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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춘위안(李春元), 황사는 살인 도구이다. 황사
앞에서는 선한 사람과 나쁜 사람, 가족과 원수, 높고 낮음과
귀천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이용하여 인류 개개인이 피해를 받도록 한다. |
“정치의식 강한 편”
사실 리춘위안이 환경보호국으로 전업해 온 것은 2009년 초의 일이다. 초기에는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일부 전문적인 분야는 각 부처 동료들에게 배우곤 한다.
그러나 2년차부터 <중국환경보(中国环境报)>의 특별 평론위원으로서 <인민일보>에 사설을 쓰기도 했다. 책상 위의 대나무 필통 위의 원고료 영수증이 눈에 띈다. 이전에도 그는 환경보호 뉴스 평론집 <생각의 푸른 자취(思绿迹)>를 출판 하였으며 그 전에는 군대산문 <몽흔집(梦痕集)>을 출판한 바 있다.
그의 필명 ‘망원(望元)’은 그가 1962년 백중에 랑팡 광양(广阳)의 농촌에서 태어난 것에서 붙여졌다. 7월 13일 백중 ‘해를 바라보며 첫째를 낳았다(望日生元)’는 뜻에서 ‘망원’이라 부른 것이다.
홍보교육센터 차이상보 주임은 “리(李)국장은 군인의 기질이 매우 강하면서도 일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꼼꼼해 ‘투박함 가운데 세심함’을 갖춘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군대에서도 녹색진영에 있더니 지금은 녹색환경보호 일을 하고 있네요. 군대에서 국경지대의 안전을 지켰다면 지금은 환경의 안전을 지키는 거죠.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통통한 체격의 리춘위안이 우렁찬 목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리춘위안은 1980년 입대해 베이징군관구 후방지원부 병기수리공훈련대대에서 조립업무를 배워 총과 대포를 수리했다. 전문적인 표현으로 ‘수공도구로 금속부품을 냉 가공하는’작업이었다. 1년을 배운 후 합격해 야전부대 수리소로 전역했다.
젊은 시절 글 쓰는 것을 좋아한 그는 야전부대 수리소의 벽보를 담당했다. 언젠가 “수리소의 벽보가 항상 엉망이더니 요즘은 어떻게 이렇게 좋아진 건가?”라는 정치처 홍보부장의 질문에 지휘관이 “새로 전역한 리춘위안이라는 친구가 디자인도 잘하고 글도 잘 씁니다.”라고 대답했다.
홍보부장이 “그럼 벽보의 글씨도 그가 쓴 건가?”라고 되물었고 이에 지휘관은 “위의 글씨뿐만 아니라 원고를 써서 다른 사람들이 따라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리춘위안은 때마침 보도원을 모집하고 있던 부대 홍보부로 가게 되고 그가 쓴 원고는 2개월만에 중앙인민방송국의 방송을 탄다. 그는 당시 원고제목 <5개규율과 4개미덕을 갖춘 새로운 인재육성(五讲四美育新人)>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역시 당시 글 쓰기에 재미가 들려 조직에 발탁되었다며 “지금처럼 제가 원고를 써 주면 동료들이 타이핑을 해 줬어요. ‘반신불수’죠. 너스레를 떤다.
부대에서 복역하는 28년 동안 리춘위안은 보도나 홍보업무를 도맡았다. 그는 “우리 때는 가치관이든 부대교육이든 모든 것이 엄격했죠. 정치위원 시절에는 교관까지 했다 보니 정치의식이 강한 편이에요.”라고 말한다.
최근의 환경보호업무에 관해 그는 “강경하지 않으면 정말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제18대 이후 중국 정부가 환경에 대한 지도부의 설계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1월 1일부터는 작년 4월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 18차회의를 통과한 <환경보호법 개정안(环保法修订案)>이 시행 중이다.
이는 25년 만의 최초 개정안으로 <신환경보호법(新环保法)>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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