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세습귀족, ‘선천적인 권력’과의 작별

새로운 작위로 오래된 특권의 퇴장을 바꾸는 극적인 마무리
발행인겸편집인: 강철용 kgmsa@naver.com | 2026-04-27 1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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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발행인겸편집인: 강철용]

몇 달간의 격돌, 정착과 뒷거래를 거쳐 영국 상원은 최근 <상원 (세습귀족) 법안> 최종 초안을 승인했다. 국왕의 친서를 받은 후, 지난 700여 년간 영국 세습귀족이 혈통, 출신과 가문 작위만으로 자동으로 의회 의석을 얻고 국가 법률에 대한 표결권을 가졌던 시대는 올해 봄 이번 의회 기간이 끝나는 순간 완전히 종식된다.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영국 노동당 내각사무처 대신 토마스 시먼즈는 이 법안에 대해 평가하며, 현대 의회는 인재를 중용하고 재능이 인정받는 곳이어야 하며, 수세기 전에 봉건된 작위가 국민의 의지 위에 군림하는 ‘노년층 사교 클럽’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거대한 헌정민주 원칙 아래에서 ‘한 세대 최대 규모의 의회 개혁’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의 최종 실행 모습은 전형적인 ‘영국식 타협’이며, 새로운 작위로 오래된 특권의 퇴장을 바꾸는 극적인 마무리이기도 하다. 보수당 세습귀족이 입법 마지막 단계에서 벌이는 장황한 저지에 돌파하기 위해 노동당 정부는 야당과 실용주의 색채가 강한 거래를 체결했다. 정부는 의석을 잃게 될 일부 보수당 및 중립 의원 세습귀족에게 ‘영생귀족’ 작위를 수여하기로 동의했으며, 이는 그들이 세습특권을 포기하고 평온하게 역사무대에서 퇴장하는 데 대한 정치적 교환 조건이다.


권력의 증여와 혈통의 잔광
영국 상원은 직역으로 ‘귀족원’(House of Lords)이며, 공식 전칭은 ‘대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의회에 참석하는 존경받는 성직귀족과 세속귀족들’이다. 상원은 민주 선거를 통해 의원을 선출하지 않고 의원의 임기는 이론상 영생제이므로 회원 총수가 고정되지 않으며, 현재 인원은 842명이다. 회원의 출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영국 성공회 소속의 고위 주교가 26명 이하, 세습귀족이 92명 이하, 나머지는 각 분야에서 공적을 세워 작위를 받은 영생귀족이다.


영국 세습귀족이 상원에 갖는 합법성의 근원은 기원후 5세기 앵글색슨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잉글랜드 국왕은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현인회의’라고 불리는 모임을 정기적으로 소집했으며, 이 모임은 가장 권세가 강한 세속귀족, 고위 성직자 및 기타 영향력 있는 지역 세력으로 구성되어 국가 통치의 최고 자문 기구로 기능했다. 1066년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정복한 후, 원시 부족 민주주의 색채를 지닌 이 기구는 고도로 집권적인 봉건 체제로 대체되어 국왕의 봉건 궁정으로 변모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상원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다.


14세기에 평민 대표로 구성된 하원(‘평민원’)이 귀족들과 별도로 회의를 시작하면서 상원의 회원 자격은 봉건 영지와 세습 제도에 깊게 묶이게 되었다. 장남 상속제는 작위와 권력 전승의 절대적인 핵심 원칙이 되었다. 수백 년의 진화를 거쳐 영국의 세습귀족 체계는 마침내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으로 이어지는 다섯 단계의 엄격한 등급 계단을 형성했다.


전통적으로 새로운 귀족 작위의 봉건은 완전히 군주의 특권이었으며, 탁월한 군사 업적, 외교 공적 또는 국가 통치 서비스에 대한 최고 상으로 여겨졌다. 토지, 작위와 입법권이 일체로 묶인 이 제도는 오랜 역사 기간 동안 영국 사회 질서의 기초를 구성했다. 이것이 바로 영국 드라마 <다운턴 애비>에서 묘사된 영국 귀족 생활의 계급 배경이기도 하다.


19세기와 20세기 초로 들어서 산업혁명이 완료되고 새로운 부유층 자본가가 떠오르면서 세습귀족의 봉건은 점차 국가 공적이라는 초심에서 벗어나 정치적 지분 분배와 정당의 재정 모금 도구로 전락했다. 예를 들어 20세기 20년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수상으로 재임할 당시, 귀족 작위는 일시적으로 완전히 상품화되었다. 최소 5만 파운드로 세습 남작 작위를 구매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자손들이 영원히 상원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영예 매매 스캔들’로 불리는 이 정치적 지진은 대중의 눈에 귀족 체계가 가졌던 신성성과 도덕적 합법성을 크게 파괴했다.


