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으로 육아를 하고 싶은데 중국의 육아관념이 낙후되었을까 걱정되어 스웨덴 친구에게 묻곤 한다. 책에서 보니 우리아이 연령대의 아이는 매일 12~14시간을 자야 한다고 한다. 의사가 우리아이 키가 작은 편이라 했다. 주변 아이들과 몰래 비교해보니 정말로 조금 작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강박증이 생겨 잠이 부족해서인가라는 생각으로 시간에 맞춰 제우고 깨운다. 아닐까 의심해본다. 그러나 남편은 이해를 못한다. 잠을 얼마나 자든 키와는 상관이 없다며 내가 너무 깐깐하다 책망하다.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줄곧 나랑 잤다. 저녁이면 젖을 찾고 밤중에 몇 번을 깨는 통에 나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남편이 집에 있어 아이를 좀 봐달라 하면 남편은 방해된다며 귀찮아했다. 남편이 뭘 하고 있었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방에 박혀 일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것이 방해 받아서는 안될 자기만의 시간과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잠을 못 자 예민해져 짜증을 내면 아이에게 젖을 때라는 얘기만 한다.
젖만 물리면 싱글벙글 좋아라 하는 아이를 보면 엄마인 나도 매우 행복하다. 모유협회에서도 2세까지 모유수유를 권한다. 젖도 나오는데 안 할 이유가 뭔가? 모유가 유제품보다 좋은데. 하지만 남편은 인터넷의 글들을 진짜라 믿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 몇 달 동안 땠잖아.” 젖을 때려고도 해 봤지만 아이가 나와 자면서 나만 보면 젖을 먹고 싶어 했다.
과학적인 방법은 젖을 때는 기간에는 엄마가 아이와 떨어지고 며칠 동안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출근을 해야 하니 할 수가 없었고 시어머니도 “낮에 출근해야 하는데 밤에 애를 어떻게 보니?” 라며 남편을 거든다. 이럴 때 시어머니는 항상 남편 편이다. 나도 짜증이 났다. “다른 집 아빠들은 출근하면서 잘만 봐주는데 왜 우리 집은 안되?” 짜증은 났지만 시어머니께 대들 수 없어서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한바탕 싸우고는 아이는 여전히 내기 대리고 잤다. 그러나 젖은 끊지 않았다. 사실 아이가 필요한 것은 젖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의지할 곳인데 남자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부부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의 상황에 대한 우리 둘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 늦은 나이의 출산이다 보니 부모님들의 연세도 많아 아이를 돌봐주실 수 없었고 도우미를 구할 형편도 되지 않았다. 여자에게 출산은 변화와 위기를 가져온다.
처음 엄마가 되면 예상치 못했던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임신 중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아이를 낳고 완전히 매여버렸다. 나는 외향적이고 사교생활을 즐기는 사람인데 베이징은 넓고 우리 집은 근교이다 보니 집에서 출발하면 가장 가까운 상업지구인 국제무역센터까지도 45~60분이 걸린다. 돌쟁이 아이는 근본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여정이다. 외출을 하려면 아이를 유모차에 묶어야 했다.
지하철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하면 나는 온 머리와 몸에서 진땀이 났다. 어쩐다. 곤혹스럽게도 아이는 달랠수록 보채고 안아 옮길 수도 없어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끌었다. 사람들이 모임에 나오라고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가기가 너무 힘들다 보니 서서히 흥미도 사라졌다.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이 어떠냐며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남편은 촬영 때문에 기자재를 가지고 다녀야 했고 나는 운전을 할 줄 모르니 차는 항상 남편이 썼다.
남편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행복해 집에서 아이 돌보기를 너무나 원하는 ‘홈 보이(Home Boy)로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은 별로 재미 없고 친구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외롭다. 도움을 청하려 남편을 찾는 것은 진짜 남편에게 아이를 돌보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남편과 이야기 하고 싶어서였던 적이 많다.
남편은 ‘아이 돌보는 게 먹고 마시고 싸는 것밖에 더 있냐’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문제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거의 매일 한 시간도 자지 못했는데 남편의 태도에서 자상함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 없다. 그럴 때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남편은 업무 특성상 출장이 잦고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었다. 게임에서 왕국을 세우는데, 지구 위의 왕국이 아닌 다른 별의 왕국이다.
