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가 챠오스
- 챠오스(乔石)는 부당한 일을 보면 상대의 지위가 지신보다 높건 낮건 밉보일 것을 두려워 않고 직언했다. 꿋꿋한 개혁가였던 그는 1990년대 초 잦은 저항에 부딪히면서도 ‘감당해야 할 때는 감당한다’는 신념으로 법치개혁에 앞장섰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7-29 11:04:31
[기자/쉬톈] 6월 14일 7시도 되지 않은 새벽. 천지핑(陈冀平)은 비서의 전화를 받고 챠오스((乔石)가 병환으로 위독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1985년, 당시 39세였던 천지핑은 중국 공산당 중앙 조직부(中组部)의 선발로 1993년까지 챠오스 곁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중앙정법위원회(中央政法委员会)비서차장과 중앙사회치안종합치리위원회(中央社会治安综合治理委员会)부주임 겸 반주임을 역임하고 현재 전국정치협상회의(政协)상임위원이자 중국법학회 당 조직 서기 겸 상무부회장을 맡고 있다.
천지핑이 베이징(北京)의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챠오스가 7시 8분 9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후였다. 병원에 있는 동안 쳔지핑은 챠오스와 이별하기 위해 당과 국가의 많은 지도자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았다.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 상무위원회 류정(刘政) 전(前)비서차장 역시 이날 오후 뉴스를 통해 챠오스의 별세소식을 알게 되었다. 1998년 챠오스가 퇴직 한 후에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는 전인대 싱무위원회 톈지윈(田纪云) 전(前)부위원장과 자주 연락하며 챠오스를 만나고 왔는데 챠오스의 말수가 적어졌다 전했다.
비판적이고 독특한 성격 때문에 외부에서는 중국공산당의 주요지도자인 챠오스를 오랫동안 잘 알지 못했다. 온화한 개혁파라는 말도 있고 보수적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천지핑과 류정 이 두 생각에 동감하지 않는다.
둘은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챠오스는 꿋꿋한 개혁파다!”라며 입을 맞췄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1985년 9월 챠오스는 중앙정치국위원과 중앙서기처서기로 추가 선출되고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를 맡았다. 천지핑은 10월 중앙 조직부에서 챠오스 곁으로 배치되어 비서와 업무처 당지부(党支部) 서기를 맡았다.
천지핑이 본 챠오스의 가장 큰 특징은 ‘대단한 실속파’라는 것이다.
챠오스는 말수는 적지만 진실만을 말하며 그 자신의 말로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그저 담담히 “많이 일해야 한다.”는 말 뿐이었다. 천지핑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티베트(西藏)에 대한 챠오스의 연구조사였다.
1987~1988년 티베트의 상황은 심각했다. 1988년 3월 5일 티베트 라싸(拉萨)의 대소사(大昭寺)법회에서 심각한 폭동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챠오스는 중국공산당 중앙상무위원회와 중양정법위원회 서기로서 중앙정부의 파견으로 티베트를 시찰하였다.
출발 전 건강검진에서 당시 64세였던 챠오스의 심장박동에 이상이 발견되었다. 고원지대에 올라가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챠오스는 “(현장에)가지 않고 어떻게 일을 해결할 수 있느냐?”며 티베트 행을 강행했다.
1988년 6월 하순 챠오스는 의사 두 명을 대동하고 티베트로 갔다. 천지핑도 함께였다. 천지핑은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라싸 외에도 카져(喀则), 산난(山南), 린쯔(林芝)까지 갔다. 여정 내내 길이 좋지 않은데다 기압 차이로 인해 차 안의 캔이 찌그러져 음료가 거의 다 쏟아져 나왔다.
라싸에 도착한 후 챠오스는 자치구 상임위원들의 보고를 듣고 개별면담을 가졌다. 그는 현재 상황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생각, 의견을 일일이 물으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대화가 2~3시간까지 이어진 적도 있다.
그 후 챠오스는 폭동이 일어난 사원 현장으로 들어가 라마교의 수장과 대화했다. 사원 밖에 차를세우자 누군가 주차장으로 돌을 던졌다. 시찰을 통해 챠오스는 천지핑에게 “보아하니 한마디 해야겠네.”라고 말했다. 그 후 그는 티베트 국급(局级)이상 임원들에게 연설을 통해 티베트문제의 방향을 바로잡았다.
베이징으로 돌아온 후 챠오스는 중앙에 시찰결과를 보고했고, 중앙은 4개월 후 중앙서기처 서기이자 통일전선부 부장 옌밍(阎明)을 팀장으로, 당시 구이저우(贵州)성 위원회 서기 후진타오(胡锦涛)와 중국공산당 중앙 조직부 차장 류저펑(刘泽彭)을 부팀장으로 하는 중앙 티베트 시찰업무 팀을 파견하였다. 시찰을 통해 중앙은 티베트 팀을 개편해 후진타오를 티베트 당위원회 서기로 임명하고 새로운 통치방침을 확정하였다.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천지핑은 “당시 챠오스의 신분과 나이, 건강상태로 티베트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 시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시찰활동은 훗날 티베트업무를 강화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류정 역시 챠오스의 실속적인 성격을 깊이 느꼈다. 제8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2차 회의 개회 전 그는 챠오스 연설문 초고를 작성했는데, 챠오스가 이를 본 후 그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편지에는 “글은 간결하게, 중복을 최대한 줄여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네……문체가 평이하면서도 과장되지 않도록 신경 써주게.”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류정은 “챠오스는 말 뿐만 아니라 사람 됨됨이도 소박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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