세습귀족의 인원이 무한정 팽창하는 추세를 제도적 근원에서 차단한 것은 1958년의 <영생귀족 법안>이다. 20세기 중엽에는 세습귀족만이 상원에 진출할 수 있었고, 작위를 상속받은 이들 후손들은 번거로운 입법 심사 업무에 전혀 관심이 없어 상원의 일상 출석률이 형편없을 정도로 낮았다. 제2차 세계대전 및 전후 초기에는 종종 20~30명 미만의 귀족만이 토론에 참석했고, 대다수의 의석은 보수당이 독점하며 기구 운영이 거의 마비되는 상태에 놓였다.


이렇게 붕괴 직전에 놓인 입법 기구를 구하기 위해 보수당 출신의 당시 수상 해롤드 맥밀런은 이 법안의 통과를 추진했으며, 이를 통해 군주가 수상의 제안에 따라 ‘영생귀족’을 봉건할 권력을 부여받았다. 이들 영생귀족은 세습귀족과 동등한 상원 표결권을 갖지만, 그들의 작위는 자녀에게 물려줄 수 없다. 더욱 깊은 의미는 이 법안이 처음으로 여성의 상원 진출을 허용하며 수백 년간 남성이 독점했던 상원의 격차를 깼다는 점이다.


이 법안은 각 분야의 전문가, 학자, 노동조합 지도자 및 은퇴 정치인들이 의회에 진출하는 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왕실이 아닌 세습귀족의 대규모 봉건에 종지부를 찍었다. 1964년 이후 영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왕실이 아닌 인물에게 세습귀족 작위를 수여하는 관행을 중단했다. 

 

이후 유일한 예외는 1984년에 발생했으며, 당시 수상 마가렛 대처는 전 수상 해롤드 맥밀런의 거대한 공적을 표창하기 위해 그를 스토크톤 백작으로 봉건했다. 이것이 바로 영국 역사상 평민 정치인에게 세습귀족 작위를 수여한 마지막 사례이다. 지금까지 새로운 세습귀족의 창설은 극히 드문 현상이 되었다. 새로운 작위는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가 각각 케임브릿지 공작과 서섹스 공작으로 봉건된 것처럼, 왕실 직계 가족에게만 수여되지만, 이러한 봉건은 이미 정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래된 작위와 현대 생활
현재 영국에 존재하는 세습귀족 작위는 총 약 1000개이다. 한 사람이 여러 작위를 소유할 수 있고, 대다수의 귀족 작위는 엄격하게 남성에게만 상속되도록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2025년 10월 현재 영국 세습귀족은 799명이며, 기본적으로 모두 백인 남성이다.


정치적 권력에서는 계속해서 후퇴했지만 세습귀족은 사회 계층으로서 21세기 현대 영국에서 소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중 일부는 놀라운 부의 전승 메커니즘, 토지 독점 및 현대 상업 체계에 대한 적응력을 통해 여전히 영국 사회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고, 다른 일부는 현대 사회의 충격 속에서 안타까운 가문의 쇠퇴사를 펼치고 있다. 이 기이하고 다양한 현대 귀족들의 일화는 상원 개혁의 배경에 있는 사회적 정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을 구성한다.


권위 있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세습귀족의 상대적 부는 20세기 80년대 이후 눈에 띄는 반등세를 보였다. 그들은 복잡한 전권 신탁을 설립하고, 농업용 토지와 임지에 대한 유산세 면제 정책을 활용함으로써 거액의 부를 대중의 시선에서 성공적으로 숨겼다.


토지는 여전히 현대 귀족의 권력에 대한 궁극적인 방어천이며, 영국 토지의 3분의 1은 귀족과 전통적인 지신들에 의해 단단히 통제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절반 이상의 사유 시골 토지가 500명 미만의 초부자와 귀족 가문이 통제하고 있다. 땅 한판에 천금이 되는 런던 시내에서는 오래된 귀족 가문이 절대적인 지주이다. 예를 들어 무한한 부를 소유한 웨스트민스터 공작 가문은 영국 전역에 13만 에이커 이상의 맨션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 특수한 임대권 제도를 통해 런던 메이펄과 벨그레이비아 등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지역의 대규모 부동산을 통제하고 있다.


