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1호선의 베이징스토리 6 푸싱먼(复兴门)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3-02 14: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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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류단청] 지하철1호선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이러한 도시에 적응하고 녹아들려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인생이다 .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베이징까지 와서 새 출발하여 베이징과 하나가 되어 각자의 꿈을 쫓아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그들은 지하철1호선에서의 어느 출구를 기점으로 ‘베이징’이라는 도시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푸싱먼(复兴门) 


아이를 낳고 나서 스쇼우(史逍)는 자기가 동성연애자라고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일을 남편에게 알리고 이혼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는 남편이 자극을 받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 혼인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별로 절박함을 느끼지 못했다.


남편은 마음속으로 다른 남자와 같이 있었다면 화가 났을 텐데 여자 둘이 있다고 하니 별로 배신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게 다 여자와 여자의 성관계는 그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인이 잠시 ‘인간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아이도 한 살이 되었기에 부인이 곧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2008년 원촨(汶川) 지진이 있었던 그 해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내심과 인생에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 해에 그는 베이징에 온지 6년이 되었다. 유치원 교사도 해보았고 봉사활동도 해보았고 훠잉(霍营)에서도 살아보고 옌죠우(燕郊)에도 가보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았다. 허베이(河北) 소녀가 용감한 엄마가 되었다. 그 해에 그는 처음으로 몽롱한 추측 심리를 가지고 동성애자 살롱에 들어갔다.


그는 매우 불안해했다. 다들 사람들도 그와 같이 불안해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다수 사람들도 처음으로 자신의 신분과 성취향이 궁금하여 이곳에 온 것이다. 8,9명 되는 그들은 큰 바에 앉아있었다. 그는 아직 처음 들어갈 순간의 심정을 기억한다. 부끄럽고 어색하고 두렵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상대하기가 무서웠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도 무서웠다.


이 모든 것이 행동과 태도에 미치게 되면 부끄러워서 머뭇거린다는 상태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어떤 키 큰 늘씬한 여자의 눈을 끌었다. 그는 남자 옷을 입고 ‘깡패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순수했고 말하는 방식도 아주 특별했다. 직설적인 화법에 그만의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 아가씨가 괜찮네, 마음에 들어요.”라고 생각했다.

그때 스샤우는 이미 가정주부가 되었다. “마음에 들어요” 이 한마디 말은 그에게 칭찬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때 그는 직장도 다니지 않았고 사회 친구도 없었으며 결혼생활에도 무담담해 있었지만 참고 견딜 만했다. 하지만 칭찬 한마디는 그녀를 기쁘게 했고 순간적으로 이곳과 자신은 어떤 관계가 있다고 느껴졌다. 몇 년 후 그는 자신을 칭찬해 준 그 여자애를 감사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그 한마디의 칭찬이 격려가 되어 내 자신을 용감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전에 스샤우는 자신의 사랑 세계에 대한 느낌은 항상 명확하지 않았다. 베이징에 온 지 5년이 되었을 때 그는 부모가 재촉해서 결혼하게 되었다. 남편은 기술 히키코모리이며 베이징대학교에서 졸업하고 수학 성적은 만점 받는 그런 사람이다.


결혼하는 날에 그는 사랑의 느낌을 못 느끼지만 이런 방식으로 부모를 보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낀다. 부모가 계속 그를 재촉하였다. “나는 당시에 효녀가 아니었지만 부모님 말을 잘 들었어요. 바보처럼 결혼하고 나서 이혼하면 자유를 얻게 된다는 어리석고 무책임한 생각을 했지요. 나는 그렇게 첫선 본 남자와 만난 지 100일도 되지 않아 결혼하게 되었죠. 남편의 조건은 좋았어요. 엄마 친구의 아들이었죠” 스샤우가 말했다.


혼인 신고할 때 그는 남편에게 “저는 이혼을 위해서 당신과 결혼했어요. 이 결혼이라는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요. 이혼하고 나는 내가 원하는 자유를 얻을 수 있으니까 당신이 잘 생각해 보세요.”라고 하였다. 남편은 자신 있게 “당신은 날 사랑하게 될 거예요” 라고 하였다. 그녀는 그의 첫사랑이다.

