챠오스 퇴직 후의 삶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7-29 11: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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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우싱탕] 챠오스의 중연부에서 서예솜씨로도 유명하다. 외부귀빈과 회견 후 우리는 그의 서예솜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챠오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젊은 시절 미술을 배운 후 흥미가 생겨 습자본을 따라 쓰며 연습하고 치궁(启功)을 스승 삼아 서예를 익히며 교제하고 싶었다고 한다. 

 

필자가 알기로는 챠오스의 팔순 때 치궁이 ‘八袟长青河清海晏,千秋笃祜国泰民安’ 주련을 선물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자내 서예솜씨가 어찌나 유명한지 부처에서나 개인적으로 자네를 찾기가 너무 어려우니 나를 통해서 까지 자네 글씨를 가지고 싶어 하더군. 자네 작품을 구하려고 선물이나 돈까지 직접 보내올 정도야.”라고 말하자 챠오스는 “붓 하나, 돈 한 푼도 받아서는 안되네. 전부 다 돌려보내게. 위주임과 자네가 잘 좀 처리해 줘.”라고 대답했다. 


챠오스와 아내 위원은 자녀와 가족들에게 엄격하기로도 알려져 있다. 위원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챠오스는 방문할 때 가져온 선물은 반드시 돌려보내며 누구든 정과 체면을 봐주지 않는 것을 가족 모두의 규칙으로 세웠다. 

 

중연부 차장과 중국국제교류협회 차장을 지낸 장샹산(张香山)은 이런 챠오스를 잘 안다. 언젠가 그가 필자에게 “챠오스는 많은 중요기구의 요직을 맡고 당과 국가의 중요한 지도자이면서도 한번도 자신의 측근을 임용하거나 파를 가른 적이 없죠. 너무 원칙을 고집하고 인정머리 없이 굴다가 나중에 손해를 볼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당의 좋은 전통이자 중연부 왕쟈샹(王稼祥)부장 때부터 시작된 좋은 풍조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퇴직 후의 삶 


1999년 봄. 챠오스가 당과 국가지도자 직무를 사임한 지 1년 후에 챠오스를 찾았다.
그는 현재 ‘관직을 떠나 홀가분해진 몸(无官一身轻)’으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며 “전에는 일이 바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 불만도 있었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스스로 잘 자라주어 좋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당사(党史)를 연구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경험과 교훈을 잘 기록해 이론으로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론으로 정립할만한 경험과 교훈이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마르크스는 선진국들이 동시에 개혁을 시작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고, 레닌은 10월혁명 초기에 ‘전시공산주의’정책을 시행하고 화폐를 폐지해 훗날 ‘신경제정책’을 변화시켰다. 중국공산당은 1950대 중반부터 좌파정책을 시행해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금새 공산주의로 들어가고가 했으나 너무 조급한 나머지 ‘과유불급’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마오저둥(毛泽东)이 마르크스주의와 중국의 현실을 결합한 이론으로 중국혁명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중국의 현실은 어떠하며 이를 어떻게 연구, 조사할 것인가? 우리는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짐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세계와 현대 자본주의 및 사회주의의 발전 대한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어 그는 중련부에서 일하고 생활하던 시절을 애틋하게 추억하기 시작했다. “일은 참 힘들었지만 단순했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순수했지. 표가 있어야 지정된 가계에서 냉장고를 살 수 있었던 때라 냉장고를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족회의로 토론해서 결정하고 매일 아침 다 같이 강변으로 조깅도 가고 했는데, 기억나나?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었어.”


2011년 9월 필자는 위원의 초대로 챠오스 문집 집필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는 생전의 그녀와 자주 챠오스의 집으로 가 문집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챠오스는 이때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아 말을 많이 하지 못하고 우리 역시 폐가 될까 불편했지만 잘 아는 사람은 그래도 기억했다.


챠오스는 매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족들, 주변 직원들과 함께 <해방구의 맑은 하늘(解放区的天是明朗的天)>, <우리 노동자 동지들의 힘(咱们工人有力量)> 같은 옛날 노래를 부른 후 글씨를 썼다. 매주 영화도 한 편을 끝까지 다 보았다. 위원(郁文)과 그녀와 동료들은 챠오스의 회고록을 쓰기를 바라지만 “챠오스는 자신은 평범한 사람으로 쓸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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