놀라운 부의 기반 외에도 많은 세습귀족은 여전히 조상들의 생활 방식을 고집하며 세습 원칙에 대해 거의 광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귀족 층내에는 방탕으로 타락한 극단적인 반면 교훈도 부족하지 않다. 7세대 브리스톨 후작 존 허비는 20세기 80년대에 거액의 재산과 웅장한 맨션을 상속받았다. 하지만 그는 장기간 마약에 중독되어 생활이 극도로 방탕했고, 마약 소지로 여러 차례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불과 십여 년 만에 그는 마치 물 흐르듯 거의 모든 재산을 소비했고, 마침내 맨션의 주요 부분을 국가명승고적신탁기금에 매각해야 했으며, 40대 중반에 장기 부전으로 빈곤과 질병 속에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한편은 거스르기 힘든 토지 패권과 부의 은폐, 다른 한편은 황당스러운 계급 오만과 도덕적 타락. 이런 세습귀족들의 생활 모습이 현대 매체에 의해 끊임없이 확대되면서 영국 국민들은 여전히 국가 법률 거부권을 장악한 이들에 대해 큰 불이해와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일부 영국 매체는 직설적으로, 만약 21세기에 다시 의회를 설계한다면 세계 어느 국가도 이렇게 황당하고 설명할 수 없는 세습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무리되지 않은 개혁
세습귀족 제도의 잔존이 영국 역사적 관성의 연속이라면, 스타머 정부가 2026년에 ‘뿌리째 뽑는’ 방식의 법안을 내놓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20여 년 전 또 다른 노동당 수상이 남긴 정치적 꼬리 때문이다.
1997년 블레어가 뉴노동당을 이끌고 대승을 거두었을 때, 세습귀족의 상원 표결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은 그의 가장 핵심적인 헌정 개혁 약속 중 하나였다. 당시 상원은 여전히 다수의 세습귀족이 주도했고, 그 중 대부분은 보수당의 천연 동맹이었다. 이는 민주 선출된 정부가 추진하는 어떤 법안이라도 이 비민주적 기구에서 지연되거나 심지어 막힐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1999년 노동당 정부는 <상원 법안>을 제출하며 세습귀족을 전체적으로 제외하려 했으나, 법안은 하원에서 순조롭게 통과되었지만 상원에서 보수당 귀족의 강력한 저지를 받았고, 상대방은 절차 전쟁으로 정부의 전체 입법 의제를 마비시키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이런 정착 상황에 직면한 블레어 정부는 마침내 웨더릴 경이 제안한 타협안을 수용했다. ‘최종 전면 개혁’이 완료되기 전까지 92명의 세습귀족이 과도한 형태로 일시적으로 의석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본래 일시적인 붕대였지만, 이후 각 정부가 상원의 전면적인 재구성을 추진할 힘이 없어 어쩌다보니 26년간 존속하게 되었다.


이 92개 의석의 분배 메커니즘 자체가 강한 정치적 거래 색채를 담고 있다. 국가 의식 기능을 담당하는 왕실 직위 소유자에게 2석이 보존되고, 전원 투표로 15석이 선출되며, 나머지 75석은 당시 정당 실력 비율에 따라 분배된다. 최종적으로 보수당은 42석을 얻었고, 중립 의원은 28석, 노동당은 겨우 2석을 받았다. 본래 단기 과도 조치로 간주되었던 제도가 이렇게 영국 입법 체계의 제도적 꼬리로 고착화된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타협이 21세기 영국 정치에서 가장 황당한 제도적 기괴물, 즉 세습귀족 보충선거를 낳았다는 점이다. 의사 규정에 따르면, 선거를 통해 상원에 진출한 이들 세습귀족 중 누군가가 사망하거나 사직할 경우, 빈자리는 의회 외부의 <세습귀족 등록부>에 등재된 후보자가 채워야 하며, 투표자는 오직 상원 내 같은 정당에 속한 현 세습귀족에 한정된다. 즉, 소수의 작위 소유자가 또 다른 소수의 작위 소유자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 국가 입법에 참여시키는 것인 것이다.


이런 귀족 내부의 '내부 순환'은 현대 민주 정치에서 가장 기형적인 선거 풍경을 만들어냈다. 일부 보충선거의 유권자는 겨우 3명에 불과했고, 심지어 후보자 수가 유권자 수보다 많은 기이한 현상도 발생하기도 했다. 더욱이 대다수의 세습 작위는 남성 장남에게만 상속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메커니즘은 오랫동안 거의 온전히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폐쇄적인 권력 클럽을 유지해 왔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상원 내부에서 이 제도를 종식시키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관련 제안은 소수의 극단적 보수적인 세습귀족에 의해 절차적 수단으로 자주 막혔다. 그들은 장황한 토론과 의사 규정을 이용해 보충선거 폐지 노력을 반복적으로 짓밟았다. 바로 이런 고집스러운 저항이 마침내 정치계와 대중의 인내심을 다 소진시키며, 스타머 정부의 완전한 개입에 충분한 정치적 기반을 제공했다.


