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해외 구원 능력의 성장

이번 네팔지진 구호활동 중 중국인들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5-26 16: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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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30, 네팔 카트만두, 중국Blue Sky 구조대는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IC

 

[기자/쉬팡칭] 이른 아침. 두 명의 네팔인이 카트만두 타밀구에 위치한 우하오(吴昊)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카트만두 북부에서 30여km의 거리를 오토바이로 달려 온 그들은 우하오의 도움을 얻고자 했다. 5월 1일, 네팔에서 강도 8.1의 지진이 일어난 1주일이 지났으나 그들이 있는 마을은 경찰의 인명피해조사 전화 외에 외부의 다른 어떠한 원조도 받지 못했다. 마을 주민은 약1,500명. 1982년생 우하오는 2년여 전에 네팔에 왔다. 

 

그가 공동으로 창립한 카트만두 C-Center 국제언어학원은 현재 6명의 중국인과 2명의 네팔인으로 구성된 단체로 지진 후 즉시 구호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두 가지 업무를 병행하기로 방향을 정하였다. 네팔의 고적피해현황 통계와 우하오를 필두로 한 지진피해지역의 구제적인 인명 및 가옥 피해현황 조사 및 발표, 그리고 마을을 조사해 네팔로 오는 중국 구호단체들의 구호활동을 연계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음날 우하오 팀은 지프차를 빌려 1시간 남짓을 달려 마을에 도착했다.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얼마간 달려 지진 후 산의 지반이 약해진 것을 고려해 일행은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어렵게 마을에 도착한 우하오는 두 청년을 통해 마을대표와 청장년들을 모아 표를 나눠주며 어떻게 재난현황을 집계할 것 인지와 더불어 간단한 안전보호와 구조상식을 소개했다. 그날 저녁 이러한 소식들이 우하오 팀 사무실로 피드백 되어왔고 다음 날 우하오가 이를 중국 구호기관에 전달했다.


비공식통계에 따르면 지진 후 네팔을 찾은 중국 구호기관은 20여개에 이른다. 국제구호단체 외의 구호단체는 모두 민간조직이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후 우하오는 처음 도착해 현지의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구호기관들에게 명확한 구호장소와 방향을 제시하였다. 


중국 구호기관들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 네팔의 중국기업들이 먼저 구호활동을 펼쳤다. 이번 구조활동 중 중국인들의 참여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카트만두로


4월 29일 청두(成都)에서 카트만두에 도착한 중국 항공편 CA437은 구호활동을 위한 전용기로 마련되었다. 승객은 20여명에 불과했으나 항공사는 기존에 계획했던 중형비행기에서 대형비행기로 전환했다.
항공사의 한 직원에 따르면 “구호물자가 너무 많아 대형비행기로 전환했다.”고 한다. 


취재를 위한 기자와 본국으로 귀국하는 네팔인을 제외한 승객들은 모두 ‘원조 팀’이었다. 중국과학원 추이펑(崔鹏)은 네팔 관계당국의 초청에 응해 전문가 9명과 함께 네팔을 찾아 지진 후 산 기반의 과학적 판단을 돕고 산사태 등 추가재난을 방지했다. 추이펑은 2008년 쓰촨(四川) 원촨(汶川)대지진 구재활동에도 참여한 바 있는 중국의 유명한 지질재해전문가이다. 


China Railway 14국그룹 해외지사장 두루이하이(杜瑞海)와 당위원회부서기 류창빈(刘长彬)은 수하물이 적재허용중량초과로 탑승 전 작은 문제가 있었으나 수하물의 대부분이 구호물자와 식품이라는 것을 안 후 항공사는 적재를 허가하였다. 


4월 26일 지진이 발생한 다음날 이른 아침. 둥광셴(董光贤)은 네팔 무장경찰본부총장으로부터 재난구호를 위한 대규모기관의 긴급지원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다. 둥광셴은 China Railway 14국그룹 해외지사의 사업대표이자 네팔 무장경찰학원 건설사업의 주요 책임자이다. 


상급기관에 보고하여 비준을 얻은 후 회사는 굴착기와 화물적재기 1대를 투입하고 7명의 청장년과 현지 무장경찰 두 팀을 파견해 구호활동을 진행하였다. 굴착기기사 류밍쿠이(刘明奎)는 1985년생으로 건설현장의 배태랑 굴착기기사이다. 젊지만 굴착기 운전경력이 10년 이상이며 네팔에 오기 전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구호활동을 한 경력도 있다.


그는“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땀이 났다.”고 류밍쿠이가 회상하고 <중국신문주간>에게 말한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폐허더미 속의 시체를 파낸 기억을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이 긴장되고 무거워진다. 그는 처음부터 고도로 예민해있었다. 동료들은 대부분 그보다 나이가 많다. 85년생 젊은이가 굴착기를 조작할 때면 그들은 모두 굴착기의 삽을 주시하며 시체가 손상되지 않도록 알려주었다. 류밍쿠이는 커다란 삽으로 옥수수를 착취해 가는 느낌이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류밍쿠이와 동료들은 10여구의 시신을 파냈다. 아침8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일한 적도 있다. 조종석에서 내리는데 건장한 체격의 그들조차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오랜 시간 재난의 폐허 위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로 식욕이 전혀 없었다. 하루 종일 먹는 것이라고는 작업 도중 쉬면서 마시는 물과 마른 비상식량이 전부였다.


류밍쿠이는“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현지 상황이 계속 생각났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한 나머지 금방 잠이 들었다. 


위샤오닝(喻绍宁)역시 두루이하이, 류창빈과 마찬가지로 지진 후 카트만두를 찾았다. 그의 친구들은“아직까지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데 태국에서 기다려보지 그래?”라며 그를 말렸다. 태국은 화웨이(华为)의 동남아시아본사가 있는 곳이다. 화웨이 네팔대표부 위샤오닝 홍보과장으로 4월 25일 당시 출장 중이었던 위샤오닝은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웨이신(微信)을 통해“잘 지내?” “아무 일 없지?”라며 안부를 묻는 통에 뉴스에서 네팔의 지진소식을 들었다.


위샤오닝은 대표부와 동료들의 안부를 물은 후 카트만두로 가는 항공권을 샀다. 네팔의 소형운영업체까지 담당하던 터라 설비들이 최대한 빨리 정상작동 되도록 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화웨이는 네팔의 2대 모바일업체 Ncell과 NTd의 주요 설비공급업체로서 두 업체의 핵심네트워크에 큰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이 시급했다. 위샤오닝은“기지국이 무너지면 한 지역이 영향을 받지만 핵심 전산실에 심각한 죠.”라고 위샤오닝이 <중국신문주간>한테 말한다.


지진 후 구호에 있어 통신은‘생명선’과 같다. 위샤오닝의 동료이자 화웨이 네팔대표부 지불 및 서비스 차장 천페이(陈飞)는 지진 발생 후 새로운‘대표부 재난복구 부총지휘관’이라는 새로운 직함이 하나 더 생겼다. 핵심네트워크 안전보장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직원들 역시 여진의 위험을 무릅쓰고 파손된 기지국을 복원하는 데 나섰다.


중대재난지역으로 많은 기지국이 파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네팔의 통신네트워크는 널리 오랜 시간 중단되지 않았다. 지진발생 직후 가족과 친구들의 안위를 확인하는 전화가 집중되는 상황에서도 기지국이 파손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몇 번만 다시 걸면 거의 전화통화가 되었다.


지진발생 후 5일후부터 카트만두의 거리에서는 Ncell과 NT의 대리점이 영업을 재개했다. 이틀 후 대부분의 영업점은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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