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5년 2월 2일 오후, 텐진(天津), 블링큰은 화넝석탄가스화발전유한공사(华能煤气化发电有限公司)의 친환경 화력발전사업을 참관하고 있다.
|
세 명의 창업자들은 모두 30대의 젊은이로 테크놀로지 업체 창업자 두 명, 미디어 광고 업체 책임자 한 명 이었다.
대화는 중국 창업의 기회와 도전을 주제로 블링큰의 질문에 세 명의 창업자들이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블링큰은 중국의 교육체제와 인터넷 통제가 젊은이들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올해 53세를 맞은 블링큰은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파리에서 생활하며 재즈악단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인들과 토론을 즐겨 했다.
영화 제작을 꿈꾸며 마이크로 영화제를 기획한 적도 있는 만큼 최근까지도 영화를 즐겨본다. 장이모우(张艺谋)의 중국 이름을 정확이 읽을 줄 알며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는 참 아름다운 작품들’ 이라 평 할 정도이다.
블링큰의 부모님은 유태인으로 그가 어릴 때 이혼했다. 9살 되던 해, 어머니의 재혼으로 뉴욕에서 자라던 블링큰은 어머니와 새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그의 새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때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독일 다하우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문예청년이었던 블링큰은 새 아버지로부터 들은 수용소 경험담의 영향을 받아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버드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블링큰은 정치와 예술을 주로 다루는 미국잡지 의 인턴기자로 들어간다. 그는 기자와 정책입안자는 모두 뛰어난 관찰력과 다양한 대중에 대한 정확한 전달능력을 요하는 직업으로 당시 기자의 경험이 현재 정책결정자로서 상호보완작용을 한다고 여긴다.
두 직업의 다른 점은 “외교관과 정책 결정자는 관찰한 모든 의견을 받아들여 각기 다른 의견들 중 가장 좋은 문제 해결 방식을 찾아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블링큰은 얼마 앞에서부터 타고난 예술적 기질이 느껴진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에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말린 머리카락이 더욱 자유분방해 보인다. 그러나 기자의 질문에 대답할 때는 생각이 분명하고 논리정연하며 빠르면서도 신중하게 말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외교관이다.
볜팡(边仿)은 블링큰의 인상을 “매우 내성적이고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이나 외교관으로서 친해지기 쉬운 성격은 아니었다.”라고 평가한다. 볜팡은 36세의 톈진 출신 하이테크놀로지 기업가로 이번 블링큰과의 만남을 가진 세 명의 청년창업자 중 한 명이다.
중국 방문기간 동안 블링큰은 그를 수행한 주중(驻中)대사 보카스텔(Beaucastel)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보카스텔은 웃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반면 블링큰은 언행에 각별히 신중했다.
인사를 나누는 사람마다 정중히 예의를 갖추고 일 처리가 꼼꼼하며 행사가 끝날 때마다 주변의 모든 관계자들과 악수하며 감사를 표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할 때도 그는 매우 편안한 표정으로 대답하다 조금이라도 까다로운 질문에는 노련하고 자연스럽게 대응했다.
[저작권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 미(美)국무부 차관 토니 블링큰, 협력이 논쟁보다 우선2015.04.23
- 토니 블링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2015.04.23
- ‘아태 재 균형’의 해설자2015.04.23
- 조신한 외교관,미(美)국무부 차관 토니 블링큰2015.04.23
- ‘외교적 이상주의자가 아닌 실용주의자이자 합의 도출자’2015.04.23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
많이본 기사
- 경제
- 사회
-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