그 당시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만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누구랑 결혼해도 상관없었다. 결혼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임신하고 아이를 낳았다. 전업주부가 된 그는 여유시간이 많았다. 갑자기 생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마음 속 한곳이 텅 빈 느낌이 들었다.


그는 호기심과 용기를 가지고 베이징 ‘동성애자살롱’이라는 모임을 검색하게 되었다. 또한 베이징 ‘여동지센터’이라 불리는 이곳은 중국에서 제일 큰 여성 동성애자 NGO이며 비영리적이고 해외 로스앤젤레스 동성애자센터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몇 번 가본 후 그는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텅 빈 그 느낌이 무엇 때문인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중에는 많은 불확실성들이 존재한다. 그는 자신이 100% 동성애자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성 취향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는 반년 동안 한 여자와 같이 있는 것을 시도해 보았다. 주변 사람에게 혼란을 줄까봐 확인되기 전에는 누구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이 시도는 섹스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에 대해 단순하고 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동성애자이라 느끼고 여자에 대한 관심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섹스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남자와 섹스 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죠. 그 때 나는 과감하게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어요. 느낌은 이상했지만 남자보다 좋았고 남자보다 여자가 내게 더 맞는다고 느껴졌죠.” 


반년 후에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주 확실한 연애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혼하는데 걸리는 게 하나 있다. 아이이다. 이 세상에 온 지 1년 된 아이를 보면 그는 계속 눈물이 나고 자책하게 된다. 이 결혼은 처음부터 잘못 되었고 무책임했으며 두 사람이 같이 인생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결혼이 고향인 허베이었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풍속에 따르고 부모와 주위사람들의 시선에 구속되어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자신의 일생을 살았을 것이지만 베이징에서 그는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다. 그는 아기를 너무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많은 착오 중에서 태어난 아기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기도 자신의 인생이 있고 그도 자신의 인생이 있다. “나는 아기의 인생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질 것이지만 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인생을 희생한다고 하여 아기의 인생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 없는 가정에서 부모의 다툼 속에서 커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이혼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기가 재차 걸리기는 하지만 아기 때문에 속이 풀리기도 했다. 비록 끝까지 완성하지는 않았지만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중국사회가 원하는 모성에 대한 기대를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큰 눈이 오는 밤에 그는 동생과 같이 집에 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그는 그보다 몇 살 어린 동생에게 “나는 커밍아웃을 했다.”고 말했다.


눈이 내려서 인지 주변은 평소보다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동생의 태도에서 세밀한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가 우는 것을 봤다. 그 울음은 아픔과 언짢음, 슬픔이 녹아 있었고 누나가 아주 힘든 길을 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아픔에 대하여 스샤우는 모두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동성애자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고 느꼈다. 주변인들은 그가 상처를 받아서 힘든 길을 선택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아주 냉정하게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선택한 자신이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다. 중국의 현 사회환경 속에서 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아주 힘들고 행복감이 다른 사람보다 낮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는 과감하고 직설적인 사람이다. 동생한테 말하고 나서 바로 부모에게 알렸다. 숨기고 싶지 않았고 정정당당하게 생활하고 싶었다.


결과는 뻔했다. 부모는 울고불고 그보고 변태라고 정신병환자라고 욕하였다. 예전에는 부모의 뜻을 따라 부모를 위하여 결혼하고 애를 낳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성격 중에 묻어있는 항상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괴롭히게 되는 것과는 영영 선을 그었다.


바로보는 시각과 사교계의 역할이 컸다. 쓰후이(四惠)에 있는 동성애자살롱 안에서 그는 많은 사회활동을 하였다. 사회적 지지, 지식적인 홍보, 또한 구체적인 모금 등. 그는 벌써 지식과 점점 강해진 자기 자신을 이용하여 외부의 간섭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상황을 친한 대학 친구에게 알려줬다. “나 커밍아웃했어.” 그 친구는 깜짝 놀라며 “우리 앞으로 보지 말자. 나 임신했거든”라고 말했다.


스샤우는 이해되지 않았다. 좀 지난 후 친구가 하는 말이 “에이즈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다더라” 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좀 놀라웠고 어이가 없다가 그 다음에는 분노했고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어리석고 잔인하고 무식하다니. 이 친구가 대학교육까지 받은 사람인데 그의 지식 중에 동성애자가 에이즈와 같다고 하다니!”


