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리(崇礼), 한 도시의 올림픽 도전기(1)
- 스키장이 처음 들어선 1997년부터 베이징(北京)과의 공동개최를 신청한 2013년까지 불과 17년. 허베이(河北)에서 뒤에서 세 번째로 가난한 도시, 국가지정 빈곤지역이 어떻게 올림픽 개최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4-22 10:02:41
[기자/푸야오(장자커우(张家口)에서)] 3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강에는 아직도 두꺼운 얼음이 얼어있다. 6개월 전에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거리에서 여기저기 반짝인다.
장청(张承)고속도로를 따라 달려 충리현으로 들어섰다. 입구의 올림픽 개최 신청 표지가 눈에 띈다. 길목을 돌아가니 넓게 잘 닦인 도로 양쪽으로 유럽식 최신건물들이 들어서있다. 계속 가다 보면 시계탑, 광장, 얼음문화박물관이 있는 작은 중심지가 유럽의 작은 마을에 온 듯 하다.
이곳은 허베이 장자커우시 충리현, 2013년 11월 베이징이 장자커우와 2022년 동계올림픽 공동개최를 신청하면서 충리는 빙상종목경기 장소로 포함되었다. 베이징과 어깨를 나란히 한 빈곤지역인 충리는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그때 이후 충리를 방문한 여행객들은 중심가 두 개뿐인 이 작은 도시의 경계가 시계탑인 줄 알았을 것이다.
시계탑 남쪽으로는 제법 현정부소재지다운 모습이 펼쳐진다.
옛날식 건물들, 사람과 차로 붐비는거리, 거리를 드나드는 장사들, 과일을 파는 가판, 기본요금 5위안의 3륜오토바이텍시, 멀지 않은 곳의 언덕으로 움집과 니와집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시계탑 북쪽은 최근 들어 조성하기 시작한 관광상업무역개발지구이다. ‘설경’, ‘설산’, ‘올림픽의 눈’,’눈의 사랑’… 눈길이 닿는 곳마다 ‘눈’과 관련된 가계의 간판을 볼 수 있다.
백 여 개의 호텔과 여관, 각종 고급 빙상장비 가계를 비롯해 일본식 이자카야, 바베큐, 카페, 발 마사지에 길 모퉁이만 돌아서면 각각 다른 분위기의 바(Bar)도 4개나 있다. 모두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이다.
시계탑 하나가 두 개의 세계를 갈라놓았다.
논쟁 중에 올림픽 개최를 신청하다
2013년 11월까지 얼마 전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베이징이 동계올림픽 개최까지 신청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장자커우가 공동 개최지로 선정되어 베이징과 함께 올림픽 개최를 신청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장자커우는 지리적으로 베이징과 너무 가까워 눈이 많이 오지 않는데다 미세먼지 문제도 있다. 경제력으로도 매우 빈곤하다. 13개의 현 중 10개가 국가지정 빈곤지역으로 관할구역 내의 빈곤지역 수가 허베이성 전역에서 가장 많고 베이징에 비하면 각종 인프라는 더욱 심각하게 낙후되어 있다.
이렇게 이름조차 ‘장자지에(张家界)’와 헷갈릴 정도로 보잘것없는 지역이 동계올림픽으로 하룻밤 사이에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사실 중국의 동계올림픽 개최 신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전의 준비과정에서도 장자커우는 우선순위 도시가 아니었다. 2002년 중국 올림픽준비위원회가 ‘얼음의 도시’ 하얼빈(哈尔滨)을 정식으로 추천하며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하얼빈은 경기장, 인프라, 재정상황 등 IOC 1차평가 심사항목 가운데 ‘대다수(또는 모든)기술지표의 점수가 기준점수보다 낮아’ 2차평가로 넘어가지 못하고 후보도시에 머물렀다.
하얼빈은 적극적으로 준비 끝에 2009년 지린(吉林), 창춘(长春)과 연합하여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에 다시 한 번 도전하지만 중국 올림픽위원회가 1차평가 후 신청을 거절했다.
동계올림픽경기는 빙상종목과 설상종목으로 나뉘는데, 빙상종목은 실내에서 진행되므로 기후조건에 대한 요구가 많지 않다. 이에 비해 설상종목의 요구조건은 더욱 까다롭다. 하얼빈은 눈과 얼음이 풍부하고 국내 1류의 스키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나 채울 수 없는 결함이 한가지 있다.
IOC는 동계올림픽기간 동안 개최도시의 기온이 -18℃ 이상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기간 중국 둥베이(东北)지역의 기온은 보통 -20℃~-30℃이기 때문이다. 관계된 국제동계스포츠조직은 중국 둥베이지역의 스키장을 답사한 후 기온이 너무 낮아 눈 위에 얼음결정이 두껍게 끼어 고산스키 등 경기에 지장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기온이 너무 낮아 선수들의 성적뿐만 아니라 경기장의 관중동원에도 불리하다.
