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좋은 성숙한 정치가 챠오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7-29 11: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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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정치가’ 


외부에서 보는 챠오스는 언제나 넓고 큰 뿔태안경을 끼고 엄숙한 표정에 잘 웃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마음은 따뜻한 것을 안다.


챠오스를 서서히 알아가면서 류정은 챠오스의 연설문을 자세히 보고 다듬게 되었다. 적지 않은 부담이었으나 자신이 챠오스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류정이 본 챠오스는 행실이 올곧고 부당한 일을 보면 상대의 지위가 지신보다 높건 낮건 밉보일 것을 두려워 않고 직언했다. 꿋꿋한 개혁가였던 그는 1990년대 초 잦은 저항에 부딪히면서도 ‘감당해야 할 때는 감당한다’는 신념으로 법치개혁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는 또한, 성숙한 정치가로서 모든 말에 이론적인 근거와 증거가 있었다.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류정은 챠오스가 중연부, 중앙 조직부에서 정법위원회와 중앙 기율검사위원회, 국무원,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처 위원회에서 일하면서도 사적인 인간관계는 거의 맺지 않았다며 “‘내 사람’ 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고 누구에게만 특별히 친근하게 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챠오스는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 있을 때에도 정법위원회나 국무위원의 사람을 쓰지 않고 모두 인민대표대회 내부에서 선발했다. 류정은 챠오스가 임기 동안 총8명의 부서임원을 선발했다며 이를 유례없는 일로 기억했다. 류정 자신 역시 챠오스 임기 동안 비서차장으로 선발되었다. 외부시찰 때 챠오스는 비서 몇 명만 대동할 뿐 서기차장은 거의 함께하지 않았다.


천지핑은 “우리가 너무 엄격히 관리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챠오스를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가정과 주변사람의 요구에 엄격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1986년 챠오스를 수행해 남방으로 시찰을 갔다 떠나올 때 주민들이 직원에게 특산물을 조금 주었는데, 챠오스가 이를 알아 그를 꾸짖고 자신의 다음달 월급에서 특산물 가격을 훨씬 넘는 액수를 때어 현지에 보내라 지시한 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끝이 좋은 사람’ 

 

챠오스가 퇴직한 후 류정은 거의 그를 만나지 못했다. 챠오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과 2009년 중국건국 60주년 축하 열병식 등 중요한 행사에도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2011년 톈지윈은 <챠오스와 함께한 세월(回忆与乔石同志相处的岁月)>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집필하는데 류정의 도움을 구했다.


류정에 따르면 회고록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톈지윈 자신이 전우들을 추억하는 것으로 완리(万里), 후야오방(胡耀邦)과 챠오스의 이야기도 실렸다.


회고록 말미에 톈지윈은 이렇게 적고 있다. ‘그(챠오스)는 차분히 일하며 정이 많고 공명정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하는데 있어서 원칙을 지키되 융통성을 잃지 않았으며, 단체를 이끌면서도 각 지도자 구성원들의 적극성이 발휘되도록 힘썼다. 

 

그래서 나는 제8기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와 챠오스와 함께 일한 5년 동안 아주 즐겁고 순조롭게 일할 수 있었으며 챠오스와 깊은 우정도 쌓을 수 있었다.’ 훗날 그는 류정에게 챠오스가 회고록을 보고 매우 좋아했다고 전했다. 


류정은 톈지윈에게 1986월 4월 챠오스가 정치·법률업무를 분담하는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되었음을 알렸다. 임명 전 국무원 톈지윈 부총리는 당시 전인대 상무위원회 펑전(彭真)의 의견을 물었다.

 

펑전은 챠오스의 임명을 찬성하면서 챠오스가 당적 성격이 강하며 밑에서부터 올라와 실무적인 경험이 있다고 자신이 견해를 전했다. 톈지윈은 핑전의 이러하나 평가가 매우 적절하다 생각했다. 


천지핑은 챠오스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2008년 2월 중앙의 지시에 따라 ‘챠오스 자료정리 팀’이 구성되었고 천지핑이 팀장을 맡았다. 자료정리 팀은 <챠오스, 민주와 법제를 말하다(乔石谈民主与法制)>를 편찬, 출판하였으며 현재 챠오스의 이전 연설을 정리해 <챠오스, 개혁과 발전을 말하다(乔石谈改革与发展)>와 <챠오스, 당의 건설을 말하다(乔石谈党建)>를 집필하고 있다. 


하지만 챠오스는 이 두권의 초안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챠오스가 입원해 있는 동안 천지핑은 자주 문병을 갔는데 막판에는 감염을 우려해 직접 문병을 가는 대신 챠오스의 비서나 경호원에게 소식을 듣는 정도였다. 


<중국신문주간>과 인터뷰를 하면서 천지핑은 감정을 추스르기가 어려웠다. 인터뷰당일 정오 그는 마침 중국공산당 중앙공무청(中共中公厅)에서 보내온 챠오스의 생애를 묻는 공문을 읽고 관련된 부분에 대해 자세히 대조하였다. 


그는 손에 챠오스의 생애를 적은 얇은 종이 몇 장을 들고 무의식적으로 종이를 이리저리 넘기다 덮으며 말했다. “그는 임종 때도 특별한 고통이 없이 갔어요. 중국 사람들 표현으로 ‘선종(善终)’이었지.”


 

[저작권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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