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배우자 (1)

결혼생활 중의 갈등과 불화는 그 원인이 외부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부 각자의 마음에 생긴 영원히 소통할 수 없는 생각들이야말로 두 사람이 점점 멀어지는 근원이다. 사랑하면서도 서로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부부 각자의 진술을 통해 두 사람의 진심을 살펴보고 배우자가 어떻게 결혼생활에서 사라져 가는지 알아보자.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6-30 09: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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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류단칭]  그들은 길을 가다 되돌아보게 되는 커플이다. 남자는 유머러스한 사진작가로 사진을 잘 찍고, 여자는 늘씬하고 예쁘다. 두 사람의 성격은 모두 솔직하고 천진난만하다.
그러나 그들은 이혼을 하려 한다. 


사건은 두 사람이 결혼한 지 6년째, 그들이 36세의 나이로 2살된 아이를 가진 해에 일어났다. 둘의 성씨를 넣어 아이의 이름도 지었다. 그러나 바로 그 해 아이로 인해 시작되고 계속해서 쌓인 이 가정의 모든 갈등이 결국 모두 폭발해버렸다. 


아이가 생기기 전의 결혼생활은 두 사람의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자 상황은 달라졌다. 두 사람은 아이를 돌볼 수 없어 부모님께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남자와 여자의 고향은 각각 베이징(北京)과 우시(无锡)로 두 집안의 습관과 경제조건, 가정양식 등 모든 것이 다르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오해로 이어지고 소통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배려하면서도 책망일색이다. 생활방식이 다르고 두 사람의 감정, 같은 일에 대한 이해까지 모든 것이 하늘과 땅 차이다.
두 사람은 점점 친밀한 낯선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 2012 11월 베이징(北京), 인얼()&충쯔(虫子). 더우반(豆瓣)에서 만난 결혼 4년차 커플로 귀여운 딸이 하나 있다. 촬영/양자자

남편의 이야기 ♂
전혀 다른 두 사람

 

2007년 겨울. 촬영 팀 미술감독이었던 나는 둥베이(东北)로 경치를 보러 갔다. 날씨가 너무 추워 매일 새벽 4시쯤 나가 빛을 쬐고 심심해서 인터넷을 하는데 때마침 마주친 여자가 나와 같은 음악 채널을 듣고 있었다. 듣는 사람이 많지 않은 채널이었다. 

 

골목을 걷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을 하나 만난 기분이었다. 우리는 친구처럼 편하게 몇 번을 만났다. 그녀는 28세로 나와 동갑이고 여자펑크(punk)처럼 보이며 예쁘고, 키도 크고, 긴 머리다. 당시 외모협회로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녀는 매우 긴장했다. 그녀의 피드백에서 내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인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다. 먼저, 보이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그녀는 외모가 매우 멋지지만 실은 아주 전형적인 남방여자다. 겉으로는 쿨한 척하지만 마음속에는 현실과의 괴리로 가득하면서도 철저히 혁명하지 않으며 자기각성도 할 줄 모른다. 나 역시 매일 농담을 일삼는 겉모습과 달리 평소에는 고민이 많다. 


몇 달 동안 우리는 천국 같은 날들을 보냈다. 얼마 후 그녀가 상하이(上海)의 갤러리 일을 그만두고 베이징으로 나를 찾아와 마중을 나오라고 했다. 조금 의외였지만 나는 순식간에 계산을 끝냈다——나란 놈의 인기란. 여자가 이렇게까지 따라오다니. 이렇게 너와 같이 있고 싶으면 같이 있지 뭐. 그녀의 첫 인상은 적극적이고 나를 정말 좋아하고 요리 잘하고 싹싹한 여자였다.


나에게는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조건이 좋은 사람 앞에서는 열등감을 느껴 주동적으로 포기하는 것이었다. 항상 자신감이 없었고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찾아가본 적도 거의 없지만 찾아가서는 상대방에게 ‘너 마음에 들어. 우리 사귀자.’고 고백한다. 결혼생활을 시작하면 나의 모든 것이 드러나 상대방이 실망할까 걱정이다.
처음에는 그녀가 나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통지(同济)대학을 졸업한 ‘돌싱’이다. 

 

대학친구와 5년을 사귀고 결혼했는데 상대는 적극적인 반면 그녀는 개성과 생활이 소극적이라 결혼 한달 만에 이혼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어려서 결혼생활에 대한 개념 없이 감정만 느껴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첫 번째 결혼생활의 문제가 우리의 결혼생활에까지 이어지리라고는 의식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첫 번째 결혼생활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했고 자신을 두둔하려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녀가 최소한 자신의 약점을 마주할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 후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고, 내 자신이 점점 적극적으로 변해감을 느꼈다. 


훗날 자세히 생각해보니 당시의 나의 행동 역시 어느 정도 강요 받은 부분이 있었다. 우리가 같은 도시에 살아 그녀가 나를 위해 다른 도시에서의 일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렇게 단순한 관계로 해어졌을 것이다. 주변에 여자는 많았으니까.


연애시기에는 서로가 강점으로 상대를 대하는 시기가 있다. 우리가 가장 좋았던 시간은 처음 몇 십일 밖에 되지 않는다. 윈난(云南), 하이난(海南), 광둥(广东), 샤먼(厦门) 출장 가는 곳마다 그녀와 함께 갔고, 좋은 곳은 다 데리고 갔다. 그녀는 사진작가로서의 내 생활을 신기해 했다. 우리는 같은 부분이 많지 않았다. 많아야 같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과 가끔 하는 예술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녀는 내 작품을 좋아했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동감해 주면 경계심부터 들었다.


전성기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A면만 보여주고 B면은 숨길 수 있지만 결혼생활은 그 B면이 적합한지를 보는 것이다. 그녀가 이해하는 감정관계는 이랬다.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게 되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엇을 하든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안정되면 그녀는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지 않고 상대에게 점점 함부로 한다. 


우리는 결혼 전부터 언성을 높여 싸웠다. 열애기를 지나 서로가 진정한 모습으로 교제하게 되자 나는 우리가 전혀 다른 두 사람임을 발견했다. 그녀는 미국 드라마와 타오바오(淘宝)쇼핑을 좋아하고 내가 돈 쓰는 것을 엄격히 제한했다. 그때 그녀는 베이징에서 알맞은 일을 찾고 있었고, 나는 가족을 부양함으로써 갖게 되는 발언권도 없는 얼간이었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돈을 가져가면서도 항상 강자였다. 돈이야 상관없지만 내가 정말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말하는 대로 바로 되어야 하는 그녀의 성미였다. 


그렇게 삐그덕 거리던 중 그녀가 임신을 했다. 나는 그녀가 아이를 낳기를 바랐으나 그녀는 아이를 지워버렸다. 나와 함께 살기가 싫었는지, 그게 아니라면 왜 아이를 낳지 않았는지, 그녀가 왜 그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녀의 방위적이고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느꼈다. 이번 일로 우리는 마음의 응어리가 생겼고 서로 못 믿겠다는 느낌이 생겼다.


아이를 지운데다 계속된 다툼으로 우리는 거의 해어지기 직전까지 갔다. 그녀는 다른 남자까지 생겨 그녀를 쫓던 남자가 계속 우리 집까지 찾아와 들어왔다. 너무 싫어서 나랑 결혼하고 그 남자랑 헤어지던지 아니면 그 남자에게 가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헤어지자 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나에게 남았다. 그녀가 양다리 걸쳤던 일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녀가 상하이의 일을 포기하고 베이징으로 나를 찾아온 것만 생각났다——아는 사람 하나 없이 그녀에게는 나 하나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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