오랫동안 사람을 못해 나는 매우 우울했다. 남편도 괴로웠다. 일과 다정하지 못한 나 때문에. 그래서 우리의 관계는 점점 나빠졌다.
우리는 아이 때문에 싸우기 시작했다. 저녁에 아이가 칭얼거려 내가 거칠게 대하면 남편은 아이에게 짜증내지 말라며 화를 냈다. 짜증내도 소용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잠을 자지 못해 신경이 쇠약해져 있었고, 살짝 잠들었다 싶으면 아이가 울어 잠을 깨우기를 몇 번 하다 보면 잠이 달아났다. 너무 피곤한데 잠이 들지 않아 수면제까지 먹어 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여전히 잠은 자기 힘들고 쉽게 화를 냈다.
이후 남편이 시어머니를 모셔왔다. 그러면 그는 아이에서 해방되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원치 않았다. 시어머니께 아이를 돌보라 시킬 수 없으니 말이다. 친정엄마라면 직접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시어머니께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다.
시부모님의 생활습관은 나와 달랐다. 나는 아이를 매일 씻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시어머니는 너무 자주 씻겨도 피부가 상해 아이에게 좋기 않으니 1주일에 한 번만 씻겨도 충분하다 생각하신다. 아이는 청력이 약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아이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 하면 안 되는데, 시어머니께는 이 점을 요구하지 못한다. 시어머니께서 외출해 돌아오시자 마자 아이를 안아주시면 가끔 손부터 씻으시라 말씀 드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렇지 않으면 시어머니도 언짢아하셨다.
시어머니를 모신 후 시아버지도 혼자 외로워 우리 집에서 지내기를 원하셨다. 우리 집은 방 두 개에 거실 하나였는데 아이에게 수유 중이라 아이가 젖을 먹고 싶어할 때마다 옷을 내려야 했고, 그 때마다 나는 시아버지를 피해 다른 방으로 가야 했다. 시아버지는 먹고 난 껌을 화분에 버리고 쓰레기를 창 밖으로 버리셨다. 너무 불쾌하기도 하고 아이의 교육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별것 아닌 문제라도 바쁘고 피곤하고 정신 없을 때는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기가 쉽지 않다.
남편은 둘째 아들이었다. 시어머니는 큰아들을 편애했는데 장손에게는 더 절절 매셨다. 나는 아이가 너무 보채서 밥 먹을 시간도 없는데 시어머니는 집에 가시겠다고 했다. 큰 손자가 학교를 가는 날인데 신발 밑창 까는 것을 깜빡 했다며 신발 밑창 깔아주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작은 일들이 내 맘에는 응어리로 남았다. 이 일로 나는 사람 사이에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은 설득을 하거나 포용하는 수 밖에 없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편은 예술적 기질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계속 잘 풀리지 않았다. 시간도, 기회도 많았는데 그를 가로막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실천력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전에 친구와 함께 임대료 1만위안에 스튜디오를 했다가 일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결국 친구는 다음 해에 사업을 접고 나도 남편에게 그만 두라고 했다. 남편은 크게 화를 내며 그 일이 중요하고 끝까지 할 일이라며 내가 본인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싸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쓰지도 않을 거 뭐 하러 계속 임대하냐는 말이다. 여유 돈도 그렇게 많지 않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돈에 대해 ‘내가 좋으면 쓴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남편이 돈을 관리할 때는 차를 사려 내가 모아 둔 돈을 거의 다 쓰고도 남편 수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묻지도 않았다.
한 달 벌이가 1만위안 좀 더 되니 모아 둔 돈이 조금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그는 돈이 없었다. ‘돈이 없다’는 개념은 출산예정일이 월말이니 월 중에 월급이 나와야 필요한 비용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출산이 앞당겨지기라도 한다면? 남편은 “아이 낳는데 얼마 들지 않는다.”라며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내가 순산을 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1만위안은 들 거라며 적어도 1만위안은 마련해 두라고 했다. 그때 친정엄마도 옆에 있었는데 엄마가 우리의 이런 상황을 보게 될까 걱정됐다.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했던 이유도 남편의 좋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이다. 결혼 전 엄마는 집부터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왜 집부터 사야 돼?”라며 우리 집이 속물이라고 화를 냈다. 엄마가 “집 안 살 거면 결혼하지 마.”라고 하자 남편은 “그럼 안 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울었다.
