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왕스징] 현재 외동딸이 아닌 70년대 생 여성들의 기다림은 애타고 무모해 보인다. 그들은 사소한 일 하나에도 흥분을 금치 못한다. 거의 모든 응답자들이 “무슨 소식 있어요? 정책이 언제쯤 완화될 것 같아요?”라고 물었지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친샤오시는 “정말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왜 둘째 아이를 낳으면 안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친샤오시의 남편은 아내가 둘째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는 데 동의했다. 아내가 임신을 하면 회사를 그만 둘 계획이다. “그만 둘 때도 됐고, 일이야 다시 찾아보면 되죠.” 그는 19살부터 CNPC에서 일하며 최근에는 경제소득이 없을 때를 대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모든 남편들이 이렇게 아내를 지지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윈난(云南) 추슝(楚雄)의 리위(李玉)는 위주페이에게 자신이 벌써 임신 4개월인데도 남편이 여전히 낙태를 강요한다고 말했다. 위주페이가 리위의 남편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어 여러 가지 이야기로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리위는 “도움을 받기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경했다.”고 말했다. 올해 41세인 리위는 2014년초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다들 2015년에 정책이 완화된다고 하니까 피임장치를 띠고 몸을 만들고 싶어요. 정책이 시행된 다음에 몸 만들려면 늦으니까요.”
11년 만에 아이를 가진 리위는 2014년 9월 3cm의 자궁근종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올해 4월 5일 근종이 8.8cm까지 커졌다. 아이를 지우고 근종을 잘라내면 41세인 리위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희망이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여전히 리위가 아이를 지우기를 바란다. 경찰인데 “앞장서서 정책을 어길 수는 없지 않은가.” 부부는 둘 다 집에서 유일한 대학생이다. “힘들게 공부 시켜주셨는데 이 일 때문에 직장을 잃을 수 없잖아요.”
부부는 임신 4개월 중 3개월을 싸웠다. 남편은 아이를 지우지 않으려면 리위가 직장을 그만 두고 쿤밍(昆明)에 숨어 아이를 낳고 혼자 기르다가 아이가 자신의 직장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게 되면 돌아왔으면 한다.
뜻밖에도 단호한 시어머니 덕에 남편은 결국 아이를 낳기로 했지만 리위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이사를 나가야 했다. 혼자 들어간 새 집은 인테리어 냄새도 빠지지 않아 베란다에서 잔다. 7월 11일 4차원 컬러초음파검사를 해보니 자궁의 근종이 10.8cm로 자라있었지만 아기는 건강했다. 1주일 전에는 남편이 6개월 된 태아의 태동도 느꼈다. “낳기로 했으니까 앞으로 함께 부딪혀 가야죠.”
위주페이는 70년대 생 여성들이 정책이 시행되기를 기다리고만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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