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녜화링(聂华苓) 작가의 인생 스토리(3)--고향의 풍파를 겪은 후에
- 90세 녜화링-뿌리는 중국, 줄기는 대만, 가지와 잎은 아이오와.
”나는 한 그루 나무이다. 뿌리는 중국에 있고 줄기는 대만에 있으며 가지와 잎은 아이오와(미국 중서부)에 있다.” 녜화링(聂华苓)은 자신의 일생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녜화링과 남편 폴 엥글(Paul Engle)이 공동으로 창립한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프로그램’은 수많은 양안(两岸-중국과 대만)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3-27 17:01:22
[기자/수졔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보냄)] 문화혁명을 겪은 중국은 외부를 향해 팔을 벌리기 시작하였다. 그때 중국행을 하고 나서 그녀는 성공적으로 중국대륙 작가인 삐수왕(毕朔望)과 쇼우챈(萧乾)을 제1기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초청하였다.
1979년 초 가을, 중국대륙의 작가를 환영하기 위하여 녜화링과 폴 엥글은 특별히 ‘사슴원’에서 ‘중국주말’이라는 파티를 열었다. 양안의 세 개 지역과 미국, 유럽 등지의 30여 명의 화교 작가들이 30년 단절 후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다들 대륙에 오랫동안 가지 못했습니다. 아이오와에 온 작가들은 대륙작가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쇼우챈.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녜화링이 말한다.
그 당시 쇼우챈은 누명을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다시 작가의 신분으로 국제무대에 선 그녀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다른 작가들은 분위기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유독 쇼우챈만은 원고를 들고 하나하나 읽었다. 원고에도 글씨가 정연하게 쓰여 있었다.
쇼우챈 외에 녜화링은 잇따라 아이칭, 딩링(丁玲), 왕멍(王蒙), 왕증치(汪曾祺) 등 작가의 문을 열었다. 아이칭을 만났을 때 그는 아직 누명을 벗지 못하였다. 처음에 그녀를 만나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여러 번 이이칭을 만나겠다고 부탁해서야 만나게 되었다. 1979년 아이칭이 복귀하고 공식 연설을 할 때 처음으로 한 말이 “나의 대문은 녜화링과 엥글이 열어주었다. 다시는 닫을 수가 없다.”이다.
1980년 아이칭 부부는 아이오와로 가서 미국에서 4개월간의 교류 방문 시간을 가졌다. “아이칭과 고우잉(高瑛)은 아이오와주를 좋아했어요. 이곳이 큰 공원 같다고 했어요.” 녜화링은 아이칭 부부는 미국에 와서도 중국음식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모두 불러서 만두를 먹든지 산시(山西) 칼국수를 먹었다. 시간이 나면 함께 한자리에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문하러 온 중국 작가들과 사슴원에서 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점차 녜화링 부부의 습관이 되었다. 딩링 부부가 미국에 있을 때에는 저녁을 먹은 후 녜화링 집에 와서 넷이서 마당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런 추억들을 딩링은 25편의 방미 기록지에 적었는데 이는 당시의 <원후이월가(文汇月刊)>과 <신관찰(新观察)>에 기재되기도 하였다.
딩링은 이곳이 와서 본 것은 상상 속의 미국과 완전 달랐다. 죽어가는 미국이 아니었다. 그녀는 온통 푸른 나무와 풀로 뒤덮여 있고 강물이 흐르며 아름다운 집들이 있는 아오이와를 좋아했다. 편안하고 편리한 우위에화(五月花公寓) 오피스텔과 없는 게 없는 슈퍼마켓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하는 것도 좋아했다.
초기 미국에 간 중국대륙 작가 중에서 녜화링과 딩링은 각별한 우정을 쌓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딩링은 녜화링에 보내는 편지에 아오이와에 있었던 시절을 말한다. “올해 아오이와는 춥나? 나는 아직 네가 얼음과 눈이 뒤덮인 산길에서 트럭을 몰고 내려가는 장면이 생각하네. 얼마나 걱정했는데. 하지만 너희 부부 둘이서 집을 소유하고 창문 앞으로 경치를 구경하며 글을 쓰고 난로에 기대여 담소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
가장 좋았던 것은 손님들이 적게 오고 친구들과 같이 문학과 예술에 대해 말하고 시집을 보면서 팝콘을 먹고 좋은 차를 마시는 것이었어. 너무 좋다!” 딩링은 후베이에서 구매한 ‘소우쥔 식기(昭君餐具)’를 미국의 ‘소우쥔’인 녜링화에게 선물하였고 타이바이(太白) 음주 주기(酒具)를 미국의 ‘타이바이 시인’인 엥글에 선물하였다.
1986년 딩링이 세상을 떠났다. 녜화링은 회고록에서 이런 글을 적었다. “1986년 딩링이 세상을 떠났다. 1991년 폴도 세상을 떠났다. 딩링과 폴은 상대에게 호기심이 있고 좋아하며 존중한다. 그들은 20세기의 온갖 풍파를 겪었다. 그들은 감성적이고 솔직하며 세심하다.
그들은 같은 날인 10월 12일에 태어났다. 그들은 확고부동한 사명감을 갖고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딩링은 공산주의에 대한 사명감이고, 폴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사명감이다. 딩링과 폴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한 권의 현대사가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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