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녜화링(聂华苓) 작가의 인생 스토리(5)-삼생삼세(三生三世) 물가에서 보내다

90세 녜화링-뿌리는 중국, 줄기는 대만, 가지와 잎은 아이오와.
”나는 한 그루 나무이다. 뿌리는 중국에 있고 줄기는 대만에 있으며 가지와 잎은 아이오와(미국 중서부)에 있다.” 녜화링(聂华苓)은 자신의 일생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녜화링과 남편 폴 엥글(Paul Engle)이 공동으로 창립한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프로그램’은 수많은 양안(两岸-중국과 대만)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3-27 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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녜화링 부부가 그네를 타고 있다.

 

[기자/수졔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보냄)] 녜화링은 사회에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1963년 봄, 녜화링은 대만 미국신문사 뜰에서 열린 칵테일 파티에서 대만에 있는 청년 작가를 미국에 요청하러 온 미국 현대파 시인, 아이오와대학 ‘작가 작업장’의 책임자 폴 엥글를 만나게 되었다. 

 

 

엥글은 놀랍게도 왜소하고 여린 이 여성이 그가 즐겨 읽던 단편 소설 <비취고양기(翡翠猫)>를 쓴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64년에 녜화링은 미국에 갔다. 1967년 녜화링과 폴 엥글은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창립하였다. 지금까지 천여 명이 넘는 작가들이 세계 각지에서 아이오와를 다녀갔다. ”이곳은 축소된 세계이다.” 아이오와를 방문한 작가 류헝(刘恒)이 말한다.

 

“이 프로그램은 서로 다른 종족, 다른 국가, 다른 의식형태, 다른 경력, 다른 성격의 각양각색의 작가와 사람들을 융합시켜 주었다. 새롭고 독특한 교류 방식을 창설한 녜화링과 엥글 선생님의 위대한 창조와 구상이었다.”


중국 대륙 작가 중에서 쇼우챈, 아이칭, 딩링에 이어 왕멍, 왕안이(王安忆), 루즈죈(茹志鹃), 천바이천(陈白尘), 왕증치(汪曾祺), 위광중(余光中), 펑지차이(冯骥才), 베이도우(北岛), 수퉁(苏童), 류헝, 리루이(李锐), 츠즈잰(迟子建), 모옌(莫言) 등 중국 대륙의 당대 유명 작가와 대만의 바이센융(白先勇), 정처우위(郑愁予), 위광중, 양무(杨牧), 린화이민(林怀民), 장쉰(蒋勋), 장다춘(张大春), 홍콩의 둥치장(董启章), 리이(李怡), 중링(钟玲), 판요밍(潘耀明)이 아이오와에 와서 ‘국제작가 프로그램’을 통하여 각국의 작가들과 교류하였다.


“아이오와대학 ‘국제작가 프로그램’에 와서야 나는 세계가 이렇게 자유롭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에 있으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려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책임과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오와를 떠나 대만에 돌아온 린화이민은 ‘윈먼우지(云门舞集)’를 창설하였다. 그 후부터 그는 항상 측근들과 담소를 나눌 때 “오늘 내가 춤을 추게 된 것은 모두 녜화링 선생님 덕분이다.”고 하였다. 장다춘은 녜화링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无所不包,有所不为)” ”그녀가 처신하는 방식과 포용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결단력 있는 선택은 아직도 우리들이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 ”


1976년 24개 국가에서 연합하여 녜화링 부부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였다. 그들을 “국제합작의 꿈을 실천하는 독특한 문학조직의 건축가”라고 표현하였다. 1990년 녜화링의 작품 <상칭과 타오훙(桑青与桃红)>은 ‘미국도서상(美国书卷奖)’을 받았다.


1991년 3월 22일 녜화링과 폴은 폴란드 정부 문화부에서 수여하는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은 즐겁게 유럽으로 친구도 만날 겸 수상을 하러 떠나게 되었다. 녜화링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그녀와 폴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카고에서 환승해야 했어요. 폴은 신문을 사러 가고 나는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죠.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찾으러 갔더니 폴은 쓰러져 있었고 누군가 인공호흡을 해주고 있었어요.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미 늦은 거예요.” 녜화링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나는 그 날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어요. 아이오와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죠.”


지금 훙러우 2층에 있는 폴의 서재는 폴이 살아있던 원래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폴이 자주 사용하던 낡은 타자기는 창 밖에 있는 아오이와강을 마주하고 있다. “나는 물을 좋아해서 물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취재가 끝난 후 녜화링은 아오이와 강변의 식당에 앉아 창밖을 보며 유유히 이런 말을 한다.


“나는 한 그루 나무입니다. 뿌리는 중국에 있고 줄기는 대만에 있으며 가지와 잎은 아이오와에 있습니다. ” 녜화링은 이렇게 자신의 일생을 표현하였다. 요즘 들어 거동이 불편한 녜화링은 먼 거리 여행을 하지 않지만 강변에 와서 산책하는 것을 즐긴다. 녜화링은 이 강에서 폴과 함께 20세기의 인경(人景)-기쁨, 재난, 죽음, 생존을 겪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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