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난 앞에 네팔은 작았다
- 아시아의 최빈국 중 하나인 네팔은 구호물자 전달이 어려운 가운데 국민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5월 2일 UN이 발표한 재난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7,000명을 넘어섰으며 카트만두 주변의 75개 지역 중 13개 지역에서 16만 채의 건물이 완전 붕괴되고 14만 채의 건물이 파손되는 등 재난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국적으로 구호식량을 필요로 하는 국민은 300만 명에 달한다.
우기를 앞두고 살 곳을 잃은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5-26 15:31:56
[기자/쉬팡칭, 푸야오, 저우펑팅(카트만두, 베이징에서)] 4월 25일 아래층에서 점심식사를 하려는데 땅이 흔들리면서 건물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2층 판자집 베란다에 있던 둥광셴(董光贤)은 한 손으로는 알루미늄합금 문틀을 꼭 붙들고 한 손으로는 베란다 창틀을 짚고서야 넘어지지 않았다.
둥광셴은 China Railway 14국그룹 해외지사 사업매니저로 네팔 무장경찰학원 건축사업의 주요 책임자이다. 건설현장은 네팔수도 카트만두 서남부에 위치한 해발 1,700m의 산비탈로 북쪽으로 카트만두시 전경이 눈 아래 펼쳐지며 근교에는 오래된 낡은 가옥들이 모여있다.
20~30초의 진동 후 둥광셴은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얼마 후 보니 아래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눈길 닿는 곳의 집터가 일렁이며 사방이 폐허로 변해 있었다. ‘천년 역사의 고도가 이것으로 끝나는구나.’ 아찔한 광경이었다.
판자집 주방에 요리사가 끓여놓은 국은 반 이상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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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스캠프의 텐트 안에서 바라보는 에베레스트. 촬영/Sc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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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구책
“새벽3시 카트만두에 또 한차례 가벼운 여진이 발생했다. 개가 짖자 밖에서는 여전히 불안한 주민들의 겁에 질린 소리가 이어졌다.” 4월 30일 영국적십자매체 관계자 니콜라 존스의 글이다.
네팔에 머무는 1주 동안 <중국신문주간>기자는 거의 매일 분명한 여진을 느꼈다. 집이 가볍게 흔들릴 때마다 밖에서는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곧 일상을 회복했다. 거리로 달려 나온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가계 역시 미리 문을 닫지 않고 폐허정리와 구조를 위한 자원봉사들이 점차 늘어났다.
4월 30일 오후 카트만두의 더르바르(Durbar)광장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유니폼을 입은 구조대원들과 함께 건물들의 폐허 속에서 벽돌, 돌, 목재를 주웠다.
네팔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이자 카트만두 한 가운데 위치한 더르바르광장은 황실궁전이 있는 곳으로 16~19세기에 지어진 신전과 궁전 수 십 개가 있는 곳이다. 이번 지진으로 수백 년의 풍파를 견뎌온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거나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 내리 쬐는 강렬한 햇볕 아래 10살정도의 아이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다.
“다행히 저희 식구들은 모두 무사하고 집도 무너지지 않았어요” 3일째 자원봉사 중인 중학교 교사 라즈쿠마르(25)가 <중국신문주간>에 한 말이다.
자원봉사자들의 대부분은 그의 제자와 같은 또래의 젊은이 들이다. “원래 우리의 일이니 당연히 해야죠.” 라즈쿠마르의 인터뷰 중 굴착기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지나가고 그의 머리카락과 옷에 자욱한 먼지를 날린다.
지진 전 평면설계사 수잔카지(23) 역시 이 곳에서 쿠마르 일행과 같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힘닿는 대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지진발생 후 그는 가족들과 상점에서 텐트를 구입해 현지 사회복지단체가 제공하는 장소에서 3일동안 지냈다. 부대의 식수와 사회복지단체에서 제공하는 충분한 물과 식량,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르바르광장에서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평지에 마련된 대형 천막에는 45명이 생활하고 있다.
