적인 가이드 없이 산 정상을 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2014년 10월 등산시즌 중 보기 드문 폭풍설로 20여명의 등산객이 사망했다. 사망자 수는 훗날 43명으로 급증했다.
주민들은 새로운 한 해의 등산시즌을 잘 시작해 에베레스트등반이 활기를 되찾고 지역경제 성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등산객들 역시 1년간 억눌렀던 에베레스트등반에 대한 동경을 지체 없이 시행해 옮겼다.
그 결과 에베레스트등반의 상업화와 전문화된 조직수준이 높아졌으나 이는 결국 세계최고봉을 정복하는 모험으로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등정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번 고산등정을 위해 최소 2년 이상을 준비한 것이다.
구글(Google) 개인정보보안 팀의 임원 댄 프레딘버그(Dan Fredinburg,33)는 2014년 봄 에베레스트등정에 도전할 계획이었으나 눈사태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와 함께한 동료 미셸 바틀리(Michelle Bartley)역시 2014년 중도에 철수하였다.
두 사람은 모두 영국 재그드 글로브(Jagged Globe, 이하 ‘JG’)산악회 회원이었다. 댄은 2차도전의 성공을 자신했다. 빙산 양쪽을 잇는 사다리에 앉아서도 흡족하게 카푸치노를 즐길 수 있었다.
홍콩의 산악인 샤보위(夏伯渝)역시 댄 프레딘버그와 같은 꿈을 품고 있었다.
1975년. 당시 24세였던 샤보위는 중국산악대 대원으로서 에베레스트등정에 도전했으나 열악한 날씨로 실패했다. 그들은 해발 7,600미터에 자리한 캠프로 철수했는데 한 대원이 철수 중 침낭을 잃어버려 샤보위가 자신의 침낭을 양보했다. 뼈 속까지 스미는 추위로 두 다리를 일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 이후 에베레스트등정은 샤보위 인생 최대의 아쉬움이자 숙원이 되었다. 그는 2014년에도 에베레스트등정을 준비하다 산 아래의 팀으로 복귀할 수 밖에 없었다. 2015년 그는 66세의 고령으로 의족을 한 그는 40년 전 이루지 못한 바람을 품고 다시 한 번 세계최고봉 산자락을 찾았다.
에베레스트 남쪽베이스캠프에 모인 30여개의 등산탐험대 중에는 중국의 여성산악대도 있었다. 대장은 신장(新疆)여인 마리아무(马丽娅姆)로 얼굴이 갸름하고 늘씬해 대원들은 그녀를 ‘밀’이라 불렀다.
그녀는 중국의 가장 중요한 민간등산개척자—양춘펑(杨春风)의 팀 닥터로 2013년 6월 양춘펑이 파키스탄에서 생애 12개째 8,000미터이상 봉우리를 등정할 때 탈레반 무장단체의 습격을 당해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
오랜 시간 후에야 ‘밀’과 대원들은 양춘펑 죽음의 그림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은 양춘펑이 생전에 주관하던 ‘양춘펑고산탐험서비스유한공사(杨春风高山探险服务有限公司)’를 ‘고산비등탐험공사(高山沸腾探险公司)’로 개편하고 네팔을 기지로 그가 생전에 평생 장려하던 중국민간고산탐험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번 에베레스트등정은 ‘밀’이 조직한 ‘중국 최초의 민간인 여성 등산대’로 에베레스트에 두 번째 탐험대를 파견하였다. 첫 번째 탐험대 역시 2014년 눈사태로 실패했다. 2015년 에베레스트등정을 위해 여성등산대는 다큐멘터리 수행촬영팀을 두어 베이스캠프까지 동행할 예정이다. 제작진은 네덜란드 촬영감독과 일본 음향감독 등 쟁쟁한 실력자들을 영입하고 많은 유명영화감독과의 협력도 있었다.
고산비등탐험공사가 조직한 제6기 ‘중국 에베레스트 남파등산대’와 거전팡(戈振芳)을 대표로 하는 ‘로체(Lhotse)등정대’가 여성등산대와 동행했다.
중국 신장 훙징(宏景)그룹의 리졘훙(李建宏 )회장에게 있어 에베레스트등정은 50세 생일 전에이루고 싶은 가장 중요한 바람이다. 남극과 북극, 7대주의 최고봉 중 6개를 등반한 바 있는 사람으로서 에베레스트등정은 그의 ‘7+2’계획의 마지막 관문이다.
그가 이렇게 중요한 마지막 관문을 50세가 되는 해에 계획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실크로드’라는 등산탐험대를 조직하고 대원 5명이 필요한 모든 비용을 독자적으로 부담했다.
네팔 현지시각 11시 30분. 중국 산악인 송위장(宋玉江)은 등산대를 이끌고 해발 6,500미터의 2호 캠프에서 베이스캠프에 있는 자신의 텐트로 돌아와 세수를 하고 등산화를 갈아 신고 수프 한 그릇을 먹은 후 따뜻한 차를 끓여 연일 쌓인 피로를 풀었다.
구글 임원 댄 프레딘버그는 동료 겸 대원 미셸 바틀리와 베이스캠프의 텐트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밀’의 여성등산대 역시 야영 훈련을 마치고 베이스캠프의 텐트에서 점심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크로드’의 대원들은 가시도가 낮아 야영 훈련에 불리하다는 가이드의 판단으로 텐트에서 책을 읽거나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베이스캠프로 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탐험회사 서브밋 클라임(Summit Climb, 이하 ‘SC’)의 등산대는 해발 6,000미터의 1호 캠프에 막도착해 정비 중이었다. 알렉스 슈나이더(Alex Schneider)는 그녀의 트위터에 ‘1호 캠프에 도착하면 진하게 한잔 해야지.’라고 남겼다.
그녀와 남편 샘 차패티(Sam Chappatte)는 15살부터 교제를 시작했는데, 두 사람 모두 극지탐험이 취미였다. 얼마 전 결혼한 28세의 두 젊은이는 신혼여행지로 가장 도전적인 에베레스트등정을 선택했다.
인도의 육군군인 30명으로 구성된 등산대는 C1에서 베이스캠프로 철수하는 길이었다. 국가적 의미를 지닌 등산대로서 그들은 등산대 중 각별히 주목을 끌었다. 그들은 등정에 성공하면 고 해발 캠프와 베이스캠프캠프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 4,000킬로그램을 치우겠다고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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