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맞는 신발을 신어야 달리수 있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7-30 16:03:34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몇 번의 실패 후 뤼졘민은 영화의 장르에서 방법을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그의 말을 빌면 중소자본영화를 작은 자본으로 풍성하게 만들려면 장르를 극도로 세분해야 한다——멜로 같이 성숙한 장르의 경우 투자를 확대해 캐스팅과 제작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는 “500만 위안을 들여 제작한 맬로영화는 사람들이 보지 않을 것”이라며 “유명 연예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의 뤼위에(吕乐)감독은 택시기사가 인터넷에 쓴 글을 산 후 뤼졘민에게 그 글을 소재로 영화를 찍자고 제안했다. 뤼감독은 주원(朱文) 각본, 왕쟈웨이(王家卫) 제작으로 택시기사의 과로사와 사회 취약계층에 주목하는 예술영화를 찍기 원했다. 그러나 뤼졘핑은 문예적인 느낌을 기초로 상업성이 있어야 한다며 공포영화로 만들 것을 고집했다.


당시 중국에는 성공을 거둔 공포영화가 없었기에 려감독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극본을 6개월이나 다듬다 보니 투자자들이 중도에 나갔고 결국 사업이 중단되었다. 뤼졘민은 다른 제작진과 영화를 제작했고 투자 역시 1,600만 위안에서 200만 위안으로 줄였다


“영화를 찍고 싶지 않은 감독이 누가 있겠어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뤼졘민이 말했다. 전에도 그는 대규모 투자 영화를 찍고 싶었으나 당시 융자도 어렵고 맞지 않는 자본과 협력하고 싶지도 않아 ‘발에 맞는 신발을 신을 수 밖에 없었다.’ 


뤼졘민은 가 저(低)예산 영화였음에도 걸어볼 만한 자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2,3선 도시의 경우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많고(훗날 청두(成都), 우한(武汉)의 관객들이 공포영화를 매우 좋아하며 젊은 여성관객이 많다고 분석하였다) “소도시 청년들도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추었으며 취향도 그렇게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중국에 새로 생긴 극장은 대부분 2, 3선 도시와 현 급 도시에 생겼다. 소도시의 경우 생활이 상대적으로 느긋하니 경제사정만 허락된다면 영화를 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먼저 선택할 수 있는 문화 오락소비임이 틀림없다. 


영화 홍보소비에는 한계가 있다. 뤼졘민과 배급사는 택시와 승객들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광고를 만들어 교통방송 라디오방송국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유행이던 flash 기술을 결합하여 움직이는 포스터도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차의 헤드라이트가 빛 줄기를 만들고 부드러운 음악이 몇 초간 흐른 후 산발을 한 여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비명을 질려 모골이 송연하다. 

 

포스터 내용과 영화 자체는 관계가 없지만 효과는 아주 좋았다. 뤼졘민 영화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홍보비 한 푼 들이지 않고 각 유명사이트에서 며칠간 인기를 끈 포스터이기도 하다.
는 2009년 위험을 무릅쓰고 크리스마스 기간에 대작들과 함께 개봉해 박스오피스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장르로 보면 는 중국영화 상업화 개혁이래 최초의 공포영화라는 평가도 있다. 


가 성공을 거둔 후 뤼졘민은 미국 공포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Paranormal Activity)>를 보고 리메이크 해보기로 결정했다. ‘공포영화를 한편 더 찍어 빨리 돈을 벌어보자.’ 촬영 전 먼저 ‘장르부터 세분’했다——영화의 정체는 ‘픽션 호러’. ‘(장르가)정해지자 소재가 생겼고, 그 소재로 시장을 공략했다.’