부모가 이해 못하는 것보다 친구의 반응은 더 큰 상처가 되었다. 나이가 비슷한 두 사람은 관념과 인식의 거리 때문에 서로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멀게 느껴졌다.


베이징에 있는 6년 동안 스샤우는 계속 여러 곳에서 월셋방을 구하고 있었다. 부모도 집을 사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의 관념 속에 ‘스샤우가 언젠가는 자기의 가정이 생길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혼하자 부모는 옌죠우(燕郊)에서 그에게 원룸을 사줬다.


오래 동안 스샤우는 옌쟈우에서 푸싱먼(复兴门) 근처에 있는 우풍서점(雨枫书馆)으로 일하러 온다. 사혜에서 푸싱먼까지 스샤우는 자기 인생에서 완전 다른 두 단계를 완성하였다.


푸싱먼은 베이징 최초의 지하철 환승역이다. 많은 기업과 회사들이 있고 번화하고 차도 많고 시끌벅적하다.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사람들은 바삐 이곳을 거처 베이징의 다른 곳곳으로 향한다. 환승역인 이곳을 중심으로 서쪽은 안정하고 보수적이며 습속을 따르지만 동쪽은 개방적인 다른 세계이다. 서로 다른 소리와 사람들,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하고 있다. 


스샤우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지하철이 사람들로 빼곡하게 차있는 것이다. 밀폐된 전철 안에서 그는 다른 남자와의 거리를 의식하게 된다. 결혼이 실패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남자가 싫어서 인지 그는 다른 남자가 자신의 몸을 터치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방대한 인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적인 공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이것으로 인하여 매우 불안해한다.

“남자가 나와 너무 가까이 있으면 나는 너무 고통스럽다, 매우 강력한 생리적인 느낌이다. 원래 남자의 몸을 싫어하는데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남자들이랑 가까이 붙어있는 게 너무나 고통스럽다. 나는 늘 포기(지하철을 타기)를 선택한다. 나는 지하철 승차권 가격을 올리는데 동의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베이징이다. 지하에서 한 세상이고 지상에서 또 다른 세상이 있다. 푸싱먼역 지역에 있는 우풍서점은 여성전문 서점이고 많은 문화행사를 개최하였다. 다원화된 가치관, 예술가 중에 많은 게이와 동성애자가 있다. 그들은 다양한 교육을 받았고 다양한 관념을 받아 들였다. 그는 서점의 이념과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곳에 있으면 그는 자신이 특별하지도 않고 이상하지도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의 대화는 선의를 갖고 있고 일반 생활 관련된 내용을 그와 같이 대화한다. 예를 들면 “지금 여자친구랑 잘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경우에 그는 주변의 무식과 불친절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한 여성 동성애자 친구는 아주 우수하고 월스트리트의 엘리트이다. 한번은 중국에 돌아올 때였는데 그는 상하이에서 한 모르는 남자한테 맞았다. 남자처럼 보였다는 이유로 아무 징조가 없이 “이 자식 뭐야? 자기를 이런 모습으로 만들었어?” 이것은 동성애자를 공격한 아주 심한 사건이다.


“주변에 동성애자가 많은데 그들은 아주 강한 양면성을 갖고 있어요. 직장과 친구끼리 있을 때 완전 다른 상태죠. 그들이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다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하나하나가 전부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과거 이야기들뿐이죠.”


어떨 때는 게이가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 덩어리를 두 여성동성애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두려운 일이다.


그는 NGO조직에서 일해 봤고 사회 지지운동도 해본 적이 있어서 마음은 개방적인 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는 자신의 아이에 대해 직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알게 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아요” 그는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인지력과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봐야 해요. 그에 대해 자신도 있어요. 그는 아주 훌룡한 남자입니다.”


그는 아들이 동생처럼 자신의 성 취향을 알게 되었을 때 받아주고 인정해주며 아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언젠간 그가 나를 원망할 것에 대해 의심해 본 적 없어요” 그는 말한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과 미래에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미래의 교육과 전체의 사회환경을 믿어요. 그에게 오랫동안 준 사랑으로 인하여 그도 나의 인생을 받아드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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