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보다 신이 더 많은 나라

신을 모시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소나 양 젖의 유지방으로 만든 기름을 사서 바치는 사람, 금잔화화환을 바치는 사람, 신상 앞의 물을 정수리와 몸에 뿌리는 사람, 손에 물을 적셔 이마와 입술을 가볍게 치는 사람, 신상에 간단히 머리만 한번 조아리고는 떠나는 사람도 있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5-27 09: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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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민지에 카트만두에서]  파탄성으로 가는 길. 작은 골목길 가운데 4~5층 높이의 거대한 ‘전차’가 우뚝 서있다. ‘전차’위에는 높이 10여m 남짓의 기둥이 밧줄로 겹겹이 감겨있고 아래에는 신상을 모시는 금색 지붕의 작은 정자가 있다. 바닥에는 가로로 침목이 가로질러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과장된 느낌을 준다. 


예량이 <중국신문주간>한 말에 따르면 이것은 힌두교 라토 마첸드라나트(Rato Machhendranath, 풍작을 주는 비의 신)과그의 전차로 불교에서는 ‘관세음보살(观世音菩萨)이라 불린다. 


지진 당일은 라토 마첸드라나트 축제일 이었다. 군경들의 보호로 ‘전차’를 푸르다마티촌에서 파탄성 라토 마첸드라나트사원까지 옮길 계획이었다. 원래는 성대한 장면이 연출되나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모두가 그 즉시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고 비의 신과 전차는 깊은 골목길 한 가운데 외로이 버려졌다. 


그러나 신을 극진히 모시는 네팔사람들은 머지 않아 전차 앞에 신에게 바치는 기름등과 금잔화를 두었다. “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거리로 나앉고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도 네팔사람들의 마음에는 신이 우선이죠.” 


혹자는 이것이 사람보다 신이 많고 신전이 가옥보다 많은 나라 네팔의 모습이며 카트만두 타멜(Thamel)에서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식당과 호텔이 모여있는 지역에서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두르바르광장을 향해 골목 몇 개를 가로질러 걷다 보면 4개의 신상이 있는 작은 광장에 도착한다. 

 

이곳은 채소장수들이 가장 모이는 곳으로 신전 아래마다 장수들이 삼삼오오 땅에 앉아 앞에 있는 여주, 가지, 깍지 콩, 버섯을 판다.


신을 모시러 온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다. 양복과 구두차림에 서류가방을 든 젊은이가 바쁘게 걸어와 신상 앞에서 금잔화 몇 송이를 꺾어 머리에 받치고는 총총히 떠난다. 세련되게 치장한 여인은 ‘띠까(Tika)’ 한 덩이를 신상 머리에 바른 후 손가락으로 한 번 찍어 자신의 이마에 바른다. 띠까는 찹쌀로 만들어 신에게 바치는 붉은 가루로 ‘신이 이곳에 계신다.’는 의미이다.


신을 모시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소나 양 젖의 유지방으로 만든 기름을 사서 바치는 사람, 금잔화화환을 바치는 사람, 신상 앞의 물을 정수리와 몸에 뿌리는 사람, 손에 물을 적셔 이마와 입술을 가볍게 치는 사람, 신상에 간단히 머리만 한번 조아리고는 떠나는 사람도 있다.


라트나(Ratna, 77)는 이 작은 광장 근처에 산다. 그는 <중국신문주간>에게 광장의 이름이 아산광장(Ason Tol) 이며 옆에 모시는 안나푸르나 신상으로 유명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신전 옆에서 작은 잡화점을 열어 넓이가 2m 채 되지 않는 문 앞에서 각종 생활용품을 팔았는데 지진 후 걱정으로 가계를 접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매일 이 광장에 와 신을 모시고 각국 기자들이 인터뷰 하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햇볕 아래에서 비둘기에게 쌀 몇 줌을 주는 것이다.


타밀에서 두르바르광장으로 가는 10여분의 짧은 길에는 좁은 골목의 양 옆과 3~5발자국마다 크고 작은 신상이나 신전이 있다. 많은 신전들이 주민 거주지역의 정원 안에 감춰져 있고 역사의 오래된 신상이 거리에 ‘박혀’있다. 예량은 “네팔에는 <철거이주법>이 없기 때문에 이런 오래된 건축물과 신사들이 모두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치과진료소 문 앞에서도 높이가 50cm 남짓 되는 불상을 볼 수 있었다. 온 몸이 새까맣고 형체가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 BC5세기경에 나타나는데 바로 그 시기의 산물인 이 불상을 네팔사람들은 진료소 계단 입구에 아무렇게나 두고 있는 것이다.


네팔에는 왜 이렇게 신상이 많은 것일까? 카비트(Kabit, 25)는 네팔사람들의 관념 중 신의 의미는 복을 내리는 것을 넘어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도록 일깨우는 존재라며 “마음에 문득 안 좋은 생각이 들거나 옳지 않은 생동을 할 때마다 고개를 들면 곳곳에서 신이 지켜보고 있으니 그런 나쁜 생각들을 바로 접게 된다.”고 <중국신문주간>에게 설명했다. 

 

낮에 카트만두거리를 거닐다 보면 많은 남녀노소 주민들의 이마에 “띠까”를 찍은 자국을 볼 수 있는데, 아침에 신을 모시는 의식을 하고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Kabit는 신을 모시는 것이 네팔사람들의 매우 중요한 일상이며 생활 자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고 본다. 80% 이상의 네팔사람들은 힌두교를 믿으나 힌두교가 불교와 고도로 융합되어 있다. 이러한 융합성은 인도사람들을 뛰어넘어 그들 자신도 힌두교와 불교가 무엇이 다른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네팔의 많은 세계문화유산 가운데는 힌두교사원과 더불어 유명한 불교사원도 몇 곳 있다.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사원과 보다(Boudha)불탑이 그것이다. 스와얌부나트사원은 2,500년 전에 지어진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으로 사원 안에 원숭이들이 많아 ‘몽키탬플’이라는 이름도 있다. 


카트만두 동부에 위치한 보다불탑은 높이 38m, 둘래 100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불탑 중 하나로 카트만두계곡을 굽어보는 커다란 부처의 눈 모양이다. 불탑이 처음 지어진 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재의 불탑은 14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라싸(拉萨)에서 카트만두에 이르는 고대 행상 길의 종점에 위치한다.

 

과거 티베트상인들이 라싸에서부터 천신만고를 겪으며 카트만두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한 일이 보다불탑을 찾아 부처님의 보호에 감사하는 것이었다. 


이번 지진으로 스와얌부나트사원의 주요불탑 전기 시카라풍의 아난타푸라(Anantapura)탑은 무너졌으나 사원의 주요부분 거의 보전되었다. 보다 다보탑 역시 재난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경미하다. 주탑 탑찰에 부분적으로 균열이 생가고 동쪽 소탑 탑찰의 윗부분이 무너진 것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크게 파손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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