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배우자 (6)

친밀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6-30 09: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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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둘 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관계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시어머니와 다툰 후 나는 가기를 원했고 남편도 결심을 굳혔다. 다음 날 시어머니가 나를 기차역까지 배웅해 주었고, 나는 남편이 없을 때 시어머니께 몇 번을 사과 드리면서 우리 고부관계는 풀어진 샘이다. 그러나 남편은 이 일을 넘기지 않았다. 장인으로 돌아와 한 달이 지나 화가 풀려 화해하자 남편은 이혼조건을 이야기하며 변호사에게 상담까지 했다고 했다. 


나는 피동적인 입장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내가 삐져서 베이징에 오지 않는다 생각하시고는 전화를 걸어 나를 타이르셨다. 돌아가기 싫은 게 아니라고 말씀 드렸지만 사실은 내가 돌아가면 남편이 이혼을 진행할 테니 우선 생각을 정리하도록 두는 게 나았다. 


남편이 왜 그렇게 단호했을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집안 분위기도 안 좋았다. 남편은 성격이 예민하고 괴팍하며 사람들에게 살갑지 않고 친밀한 생활에 적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부라면 물건을 사는 등의 사소할 일도 상의를 한다. 그러나 남편은 귀찮고 자유롭지 못하며 자신이 원하는 생활이 아니라며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하고 집에서 글 읽거나 그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이쯤 되니 나는 매우 슬프다. 다른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잘 해주는 거 하나 바라는 건데 요즘은 나에게 잘 해주지도 않으니 내 생각은 또 뭐지? 첫 번째 결혼생활에서 나는 문예청년이었다.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던 전 남편은 나에게 매우 다정했지만 공과생이라 재미가 없었고 좋은 남편이었지만 지루했다. 나도 심리적으로 미숙하다 보니 뜨거운 감정을 원했고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이 싫었다. 다정하게 돌보아주는 것으로 치면 지금 남편은 전남편과 비교도 안되지만 재미있고 재능도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직업적으로 전성기의 끝자락에 있었다. 돌발사건기자에서 인물사진작가로 전향했다——인물마다 세밀한 표현이 돌발사건 사진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 때는 기분도 좋았는데 그 후 일이 잘 안 풀리면서 남편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남편은 인간관계를 잘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장을 몇 번이나 옮겼다.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일을 잘 하지 못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항상 인간관계가 틀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남편은 그런 감정들을 집에다 풀었고 나 역시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터라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일을 하지 않으니 나에게는 남편과 아이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편의 표정이 어두우면 집안 분위기가 아주 안 좋았다. 기독교인인 나는 이 문제로 기도까지 드렸다——남편의 일이 잘 되게 해 달라고. 나는 최선을 다했고 남편에게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힘들면 다시 장인으로 내려가겠다고 했다.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고 부모님께 모아둔 돈이 좀 있으니 먹고 자는 문제는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렇게 몇 번을 권했는데도 소용이 없자 나도 참지 못하고 “왜 하는 일마다 일년도 못 가서 이 모양이야.”라며 한마디 던졌다. 다른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이런 말만 골라 듣는다. 정말 기분 나쁘다. 나는 대기업에서 일해본 적도 없고 이 일에 진짜 ‘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태두리 안에서 살아가는데 남편은 밖에 있었다. 우리 둘 다 영문을 몰랐다. 나도 모르고 남편도 몰랐다.


남편을 대할 때마다 나는 남편이 마음속 깊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종 “인터넷소설이랑 미국드라마 좀 그만 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재미없는 쇼들.”이라 핀잔을 준다. 전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전혀 기분 나쁘지 않고 더 뻔뻔스럽게 “난 원래 이런 여자다. 어쩔래!”라며 대응했을 것이다. 그가 먼저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이런 확신이 없다. 싸우면서 ‘나를 사랑하기나 해?’라고 물을 때마다 내가 남편에게 재미없고 대화도 통하지 않으며 남편이 원하는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놀러 다니는 것조차 함께 다지니 않았다. 남편은 출장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라 호텔에서 자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여기까지 와서 숙소에만 있는 것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활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에 가서 그곳의 주전부리와 특산물 구경하는 것이 좋은데 남편은 싫다고 해 또 싸운다. 


