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보내다
- 그는 매우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상하이(上海)사람들의 표현으로 ‘보온병’이었다. 안은 뜨겁고 겉은 차갑게, 그는 사람과 일, 특히 아내 위원(郁文)을 대하는데 있어 지극정성이었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7-29 11:34:50
[글/우싱탕] 6월 14일 새벽, 챠오스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슬펐다. 많은 나이에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랜 기간 베이징병원의 신세를 지면서도 기질적인 지병은 없어 매일 오전 노래를 부르고 글씨를 쓰던 분이셨다.
아내 위원의 죽음은 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으리라. 그는 매우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상하이(上海)사람들의 표현으로 ‘보온병’이었다. 안은 뜨겁고 겉은 차갑게. 사람과 일, 특히 아내 위원을 대하는데 있어 지극정성이셨다.
2013년 초 위원이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들은 챠오스가 슬픔과 충격에 빠질까 이 사실을 숨기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위원을 못 본지 며칠, 몇 달, 아니 1~2년이 되었으니, 그도 어느 정도 짐작 한 것일까? 간병하는 여동생에게 가끔 “위원은 요즘 왜 안보여?”라며 묻곤 했다.
여동생이 “며칠 전에 다녀갔잖아요. 기억 안나요?”라고 둘러대면 그는 “오” 한마디 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한번은 글씨를 쓰는데 갑자기 ‘奠(제사 지낼 ‘전’)자를 썼다. 위원에게 보내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챠오스의 건강이 아직 괜찮다는 비서 천췬(陈群)의 소식에 모두들 안도하며 기뻐했다. <챠오스, 민주와 법률을 이야기하다(乔石谈民主与法律)> 출판 후 우리는 그의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알차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개혁개방의 중요한 정책입안, 특히 1980~1990년대 초의 중요한 전환기를 지나며 독보적인 견해와 주장을 펼쳤다. 당신의 두 번째, 세 번째 책까지 출판되는 것을 보고 가실 수 있기를 바랐건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챠오스는 ‘혁명의 선배’이고 나는 해방 후 신(新)중국이 길러낸 ‘3개부처 임원’(‘집을 나와 학교로, 학교를 나와 기관으로(走出家门进校门、走出校门进机关门)’)이다. 나이와 업무의 차이 때문에 실제로 직접적인 연락은 많지 않았지만 필자는 챠오스를 매우 존경했다.
그의 말과 인격적인 매력이 마음 깊이 새기고 사실에 입각한 연구태도와 겸손함과 온유함, 나아가 온화, 선량, 공경, 검소, 겸양의 인품을 본 삼아 일을 처리했다.
동료 챠오스
필자와 챠오스와의 관계는 주로 두가지이다. 하나는 위원(郁文)이 주임이던 중국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中联部, 이하 ‘중연부’) 연구실 근무시절로 챠오스는 문제를 연구하고 현황을 이해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위(郁)주임을 통해 필자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이야기도 나누곤 했다.
또 하나는 필자의 중연부 대변인시절 챠오스가 중연부 및 중국국제교류협회의 귀빈들을 만날 때마다 필자가 소식을 발표했는데, 관례에 따라 회견 전 1시간 가량 보고를 해야 했다. 특히 1990년대 초에는 거의 매달 귀빈과의 회담이 있었는데 관례적인 보고뿐 아니라 연구적인 문제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제안하기도 했다.
1984년 가을. 챠오스는 중연부를 떠나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의 후보서기 겸 중국 공산당 중앙 조직부(中组部, 이하 ‘중조부’)부장으로 전임되었다. 필자가 독일의 중국대사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터라 챠오스는 위주임을 통해 ‘독일의 현대 기업제도 현황’이란 주제로 필자를 준비시킨 후 집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며칠 후 필자가 집으로 찾아가 일반적인 소개를 하자 그는 웃으며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좀더 구체적으로 (독일의)현대 기업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기업과 중앙 및 지방정부의 관계는 어떤지, 근로자와 직원들이 어떻게 기업경영에 참여하고 있는지, 중앙정부가 어떻게 경제를 조정하는 지를 알고 싶네.”라고 말했다.
필자가 자세한 보고를 마치자 그는 “많이 알고 있군. 중국에서는 현대기업제도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 이런저런 우려에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어. 우리 자체적으로 모색해야겠지만 외국의 앞선 경험들을 참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독일의 선례가 좋으니 참고해야겠네. ‘자질(资)’과 ‘조직(社)’의 문제가 없으니 말이야.”
1988년부터 소련과 동유럽국가의 정세에 중대한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고 1990년대초 소련해체와 냉전종식으로 국제정세가 급변하면서 중국중앙정치국(中央政治局)이 중연부에 이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였다. 어느 날 저녁 8시경 위주임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한 번 와 달라’고 부탁했다.
챠오스가 소련과 동유럽정세의 변화에 대한 필자의 의견과 중국이 취해야 할 입장을 묻고는 지난 날을 교훈 삼아 더 이상의 공개적인 논쟁은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중국은 국내의 주요사안들을 대부분 자체적으로 해결하며 내부적으로는 ‘개혁개방’, 대외적으로는 ‘평화공존5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1992년초 덩샤오핑(邓小平)의 남순강화(南巡讲话)후 챠오스는 중국 공산당 간부학교 및 외지연설 때마다 “덩샤오핑의 연설은 매우 핵심을 찌른다”며 “근 2년만의 공개연설인 만큼 심사숙고를 통해 주의할 만하고 방지해야 할 당내 문제들과 이데올로기를 명확히 하였으며, 매우 중요한 문제들을 모두 언급해 일부 내용은 문서로 정리된 것보다 예리하면서도 직설적이다”라고 남순강화의 중요한 취지와 의의를 강조하면서 개혁개방을 심화, 촉진하기 위한 관점을 설명하였다.
<챠오스, 민주와 법률을 이야기하다>을 집필할 때 집필회의에서 위(郁)주임은 “당시 챠오스의 연설이 내부참고자료로 편집되었는데 등샤오핑 동지께서 보시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사무처(中办)를 통해 이렇게 좋은 연설은 오랜만이라 전하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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