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시(辽西) 탑 답사기(3)
-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도 없는 오래된 불탑들은 산 꼭대기든 가파른 절벽이든 속세를 떠나 홀로 천 년을 돌아보며 역사 속 깊은 곳의 불도를 전하고 있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5-26 14:50:24
지금의 광승사탑은 골목 깊은 곳에 탑이 서있을 공간만 겨우 남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탑은 담으로 둘려 쌓여있고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 자세히 볼 수도 없었다. 담 밖의 시멘트바닥에서 아이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말 없는 불탑의 그림자가 땅에 크게 드리운다.
링허 상류를 따라가다 마을에 흩어져 있는 요 시대 탑들을 우연치 않게 많이 만났다.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도 없는 오래된 불탑들은 산 꼭대기든 가파른 절벽이든 속세를 떠나 홀로 천 년을 돌아보고 있다. 우리가 찾아가기도 하고 문득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첫 번째 반가운 만남은 링허 남안의 차오양현 에서였다. 차를 타고 얼마 달리지 않아 산으로 들어섰다. 산간에 겹겹이 펼쳐진 평지에 봄바람이 불기도 전이라 길가와 산 위의 나무들은 메말라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왼편 벼랑위로 한 쌍의 탑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쌍탑사(双塔寺)의 쌍탑은 벼랑 가운데 평지에 지어져 산자락에서 올려다보면 거의 절벽 위에 있는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두 벽돌 탑은 모양이 빼어나다. 높이는 10m로 오른쪽의 탑이 더 낮고 한층 뿐인 탑첨 위에 복발(覆钵)과 13층 상륜(相轮)이 있는 흔치 않은 모양이다. 2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큰 탑 역시 얼마 크지 않으나 탑 모양은 3층 탑첨에 가운데가 빈 팔각형으로 전혀 다르다.
중화민국시기의 <조양현지(朝阳县志)>에는 주민들이 자금을 보아 쌍탑사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절터의 지세가 매우 험준하며 절 앞에 수 척 높이의 탑 두 개를 세웠다 하여 절의 이름으로 삼았다.”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변해 사찰은 없어지고 절 앞의 쌍탑만 남았다.
쌍탑을 본 후 링허 북안을 따라 탐방을 이어 나갔다. 차를 타고 차오양 현과 룽청(龙城)구의 접경지역에 도착하자 왼쪽 앞 작은 산 정상에 전체가 새하얀 8각형의 밀첨식 탑이 눈에 들어왔다. 랴오시의 쪽빛 하늘아래 흰 빛이 눈부시다.
차로 나지막한 관목들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 올라간 후에야 탑에 도착했다. 탑 아래에 깨진 벽돌들이 있었는데 보수 후 남겨진 것인지 모르겠다. 이 탑의 이름은 ‘팔릉관탑(八棱观塔)’으로 링허를 굽어보며 구불구불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마루를 등지고 있다.
높이는 35m 정도로 13층 탑첨으로 되어 있으나 탑체가 가늘고 길어 1층이 북탑과 광승사탑 보다 낮아 보인다. 여기에 주변의 화려한 조각과 최근의 도장작업으로 정교한 보탑의 느낌이 든다. 다만 탑 위의 부조불상이 일부 훼손되어 불상의 목 몇 개가 행방불명이다.
팔릉관탑을 떠나 우리는 동쪽으로 향해 ‘황화탄탑(黄花滩塔)’을 찾았다. 길이 나빠져 아스팔트도로라도 울퉁불퉁했다. 저 멀리 흰색 탑이 보였으나 그냥 지나가다 놓치고 말았다. 몇 번을 굽이굽이 돌아가니 눈 앞에 탑이 보였으나 남의 집 과수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인의 안내로 과수원 밖의 비포장도로로 겨우 탑에 도착했다. 풀숲에서 날갯짓하는 꿩, 차 앞으로 뛰어가는 토끼… 눈 앞의 풍경은 더욱 시골스러웠다.
주변에 사람도 없이 적막한 그곳에 황화탄탑이 조용히 서 있었다. 황화탄탑 역시 전형적인 8각 13측 밀첨식 탑이다. 높이는 30m가 넘으며 탑체 아래층 정 남면에는 권문이 나있고 나머지 일곱 면에는 연화대(莲台)위에 불상이 부조되어 있다. 위압적인 보살이나 비천 없이 매우 간결하다. 불상 옆에는 민간 불교도들이 자금을 모아 지은 것으로 보이는 방제(榜题)가 있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팔각관탑과 황화탄탑 모두 요 시대 졘저우(建州)성과 연관이 있다고 보지만 아직 문헌상의 증거는 찾지 못했다. 탑의 이름도 모두 현대인들이 인근 마을의 이름을 근거로 지은 것이다. 천 년을 도도히 서있는 고탑이라도 결국 자신의 본명을 잃었다.
해가 지고 또 한차례 쉽지 않은 길 찾기 끝에 또 다른 비포장도로를 통해 고속도로를 탔다. 뒤돌아보니 황화탄탑은 은은한 흰색의 윤곽이 아니라 황혼의 아름다운 실루엣으로 변해 있었다.
번화가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든 골목에 숨어있든 황야에 떨어져 있든, 우리가 만난 탑들은 모두 천년 전 강대했던 제국을 풀어내는 실마리를 마련해 두었다. 덕분에 후세사람들은 탑 아래에서 역사 깊은 곳의 불도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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