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드가운의 행운과 불행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5-27 09: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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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민지에 카트만두에서]  카트만두 두르바르광장의 문물이 훼손되면서 예량은 다른 문화유산의 ‘운명’이 더욱 걱정되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지진발생 다음날인 4월 26일부터 오랜 기간 네팔의 사진작가 라오뉴(老牛)의 집에서 생활하며 쉴 새 없이 거리로 나갔다. 그들은 네팔 전역의 문화유산과 중요한 고적들을 직접 탐사해 훼손상황을 기록하고자 했다. 


네팔 국가관광국 홈페이지에 공개된,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은 카트만두계곡과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의 탄생지 룸비니(Lumbini) 두 곳이다. 카트만두계곡의 문화유산은 두르바르광장,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사원(몽키템플), 보드나트(Boudhanath)불탑, 바드가운성, 창구나라얀(Changu Narayan)사원, 파탄성, 힌두교의 중요한 사원 중 하나인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 Temple)사원 등 7곳이다. 


그들은 다음 중점탐방지로 바드가운성을 선택했다. 통상적으로 말하는 카트만두는 카트만두계곡을 말하는 것으로 카트만두, 바드가운(박타푸르), 파탄의 오래된 도시 3곳을 포함하는데, 그 중 바드가운은 389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성이다. 


고대 행상들이 티베트의 양털, 약재, 소금이나 중동, 유럽의 최고급 수공제품을 구매해 바드가운에 잠시 머물며 정비하면서 마을이 점차 번성하기 시작했다. 13세기초 마라왕조가 바드가운으로 수도를 정한 후 왕궁과 사원 등을 짓기 시작해 전성기 때는 신전이 172개나 있었으며 화려하고 환상적인 붉은 벽돌담과 검은색 나무조각은 오늘날 까지 남아있다. 성은 1768년 까지 500여년동안 고도(古都)로서의 역사를 이어갔다. 

 


 

예량은 “바드가운으로 가는데 기사님께서 건물이 너무 낡았다며 성 밖에서부터 들어가기를 꺼리시더라고요.”라고 회상하며 <중국신문주간>에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게 폐허를 가로질러 걸어가야 했다.
바드가운의 중요한 광장은 4곳이다. 그 중 두르바르, 타우마디(Taumadhi), 포터리(Pottery)광장은 가까운 거리에 모여있고 가장 오래된 타추팔(Tachupal )광장은 긴 갱도로 세 광장과 연결된다. 


지진으로 신전 3곳이 손실되었으나 예량은 바드가운성의 상황이 듣던 것보다 훨씬 좋다고 본다. 유명한 55개의 창을 가진 궁전은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궁전은 붉은 벽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위에 아름다운 배경과 그림조각으로 장식했으며 검은 단향목을 조각한 55개의 ‘창문’이 있다. 창살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예술적인 형상을 조각하고 형형색색의 보석을 박아 넣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55개의 창문은 55명의 왕비를 상징한다.


사람들이 ‘구 왕궁’이라 부르는 바드가운왕궁은 전성기 때는 정원이 99개까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1934년 지진으로 대부분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이번 지진 때는 훼손이 심하지 않았다. 황궁의 금문은 바드가운의 상징으로 매우 훌륭한 예술품이다. 문을 짓는데 거의 한 왕조의 전성기 세월이 걸렸다. 금문 위로는 4개의 머리와 10개의 팔을 가진 왕실의 여신 탈레주 바와니(Taleju Bhawani)의 아름다운 조각상이 있다. 


부펜드라(Bhupendra) 마라 국왕의 원기둥은 3개의 국왕기둥 중 지진에도 쓰러지지 않은 유일한 기둥이다. 기둥은 금문을 향해 왕궁을 응시하고 있으며 1699년 카트만두 두르바르의 국왕기둥을 모방해 만든 것으로 두르바르의 3대 국왕기둥 중 가장 아름답다. 


바드가운의 두르바르광장은 계곡 안의 3개 두르바르광장 가운데 가장 넓다. 그러나 사원의 밀집도는 파탄 두르바르광장보다 작고 나머지 두 개의 광장만큼 인파로 붐비지도 않는다. 사실 초기에는 바드가운 두르바르광장에도 사원과 건축물이 많았으나 대부분이 1934년 대지진으로 무너지고 텅 빈 탑 기반만 남아있다.


다타트라야(Dattatraya)신전 뒤쪽 골목에는 나무조각상점이 즐비하다. 푸자리 머트(Pujari Math)좌측 벽에 있는 공작창(PEACOCK WINDOW)은 아름다운 공작새가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을 조각한 나무 창으로 네팔 조각의 완벽한 걸작이라 할 만 하다. 다행히 이번 지진으로 벽 아랫부분의 모퉁이가 무너지긴 했으나 공작창 바로 앞에서 멈춰 공작창은 보전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골목의 수탉창(Cock Window)의 모습은 지진 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예량은 “전에는 이 곳을 지날 때마다 보던 수탉 두 마리는 창문에 서 있는 모습이 기세 등등했다”며 지진 이후 맥 없이 머리는 안으로 파묻고 꼬리는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중국신문주간>에 설명했다.


한 영국인은 이 전기소설을 이렇게 평가했다 “네팔 전체가 없어진다 해도 바드가운만 있다면 지구 반 바퀴를 날아서라고 가 볼만 하다.”

 

[저작권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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