나는 그저 철학과 차이밍량(蔡明亮)의 영화를 싫어하는 평범한 여자다. 따분하고 재미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장에 나가 신선한 채소를 구경하고 거리를 구경하며 조그마한 물건들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내가 ‘소시민’이며 나뿐 아니라 아이까지 소시민으로 기른다며 반감을 갖는다. 남편은 아주 대단하고 예술적이며 그런 큰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여자를 원하는 것 같다 남편이 내가 ‘예쁘다’고 했던 것을 보니——나이도 있고 몇 년 뒤면 더 늙을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쁜 것은 배우자의 조건이 아니었나 보다. 예쁜 아가씨는 항상 있으니까.


남편의 이러한 불만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두렵기도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남편이 조만간 나를 떠날 것 같다. 이러한 방어에는 이유가 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들을 통해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결혼 전부터 싸웠고 남편은 헤어지자고 했다. 모든 것을 버리다시피 하고 베이징까지 왔는데 그렇게 돌아가자니 면목이 없었다. 

 

마침 그때 나보다 어리고 나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음에도 감정이 흔들렸다. 나는 누군가 나를 챙겨주기만 해도 좋아 두려웠다. 물론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남편이 오랫동안 나에게 잘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 점에 매우 연연했다.


훗날 남편이 알고 크게 화를 내더니 그 남자와 당장 연락을 끊고 자기와 결혼하자 몰아쳤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남편과 결혼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집을 사라는 부모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결혼을 미루고 있었다. 내가 다른 남자가 생겼다니 화를 내긴 하는구나. 나는 남편이 좋았다. 남편이 질투를 했다는 사실에 남편이 나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남편이 외부의 자극을 받아 깨달았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결심했다. 그 후에야 남편이 결혼생활에 대해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집과 달리 우리 집은 남편이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강자이다. 남편이 주인이고 부모님은 간섭하지 않는다. 부모님을 내키지 않지만 막지도 않으시고 종종 ‘돈은 충분하니? 더 필요하니?’라고 묻기만 하셨다.
그렇게 부모님은 안 되는 형편에서도 돈을 주고 싶어했다. 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라는 생각에 가슴이 찡했다. 결혼 후 남편이 차 살 때 말고는 친정 돈을 쓴 적이 없다. 남편은 촬영 기자재들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그때 남편 손에는 1만위안이 좀 넘게 있었고 내가 모아둔 돈이 8만위안 정도 되었다. 계산을 해보니 모자라 엄마에게 5만위안을 빌렸다. 물론 그 돈은 나중에 남편이 갚았다. 


하지만 이 일로 남편과 부모님의 관계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양가 부모님이 만난 자리에서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습관들이 나타났다. 아이의 한 달 축하파티 자리였다. 양가 친지들이 다 모였고 시어머니가 친정엄마에게 손자에게 주라며 축의금을 건넸다. 엄마는 영문을 몰라 한참을 생각한 끝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다——외할머니가 아이에게 축의금을 주는 규칙을 우리 집이 모를까 걱정되기도 하고 엄마가 돈을 쓰게 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그러셨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은 그런 허례허식이 없어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상하고 불쾌했다. 


나와 시어머니 간에도 충돌이 있었다. 한번은 남편과 싸운 후 방으로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있었다. 밤중에 화장실을 가는데 누군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어머니가 다른 방에서 남편과 내 흉을 보고 있었다. 나는 화가 나서 들어가 “제가 그렇게 못마땅하시면 이혼 하면 되잖아요!” 라며 소리지르고는 울었다. 나는 눈물이 많다. 집도, 집안 사람들도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결혼 전부터 기분이 우울하고 초조해 문제를 만나면 히스테리를 부렸다. 남편은 이런 나를 두려워했다. 한번은 싸우는데 남편이 진심에서 나오는 말로 돌아가라 했다. 내가 조정해 오기를 바랐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가 도망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베이징에 친척이 없었고 베이징에는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나를 집으로 보내고 나와 헤어지겠다며 집에 전화까지 드렸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는단 말인가? 그래서 아이를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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