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민지에 카트만두에서] 지진은 네팔 현지시각 정오 12시경에 발생했다. 바그와티가 평소와 같이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침대가 한바탕 격렬히 흔들리며 그녀를 깨웠다.
계속되는 흔들림 속에 그녀는 순간 ‘지진이 왔나 보다.’라고 의식했다. 그녀는 공포와 불안을 느끼며 문가로 달려가 죽을 힘을 다해 문틀을 꽉 잡았다.
그때 그녀의 21세 아들 람(Ram)은 지진이 일어난 직후 구조에 나섰다. 애 띠고 준수한 청년이지만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초모룽마봉의 최고 베이스캠프까지 등반한 경험도 있다. 지진발생 당시 그는 친구들과 밖에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의 오토바이로 부상자 3명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 중 한 명은 부상이 심해 “결국 그의 팔을 지켜내지 못했다.”
람은 환자들을 이송한 후에야 가족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신이 이미 끊긴 상태였다. 그는 즉시로 오토바이를 몰고 집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건물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건물에서 뛰어나왔으나 갈 곳이 없어 안전한 공터에 모여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두르바르광장 전체는 여전히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온통 누런 먼지로 뿌옇게 흐렸다.
한참 후 먼지가 걷히고 지진 후 다시 시야에 들어온 두르바르광장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람은 무력한 표정으로 손을 내 저었다. 그의 어머니 바그와티는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라고 반복해서 <중국신문주간>에 말한다.
바그와티와 람 뿐만 아니라 모들 사람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기 어려웠다. 수백 년을 이어온 두르바르광장에 우뚝 솟아있던 정교하고 아름다운 목조건축물들이 무너지고 수 많은 나무들이 높은 누각에 나뒹굴며 벽돌들은 술주정을 하듯 여기저기 널브러져있었다. 계단의 층계마다 흙먼지만 자욱이 쌓여있었다.
고대도시 카트만두의 한 가운데 위치한 두르바르 광장에는 크고 작은 사원과 궁전 50개가 분포되어 있는 16~19세기 네팔건축물 정수의 축소판이다.
두르바르는 네팔어로 ‘왕궁’이라는 뜻으로 네팔의 수도였던 도시만 두르바르광장을 가질 수 있어 카트만두계곡의 3개 고대도시 카트만두, 파탄(Patan), 바드가운(Bhadgaon)에 한 개씩 있다. 당시 3개 왕국의 왕궁광장이었다.
네팔 마라왕조의 6대 국왕이 죽은 후 그의 세 아들이 지역을 나누고 각자 왕이 되어 서로 전쟁하며 많은 돈을 들여 왕궁광장을 지었다.
쓰촨(四川)사람 예량(叶梁, 33)은 카트만두 두르바르광장 각 신전의 이야기와 각 건축물의 스타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는 2년 전 네팔에 온 이후 히말라야산맥 남쪽 산자락에 조용히 자리잡은, 신비감과 매력이 가득한 네팔에 반했다.
노련한 관광가이드인 그는 네팔의 순박한 본연의 자연경관에 심취했을 뿐 아니라 남아시아의 종교와 인문에도 매료되었다. 2년 전 그가 가장 많이 찾은 곳이 바로 카트만두의 두르바르광장으로 하루에 7~8번까지 왕복한 적도 있다.
“많은 분들이 카트만두 두르바르광장은 별볼일 없고 교통이 혼잡하며 인파로 복잡하고 시끄러우며 도처에 비둘기와 걸인들에 정교하고 아름다운 신전이라도 너무 모여있어 질린다고 생각하셔요.” 그러나 예량은 이곳이야 말로 카트만두의 진정한 영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확신할 수 있다고 <중국신문주간>한테 말한다.
광장의 모든 건축물은 대개 서남-북동 방향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3개의 분산된 광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구역은 서쪽으로 많은 신전이 모여있으며 남쪽은 바산타푸르(Basantapur)광장, 북동쪽은 광장의 부속구역으로 황궁옛터의 입구가 있다.
현지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예량 역시 한가할 때면 두르바르광장을 찾아 술을 마시거나 커피를 맛보거나 책을 읽거나 계단에 아무렇게나 앉아 풍경이나 예쁜 여자를 앉아 시간을 보낸다.
카트만두는 도시 전체와 도시생활이 모두 명소의 일부이며 인간과 신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시정’과 명소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몇 년 전 쓴 여행일기에서 예량은 카트만두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광명의 도시의 모습은 복잡하면서도 선명하다. 더러운 물이 고여있는 거리의 옆에는 드림가든(Dream Garden)과 같은 건축물의 걸작이 있고 극도로 쓰러져가는 빈민굴 가운데 백만장자의 드와리카호텔(Dwarika’s Hotel)이 숨어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의 옷을 입은 전통 고행스님이 사람들의 동전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남루한 걸인이 숙련된 몸짓으로 인파 속에 적선을 받아 무루간(Murugan)에 성결한 백합을 바친다. 길 한가운데에서는 황소를 신성한 동물로 받들면서도 양식당에서는 호주 산 고급 소고기를 팔고 있다.
인프라는 엉망이고 무더운 날씨에 물과 전기가 끊기지만 아름다운 헤나(Henna), 자비로운 부처님의 눈,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만나는 신전. 이런 카트만두를 다시는 안 오겠다는 사람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카트만두의 두르바르광장에서는 결혼식도 할 수 있고 장도 볼 수 있다. 신전 계단에 신문을 놓고파는 사람까지 있어 오전 내내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갑자기 닥친 지진이 두르바르광장의 평화를 깨버렸다. 지진이 발생한 10분 후 예량은 SNS ‘친구’들에게 “쓰촨 사람이라 그런지 덤덤하네. 모두들 무사하길”이라며 첫 번째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오후 두르바르광장에 일어난 모든 일을 본 후 18시 36분, 그는 두 번째 소식을 전했다. “남아시아 인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바탕 통곡한다. 내가 사랑하는 문명의 기적, 내가 꿈꾸는 인류의 걸작이 하루아침에 남김 없이 훼손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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