남편의 성격은 이해할 수 있다. 남편은 자존심이 강한데 어려서부터 집이 가난해 놀림을 받은 경험이 있어 돈 문제에 있어 매우 예민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도 나쁜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 일로 부모님과 남편과의 관계는 계속 좋지 않았다. 엄마는 남편이 조건도 썩 좋지 않으면서 나에게 잘 하지도 않는다 생각했다. “그럼 결혼하지 않겠다” 같은 말은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며 내가 어쩌다 너 같은 사람을 만났을까라는 원망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지금까지도 원망하고 있다. 내가 이혼한 것을 알고 ‘그때 말 안 듣더니 지금 이 꼴 좀 봐라. 돈 없고, 일 없고 나이까지 많으니 앞으로 어쩔 거니?’라며 계속 나를 나무라신다. 듣고 있으면 정말 괴롭다.
그러나 이 일로 남편은 우리 집에 대해 돈을 너무 밝힌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안정감의 문제인데 남편은 돈이 안정감이 아니라 생각한다. 내 친한 친구 한 명은 아이를 낳을 때 돈이 없어 친정에서 아이를 낳은 일로 한참을 울었다. 이럴 때 여자는 약자다. 그래서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 생각하니 거의 멍해졌다.
아이를 낳기 얼마 전 남편이 1만위안 짜리 렌즈를 하나 사왔다. 나는 애 낳고 여유 생긴 다음에 사면 안되느냐고 화를 냈고, 우리는 또 싸우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가 임신을 한 후에 더 뻔뻔해졌고 아이가 생긴 후에 더 격하게 싸운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고 합리적인 요구였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순산을 했고 돈은 3천워안 밖에 들지 않았다. 이후 남편에게 만약 내가 순산을 못해 응급조치가 필요한데 돈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느냐 물었더니 빌리면 된다는 말뿐이었다. 잠시 빌린다고? 엄마가 이 모든 상황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부모님의 뜻을 거슬러 상하이를 떠나 베이징에서 그와 결혼한 것이기에 힘든 모습은 보이기 싫다. 그때 나는 내 멋대로 나 좋을 것만 생각했지 엄마가 얼마나 슬퍼했을지 부모님의 마음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이가 들었고 자식이라곤 나 하나뿐이다.
그때는 남편과 너무 결혼을 하고 싶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만나 즐겁게 대회를 나눴고 매일 열 시간 이상 전화통화 하며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남편은 나에게 베이징으로 오라며 내가 오지 않으면 그가 상하이로 오겠다고 했다. 그냥 하는 이야기인지 사탕발림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말을 우리가 사귀고 있고, 건너와 함께 살자는 얘기로 믿었다.
사실 남편은 좋은 배우자 감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매우 간단했다. 나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성실한 사람. 무조건 나를 아끼고 깊이 관심 가져주지 않더라도 이 것만 100점이면 된다. 돈은 없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생각했다. 돈이야 우리가 벌면 되고, 물질적인 요구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는 등의 일들이 실제로 닥쳐 보니 이 모든 문제들이 다 일어났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도우미아주머니를 구할 형편이 되고 내가 일을 나갈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베이징은 도우미가격이 비싸 괜찮은 도우미는 한 달에 6천위안을 주어야 했다. 우리는 아이를 낳고도 도우미아주머니를 쓰지 않았다. 나는 억척스러웠다. 도우미아주머니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활하며 아낄 수 있는 돈은 모두 아꼈다. 그러나 남편은 씀씀이가 헤픈 성격이다. 나는 돈이 아까워 사지 못하는 물건이 많은데 남편은 돈을 물쓰듯 쓰니 갈등이 일어났다. 훗날 생각해보니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돈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벌 줄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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