하나 뿐인 천막으로 집을 잃은 어린이와 여성, 가벼운 부상자들의 숙소로 제공되고 있다. 여러 색의 방수포로 네 귀퉁이를 지탱하고 있는 임시천막은 비바람 정도만 막을 수 있을 뿐 바닥에는 얇은 담요뿐이다.
천막 안에 첨단기기라고는 휴대폰 충전을 위한 대형 충전 판 뿐이다. 희미한 녹색 빛을 깜빡이며 휴대폰 충전 케이블이 가득 걸려있다.
“저녁에는 너무 추워요.” 10살이 채 안된 여자아이가 <중국신문주간>에 말한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왼쪽 발에 찬 물을 계속해서 떨어뜨린다. “이렇게 하면 좀 덜 아파요.”
지진으로 다친 아이의 발은 5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심하게 부어있다. “약도 없고 집에 치료비도 없어요.”
UN이 발표한 5월 3일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이 아이와 같이 이번 지진으로 부상을 당한 사람이 1만 4,000명을 넘어섰다.
태평양재난센터(Pacific Disaster Center)가 최근 발표한 세계의료자원지수의 경우 네팔은 190개국 중 133위로 1만명 당 의사 수는 2명, 병상은 50석에 불과하다.
이렇게 열악한 의료환경이 재난발생 후의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인데다 지진 후 물류의 어려움까지 더해져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환자의 수는 매일 끊임 없이 늘어나는데 약물과 의료용품의 수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이를 공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Kaji는 더르바르광장을 떠나 카트만두의 비르(Bir)의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곳에서 그는 ‘나에서 우리로(From me To we)’라는 자원봉사단체에 가입해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도왔다.
<중국신문주간>의 인터뷰에서 그는 “300여명의 봉사자들이 팀 단위로 병원 각 업무에 배치되어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힘쓰고 있다.”며 “매일 많은 환자들이 몰려드는 가운데 봉사자들이 있어 병원의 모든 업무가 조금이나마 수원해졌다.”고 밝혔다.
적극적인 상호협조가 이뤄지고 있는 민간에 비해 지난 한 주간 네팔정부의 늑장대응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네팔 국민들은 평소 생활에서도 재미 삼아 정부를 조롱하곤 한다.
학생 Weraz Ghimire(21)는 “정부효율이 너무 낮아 국제구조단체가 이재민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 주고 있고 현장에도 봉사자들이 정부보다 먼저 나타났다.”며 그와 가족들이 지진 후 즉시 민간기구의 구제로 텐트, 음식, 정수제, 담요 등을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 역시 다음날부터 주변 마을의 이재민들에게 물자를 보내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운영에 전력을 다하였으나 많은 이재민들은 1주일 후에야 정부의 구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절대부분의 구호자금과 물자가 이재민들에게 적절히 전달되지 않아 모두가 분노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정부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복원에 나서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라고 덧붙였다.
구호활동 중에는 논란이 되는 사건도 연일 일어나고 있다. 현재 수 많은 구호물자가 트리부반 국제공항이나 인도 접경지역에서의 통관수속이 밀려있어 UN 인도주의업무 담당자 아모스 사무차장이 세관 수입제한규정을 완화해 구호물자를 최대한 빨리 투입하도록 네팔정부를 독촉하고 나서야 했다.
네팔정부가 지방과의 협력을 허가의 조건으로 제시하며 일부 민간구호단체의 원조활동을 중단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네팔정부의 늑장대응도 우연은 아니다. 현직 재정부장 람 사란 마핫(Ram Sharan Mahat)조차 라디오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이러한 대규모 재난에 대처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2008년 헌정회의 후 국왕을 파면하고 ‘네팔연방민주공화국’이 출범한 후 네팔은 지난 7년동안 정권이 다섯 차례나 바뀌었다. 불안한 정국에서 주요 정치세력 간의 분쟁과 혼전 역시 심화되고 있다. 지방정부의 의석 수와 지역적인 분포 등 가장 기본적인 의제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헌법 역시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강력한 정부의 부재로 사회는 변혁의 시대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여러 난제들에 독자적으로 맞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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