스타머의 ‘수술칼’
2024년 스타머가 노동당을 이끌고 집권으로 복귀했을 때, ‘즉시 세습귀족 의석을 폐지’하는 것은 의회 현대화 개혁의 시작으로 지목되었다. 같은 해 9월 노동당 정부는 공식적으로 <상원 (세습귀족) 법안>을 제출했으며, 목표는 매우 직접적이었다. 1999년 92명의 세습귀족을 보존한 면제 조치를 폐지하여 수백 년간 이어진 봉건 정치의 뿌리를 뽑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정부의 이유는 타당한데, 이는 현대 민주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오랫동안 국가 입법 기관에 세습 요소를 여전히 보존하고 있는 세계에서 극소수의 국가 중 하나였으며, 이것 자체가 제도적 어색함을 구성했다. 웨스트민스터의 권력 논리를 더 깊이 관찰하면 스타머의 개혁은 명백히 민주적 이상에 의해서만 추진된 것이 아니라, 정교한 현실 정치적 계산도 포함하고 있다.


의원이 영생제인 상원은 오랫동안 비대해져 인원이 민주 선출된 하원보다도 많을 정도이다. 이는 재정 비용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입법 효율을 저해하기도 한다. 거의 90명의 세습귀족을 한 번에 제거하는 것은 가장 직접적인 ‘살빼기’ 방법이다. 더욱 핵심적인 것은 정당 세력의 재균형이다. 세습귀족 의석은 오랫동안 명백히 보수당에 편향되어 왔다. 법안이 제출되기 전, 보존된 88석의 세습귀족 중 보수당은 45석을 차지했고 노동당은 겨우 4석에 불과했다. 이들은 보수당이 상원에서 가진 매우 안정적인 후방 표결 기반을 구성했다. 세습 의석을 폐지하는 것은 노동당의 의제에 대한 보수당의 저지 능력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키는 것과 같다.


예상대로 이번 상원 내 투쟁은 빠르게 격화되었다. 반대자들은 한편으로 세습귀족이 소위 ‘기구적 기억’과 ‘전문적 경험’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영생귀족 제도 자체가 이미 수상이 정치적 동맹을 봉건하는 은총 체계로 이질화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상원 심의 단계에 들어서 보수당 귀족은 더욱 전형적인 절차 전쟁을 펼쳤다. 수백 개의 수정안을 제출하고 각 조항을 별도로 토론하도록 요구하며 법안을 늪에 빠뜨리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정착 상황은 2026년 봄까지 계속되었다. 3월 10일 밤, 개혁의 운명을 진정으로 결정한 것은 어떤 고조된 연설이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복도에서 벌어진 현실적인 거래였다. 이번 의회 봄 기간 전에 법안 통과를 확보하기 위해 스타머 정부는 마침내 양보했다. 보수당이 반대 수정안을 철회하는 대가로, 정부는 공식 야당 및 중립 의원 진영에 일정 수의 영생귀족 명을 분배하기로 동의했다. 다시 말해, 일부 현직 세습귀족은 ‘전봉건’을 통해 영생귀족이 되어 또 다른 신분으로 상원에 남을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장을 받은 후 보수당 상원 지도자는 동료들에게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호소했다. 이로써 중세에서 비롯되어 전쟁과 개혁을 거치면서도 끝내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던 혈통 정치의 연결고리가 마침내 공식적으로 끊어졌다. 4분의 1세기를 끌었던 이 개혁은 다시 한번 영국 헌정 진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었다. 혁명적 단절을 통해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 관계 교환, 제도적 수선과 점진적인 타협 속에서 천천히 추진되는 것이다. 

 

마지막 세습귀족들이 2026년 봄 웨스트민스터 궁을 떠날 때, 그들이 가져가는 것은 700년 간의 중세 시대의 꿈이다. 하지만 스타머 정부에게는 더 어려운 문제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세습 원칙이 제거된 후, 더욱 민주적인 정당성을 갖고 현대 정치의 심사를 더 잘 견딜 수 있는 상원은 과연 어떻게 재건되어야 할까? 이것이 영국 헌정 개혁이 아직 넘지 못한 깊은 수역이다.
(저자: 정치평론가, 영국 케임브릿지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생)

문/곡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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