베이징은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서 대회경험이 풍부하고 남아있는 경기장은 건축 초기부터 제빙설비를 설치해 빙상경기장으로서의 조건을 완벽히 갖추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눈과 얼음이 풍부하고 하얼빈보다는 기온이 높으면서도 수도경제권에 위치한 장자커우가 좋은 후보지로 떠올랐다.
충리의 경우 매년 11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 스키를 탈 수 있고 겨울의 평균기온은 -12℃정도이다. 또한, 베이징과 협력하면 빙상과 설상종목을 분담하며 서로의 강점을 보충할 수 있다.
3월 26일, IOC 평가단은 장자커우에서 경기장계획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들었다. 베이징동계올림픽개최 신청위원회는 뛰어난 자연조건, 완벽한 스키장시설, 편리한 교통, 깨끗한 공기 등을 장자커우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리고 이 모든 장점들은 산지의 작은 현 충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년 전에 들어선 최초의 스키장
19년 전 스키를 민간보급을 위해 중국 최초의 전국 스키대회 우승이자 당시 국가스포츠위원회 스키처장 싼자오졘(单兆鉴)은 베이징 주변에서 대중들이 스키를 즐기기 알맞은 지역을 찾고 있었다. 수 년간의 답사 끝에 베이징에서 240km의 거리에 산과 눈이 많은 장자커우시 충리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지도에서 보면 충리는 네이멍구(内蒙古)고원과 화베이(华北)평원의 길목에 위치하며 시거우(西沟) 중거우(中沟), 둥거우(东沟)의 3대 골짜기가 남북을 관통하고 있다. 이렇게 산과 골짜기가 이어지는 지형에 따라 나타나는 독특한 지역성기후로 겨울에는 시거우에서 들어오는 북서쪽 찬 기류가 동남쪽의 따뜻하고 습한 기류와 만나 상승지역과 기류 세력 차의 작용으로 비가 쉽게 내린다. 50km 밖의 장자커우만 해도 눈이 많이 오지 않는데 충리는 큰 눈으로 산길이 막힐 때도 많다.
또한, 충리는 산세가 경사 5°~35°로 완만해 스키를 타기에 매우 좋다. 녹지율도 높아 식물들의 수분이 공기 중으로 충분히 공급되고 있어 쌓인 눈이 빨리 녹지 않고 적설일수가 연간 150일 이상이다.
전공적으로 보면 스키장의 가장 중요한 입지조건은 산의 형체와 경사이다. 싼자오졘의 소개에 따르면 “산의 형체는 언덕모양으로 지나치게 가파르지 않고 경사면이 매끄러워야 하며, 산자락은 어느 정도 굽어 북쪽이나 북동쪽으로 향한 것이 좋다.”
그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당시 한 대형그룹의 사장을 맡고 있던 거우징(郭敬)에게 충리 쓰타이주이(四台嘴)의 시취에량(喜鹊梁)을 추천하였다.
거우징은 당시 겨우 36세의 젊은이로 여행을 해 본적도 없고 스키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베이징에서 자라 베이징에서 그렇게 가까운 곳에 눈 덮인 산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도로표지판 하나 없는 시취에량에 물어 물어 도착한 그는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절경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광활한 설산, 온 산과 들에 가득한 자작나무 숲, 두껍게 쌓인 눈…
싼자오졘의 장려로 거우징은 ‘막연한 상업적 충동’으로 근처의 야오즈완(窑子湾)촌에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추운 그 곳에서 미지의 개척여행을 함께 시작했다.
두 사람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국가지정 빈곤지역이었던 충리의 극심한 빈곤과 패색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석탄을 때지 못해 햇볕으로 난방을 대신하고 있었고 90년대만해도 마을 전체에서 ‘5위안짜리 지폐 한 장을 거스를 수 없었다’. 바로 근처에 있는 둥핑(东坪)금광의 운송로가 시취에량으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였다.
그 후 현정부에서 관광국, 임업국, 마을위원회에 이르기 까지 정부기관이 하나 둘 옮겨오면서 스키장건설에 대한 지원이 고무되었으나 재정난으로 쓸 수 있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지원을 하겠다고 동의했던 기업들마저 갑작스런 재무위기를 맞았다. 결국 거우징은 자신의 주식을 팔아 마련한 10여만 위안으로 스키장을 지었다.
1996년 12월 그들은 싼자오졘의 지휘로 시취에량 북측으로 산길을 내고 눈이 모자라는 지역에는 농민들에게 한 포대에 0.5위안을 주어가며 산으로 눈을 지고 날랐다. 그렇게 눈을 채워 삽으로 다지는 등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300m의 도로를 닦았다.
1997년 정월초하루. 드디어 사이베이(塞北)스키장이 개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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