영화제목은 최종적으로 로 붙였다. 직접 연출을 맡은 뤼졘민은 웃으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제작진과의 마찰로 이 리메이크 영화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영화를 본 후 ‘하나도 안 무섭다’며 속은 기분이라는 관객도 있고, 뤼졘민의 SNS와 인터넷 게시판에 ‘사기꾼’이라 욕하는 글을 남기거나 극장에서 나와 포스터를 걷어 차 집단소동이 일어날뻔한 적도 있었다. 결국 영화를 긴급히 조기 종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픽션 호러’라는 소재마케팅으로 쓰촨(四川) 태평양극장 한 곳에서만 36회 상영되는 등 같은 시기에 상영된 <쿵푸팬더2(功夫熊猫2)>와 비슷한 상영횟수를 가록했다. 더불어 100만 위안의 투자로 2천 여만 위안의 흥행수익을 거두는 놀라운 투자수익률도 기록했다. 


이런 영화들을 몇 편 찍다 보니 혹자는 뤼졘민을 ‘공포영화대왕’이라 부른다. 뤼졘민의 공포영화는 입 소문도 좋지 않고 매번 ‘또 졸작이다.’라는 혹평을 받으면서도 결국은 놀라운 수준의 박스오피스 결과와 투자수익률을 기록했다. ‘전에 훌륭한 작품도 많이 하셨는데 지금은 왜 졸작을 찍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그는 “샤리에서 벤츠로 갈아탔다. 나도 행복한 생활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라고 답했다. 


어떻게 만드는 영화마다 돈을 벌까? 뤼졘민은 자신의 경험들을 정리했다.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예고편, 포스터 등)자재와 영화 이름도 중요하죠. ‘집중력 경제’ 잖아요.”라며 “의 경우 제목 만으로 1천만 위안의 투자수익을 거두었다”고 전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영시기이다. 2011년 뤼졘민은 패션을 소재로 한 청춘 영화 배급에 참여해 수 많은 인기스타가 모인 <건당위업(建党伟业, Beginning of the Great Revival)>와 같은 상영시기를 선택하였다. <건당위업>과 정면승부를 하는 영화는 많지 않았으나 ‘<건당위업>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역시 며칠 동안 800만 위안의 흥행수익을 얻었다. 


뤼졘민은 공포영화는 다시 찍고 싶지 않다. 귀신이 있어서는 안되고 잔인해서도 안되며 폭력적인 것도 안 되는 등 규정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공포영화를 찍더라도 똑같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전랑>준비기간에 뤼졘민은 오랜 파트너인 푸졘(福建) 항업영화배급사(恒业电影发行公司)와 작은 논쟁이 있었다. 그는 <전랑>를 찍자고 하고 배급사는 저 예산으로 스릴러영화 <경성81호(京城81号)>와 현대도시영화 를 찍자고 한 것이다.

 

배급사가 ‘쳐 부시고 죽이는 게 뭐가 재미있냐?’고 하면 뤼졘민은 ‘울고 짜는 게 뭐가 재미있냐?’고 반박했다. 결과적으로 <경성81호>는 4억 2천만, 는 1억 8천만 위안의 흥행수익을 기록했으며 뤼졘민의 <전랑> 역시 다크호스로 떠오른 등 세 편 모두 매우 좋은 수익을 거두었다. 


요즘 뤼졘민은 대규모영화제작으로 눈을 돌려 류전웨이(刘镇伟) 감독의 <서유기(A Chinese Odyssey, 大话西游)>와 중미합작영화 <후왕의 딸(猴王的女儿)> 제작에 투자하였다. 그는 한 주에 세 편이던 것이 열 편으로 영화생산량이 늘어나 저 예산영화가 발 붙일 곳이 거의 없고 ‘소자본으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본다. 

 

이밖에 현재의 영화시장이 몇 년 전에 비해 규범화되고 융자루트가 많아졌으며 ‘악덕투자’가 적어졌다. 현재 뤼졘민은 알리바바와의 전략적 제휴와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을 시작해 ‘높지 않은 자금비용으로 홍보효과를 얻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소재개발 외에도 뤼졘민은 군사소재영화를 여전히 밝게 전망하고 있다. <전랑>이 흥행에 성공한 후 그는 우징과 함께 <전랑2>, <전랑3> 준비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저작권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카카오톡 보내기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daum
온라인팀 다른기사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

많이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