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80년대 생 결혼 3년 후 이혼율 가장 높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6-25 1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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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천웨이, 마하이옌] 상하이(上海)시 제2중급인민법원의 보조판사 판용루(潘庸鲁)와 선옌(沈燕)은 2011~2012년 상하이 모 지역법원의 이혼소송 200건을 연구했다. 200건의 소송의 최소 한 명은 빠링허우 였으며, 모두 중재가 아닌 이혼판결신청으로 종결되었다.

 

결혼에는 ‘3년은 아프고 7년은 가렵다(三年之痛、七年之痒)’는 경고가 있다. 연구를 통해 판용루와 선옌은 빠링허우 부부의 경우 이 시기가 앞당겨졌음을 발견했다. 결혼 후 2년 안에 이혼을 신청한 비율은 26% 였으나 3년 안에 이혼을 신청한 비율은 40%를 넘어섰으며, 7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하다 이혼을 신청한 경우는 극소수인 9%에 그쳤다.


2008년 11월 1일에 만나 만난 지 16일 만에 결혼을 하고 결혼한 지 1년 만에 ‘이해부족’을 이유로 이혼을 신청한 빠링허우 부부도 있었고, 결혼 25분 만에 이혼을 한 빠링허우 부부도 있었다.
두 보조판사는 “빠링허우는 상대방과 조화하고 적응하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결혼에 대한 비(非)이성적인 인식과 이해 및 자신의 성격문제로 이혼을 신청하는 시간이 전반적으로 앞당겨지고 사례도 급증했다. 경솔한 사회분위기가 개인에게 나타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닝샤(宁夏) 인환(银川)여성 멍쉬에(孟雪)는 만남에서 결혼까지 한 달 만에 끝냈다. 2014년 12월초에 전남편을 처음 만나 그 달 14일에 약혼하고 20일에 결혼한 것이다. 결혼식 당일이 겨우 다섯 번째 만남이었다.
남자는 만난 지 1주일 만에 사주를 보더니 그 자리에서 멍쉬에에게 결혼이야기를 꺼냈다. 멍쉬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만난 지 30분 만에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둘은 몇 마디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그 후 메시지나 전화도 주고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갑자기 결혼까지 하게 되었을까? 


남자에 대한 멍쉬에의 인상은 ‘키 170cm 이상에 괜찮게 생긴 남자’ 였다. 결혼은 음력 설 이후에 하고 싶었으나 병약한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얼떨결에 결혼을 승낙했다. 가뜩이나 27의 나이로 결혼이 늦은 편이라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차였다. 

결혼 1주일 후 그녀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남편이 자신에게 너무나 냉담했다. 거의 웃지도 않고 식사할 때도 말 없이 밥만 먹었다. 대답도 ‘응’, ‘아’ 등의 감탄사가 전부였다. 결혼한 다음날 “좋아”라고 말 한 것을 제외하고는 감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2015년 2월 말 두 사람은 이혼에 합의 했다. 멍쉬에가 정확히 날짜를 계산해 보니 2개월 5일간의 결혼생활이었다.
멍쉬에는 “지금 생각해도 제가 왜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엉겁결에 수렁으로 들어갔다 만신창이가 되어 나온 것이다. 요즘 그녀는 다시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혼을 통해 ‘결혼은 대충하지 말고 잘 알아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광시(广西)여성 바이샤오(白晓)는 결혼 전 남편과의 교재기간이 1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도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와 달리 남편은 농촌출신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봉황남-농촌에서 태어나 어려운 집안형편이지만 고생스럽게 대학에 합격하고 졸업 후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남자’이었다. 바이샤오는 처음에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나 뜻밖에 이 차이 때문에 두 사람의 골이 깊어지고 이혼으로 끝났다. 


두 사람은 경제관부터 매우 달랐다. 남편은 자신에게 매우 ‘인색해’ 손을 베이고도 동네 진료에 서 몇 바늘 꿰맬 뿐 큰 병원에 가면 돈 낭비라며 가지 않았다. 바이샤오가 임신해 입맛이 없어 외식을 할 때도 단체구매쿠폰으로 먹었다. 12위안 밖에 되지 않았지만 검소한 남편은 돈을 함부로 쓴다고 불평이었다. 


남편은 돈 문제 이야기만 나오면 이상하게 예민해졌다. 시골에 있는 시댁에 전자레인지를 사 보내드릴 때였다. 바이샤오는 시댁에서 스테인리스그릇을 사용하던 기억이 나 ‘전자레인지에 사용할 수 있는 자기그릇도 사드려야겠다.’고 권했다. 남편은 이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우리 집이 가난해서 싫다는 거야?!”라며 화를 냈다.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시댁의 ‘남존여비’ 사상이었다. 딸이 태어난 후 남편은 병원으로 두 모녀를 보러 와서 침상에서 3~4m 떨어져서 가볍게 턱을 한번 든 게 전부였다. 시어머니는 아이의 사주를 보더니 딸이 아버지를 ‘이겨먹을’ 팔자라며 앞으로 절대 ‘아버지’라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다. 


37세 후베이(湖北)남자 샤오러우(小楼)는 작년에 이혼했다. 2007년 그는 군대에서 제대해 소개로 26세의 농촌여자를 만났다. 사오러우는 고향에서 소자본경영으로 스테인리스철강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5~6만윈안의 연간수입으로 식구들이 현 급 도시에서 생활하기 충분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빠링허우 아내는 연해도시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할지언정 남편 집에 남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다정한 편도 아니고 시부모님과 함께 대가족생활을 하는 것이 아늑하고 낭만적인 소가족생활을 꿈꾸던 그녀의 환상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한번 가보자’는 선택을 했다. 


판용루와 선옌의 연구에 따르면 상하이의 이혼소송 200건 가운데 결혼 전 이해부족으로 이혼을 신청한 경우가 23%를 차지했다. 교재시간이 짧아 서로의 생활습관이나 결혼에 대한 태도, 나쁜 취미, 부모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결국 기대와는 다른 결혼생활에 절망하고 결혼생활을 포기하는 것이다. 


‘몰라서 결혼했다’와 ‘알아서 해어진다.’ ‘급작스런 결혼과 이혼’은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빠링허우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함부로 결혼하는 것이 이혼의 폐해보다 크게 부각되는 것은 빠링허우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장기적인 생각과 계획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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