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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신건투증권(中信建投)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신건투증권에 계좌를 개설한 지우링허우투자자는 381명으로 작년의 3배에 달했으며, 4월까지 계좌를 개설한 지우링허우가 128명을 기록했다. 이와 더불어 작년 10%애 그쳤던 지우링허우 투자자 비율이 올해 20%로 증가하였다.
지우링허우가 보유한 주식의 총 자산은 전체 투자자의 1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오름세가 아니었다면 25세 왕쉬안(王轩)은 그의 첫 번째 스튜디오를 경영하고 있었을 것이다. 6년전 가족들에게 돈을 구해 4천 위안 짜리 DSLR 카메라 한 대를 사면서 마음에 매우 걸렸는데, 올해 3월 고등학교 동창 샤오시(小习)가 타오바오(淘宝)에서 300위안을 주고 구매한 주식투자 동영상강의를 함께 보면서 둘은 주식투자를 통해 재무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4월. 아버지가 그에게 주식투자를 하도록 재촉했다. 왕쉬안은 자신이 3년간 저축한 2만 위안과 그의 아버지가 주식투자로 얻은 수익 8만위안을 모아 10만 위안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첫 두 주 동안은 증시판의 빨갛고 파란 숫자에 어떻게 종목을 선택해야 할 지 몰라 한 주도 사지 않았다.
“등락그래프를 보라고만 하지 왜 등락그래프에 별 두 개가 생겼을 때 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 후 고등학교 동창 샤오시가 그와 함께 이런저런 연구 끝에 ‘논리적으로 일리가 있는’ 종목선택이론을 찾아냈고 두 사람은 실적을 보며 ‘큰 손’들을 따라 투자하기 시작했다.
“큰 손들이 등락그래프의 형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인 분석은 맞지 않아요. 중국 증시에는 가치투자가 거의 없어 큰 손들이 투자하면 오르기 때문에 펀더멘털분석 역시 큰 역할이 없고요.” 6개월 전만 해도 왕쉬안은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리라 전혀 믿지 않았다.
1만 위안으로 처음 투자한 종목에서 하루에 500위안을 벌었다. “너무 좋았죠. 공돈 번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 500위안을 번다면 손해나 다름 없어요. 몇 만 위안은 벌어야 기분이 좋죠.”“돈을 다 날려버리면 어떡하나?”는 불길한 질문에 왕쉬안은 웃으며 “권력자 마음이죠(成王败寇)!”라고 대답한 후 “강세시장에서 왜 손해를 보죠?”라고 되물었다.
지우링허우 투자자들 중에는 등락그래프도 볼 줄 모르고 실적분포도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은 ‘친구의 추천’에 더 의지한다. 왕스충(王思聪)의 전망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완다원선(万达院线, 002739)’ 주식을 사는 사람도 있다.
왕쉬안의 모교 베이징(北京)의 한 예술대학에서도 지우링허우 투자자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교내 도서관에서 왕쉬안의 동창 마옌(马炎)의 친구가 전화를 걸어 자신이 어떻게 5천위안을 벌었는지를 신이 나서 소개했다. 마옌은 ‘계좌개설’이 무엇인지, ‘호재’며 ‘악재’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고 ‘금리 및 예금지급준비율 인하’와 증시와의 관계에는 더욱 문외한이었지만 1초 안에 주식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고향의 부모님께 전화 걸어 “주식투자 할래요!”라고 통보했다.
마옌 역시 자신이 종목을 선택하지 않고 두 종목 모두 부모님의 추천에 따라 투자했다. 1만여 위안을 원금으로 다음 날 계좌를 개설하고 삼일 째 생에 처음으로 주식에 투자했다. 2007년까지 마옌이 생각하는 ‘최고 부자’는 외삼촌 이었다. 당시 외삼촌은 집도 몇 채 가지고 있었지만 ‘증시대란’을 겪으면서 빈털터리가 되었고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지금은 다른 사람이 부축해 드려야 한다.” 그러나 마옌은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모님이 추천한 국전전력(国电电力, 600795)을 샀다. 당시 가격은 한 주에 6.09위안. “부모님은 조금만 사라 했지만 한 번에 천 주를 샀다.
훗날 마옌은 파워 차이나(中国电建, 601669) 주식도 샀다. 마엔은 세 번의 상한가 중 마지막 상한가 전에 샀는데, 네 번째 상한가를 친 후 주가가 19.9위안에서 14.07위안으로 떨어졌다.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일 처리를 차분하게 하는 편인데 주식투자만 화면 왜 그렇게 조급해지고 수익과 손해에 연연하게 되는지 정말 괴로웠죠.”
마옌의 아버지는 주식투자를 통해 아들이 신중해지기를 바랐는데 주식투자로 아들이 감정기복이 오히려 더 커질 줄은 생각지 못했다 “주식투자라는 게 구속감이 매우 커요. 개장시간이면 수업시간인데, 5분에 한 번씩 업데이트를 했어요.” 주가가 폭락하던 날 정오에는 밥도 먹지 못했다. 주식투자를 시작한 후로 잠을 설치는 날도 많아지고 “항상 걱정이 있는 기분이었다.”
마옌과 마찬가지로 올해 25세인 장팅(张廷)역시 대학교1학년때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자본금이 몇 천 위안밖에 되지 않아 낮에는 증시판을 주시하고 범에는 이불 속에서 증시논평을 들었다. 주가지수의 등락에 따라 기분도 오르락내리락 했다. 지금은 주식계좌의 ID와 비밀번호를 완전히 잊고 주식을 처분했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
올해 양회(两会) 시작 전 장팅은 다시 한 번 주식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주가지수가 3,300p 였는데 그는 ‘양회효과’를 낙관하고 한 증권사의 휴대폰 App으로 10분만에 계좌를 개설했다. 4월 주가지수가 3748p에서 4441p로 700p 가까이 뛰면서 장팅의 투자자금 2만위안이 손쉽게 두 배로 불었다.
주식투자를 재개하면서 장팅은 매일 아침 8시 반부터 주식공부를 한다. 오후 3시 장을 마감하는 시간까지 신경이 고도로 곤두서있다. 한 매체의 야간에디터이기도 한 장팅은 새벽1시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4시까지는 잠을 설친다. 때문에 그는 매우 초조하다. “저녁에 잠을 잘 못 자면 제 영향력이 약해지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에 시장강세로 제 기력이 발산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달 아우디 차를 뽑는 바람에 지금 장팅의 은행카드에는 어제 들어온 월급 8,800위안뿐이다. 나머지 돈은 모두 주식시장에 투자되어 있다. 그는 친구나 가족들의 투자를 도와 200여만위안의 자금도 관리한다. 휴대폰으로 가족과 시세를 상의하면서 컴퓨터로 주식을 사고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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