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존재하는 특색 있는 세 민족

수천 년간 이어진 여러 분쟁과 이주는 혈연과 민족의 융합으로 이어졌다. 현재 네팔 국내에 존재하는 60개 이상의 민족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지고 특색 있는 민족은 세 개이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5-27 13: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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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왕밍취안] 수천 년간 이어진 여러 분쟁과 이주는 혈연과 민족의 융합으로 이어졌다. 현재 네팔 국내에 존재하는 60개 이상의 민족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지고 특색 있는 민족은 세 개이다. 

 

첫째, 니바르족. 네팔 민족 중 예술적인 재능이 가장 뛰어난 민족이다.‘니바르’는 네팔의 속칭이라한다. 산스크리트문과 팔리문이 너무 높고 차가워 일반 사람들이 토속어로 읽고 말하다 보니 통속적인‘네팔’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름으로 보아 니바르족은 네팔의 여러 민족 중 역사가 가장 유구한 민족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된다.


니바르족에서는 세계를 바꾼 인물도 나왔다. 바로‘샤카’계급의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고타마 생존시절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과 점차 쇠퇴하고 권위에 대한 의혹이 커지면서 사문사조(브라만교의 상대적인 교파로 수행, 전념, 청렴의 의미)가 성왕하기 시작했다; 고타마는 브라만교의 일부 사상을 빌어 독창적인 사상으로 발전시켜 불교를 창시하며 훗날‘석가모니’(샤카족의 성인)라는 존칭으로 불리게 된다. 


불교는 동서한 시기에 중국에 들어와 문화, 예술, 철학, 언어, 풍속, 사회 등에 보급되며 영향을 미쳤다. 숭불, 억불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결국 세 개의 교파가 통합되어 중국인들의 문화에 깊이 녹아 들었다. 나바르족의 왕자 고타마는 인생의 4가지 고뇌를 벗어나기 위해 사라쌍수 아래에서 좌선하면서 이것을 예견 했을까? 


둘째, 구르카족. 네팔의 서부 구르카지역으로 도망 온 인도 라지푸트 귀족과 현지 토착세력 카스족의 혼인으로 형성된 민족이다. 인구는 많지 않으나 영국과의 전쟁에서 이름을 날렸다. 사납고 냉정하며 무정한 성격에 날카로운 굽이칼을 들고 다니며 밭에서 곡식을 추수하듯 평온하게 영국인들의 목을 배었다.

 

후자는 예상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르고야 참혹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 후 영국인들이 구르카족을 대비한 상비부대를 조직해 정기적으로 병력을 모집하면서 구르카 직업군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구르카부대는 영국군의 정예부대로서 19세기초 이후의 거의 모든 중대한 군사행동에 참가하였으며 일부는 영국과 인도의 전쟁에서까지 크게 활약하였다. 이는 가장 영혼에 와 닿는 광고였기에 인도가 독립 후 영국, 네팔과 3자회담을 할 때에도 구르카병사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인도의 군대에는 현재까지도 구르카부대 진영이 상설되어 있다. 


구르카병사와 굽이칼의 명성이 너무 높아 구르카족은 더 이상 한 지역의 민족만이 아닌 네팔인 전체를 일컫는 대명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셋째, 셰르파족. 알려진 바와 같이‘세르파’라는 이름은 등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53년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가 초모룽마봉 등정에 성공하며 초모룽마봉은 정복할 수 없다는 신화를 깼다. 당시 그의 산행가이드 텐징 노르게이가 셰르파인임이 알려지면서 셰르파족이 유명해졌다. 


오랜 기간 고산지역에서 생활하는 세르파족은 큰 폐활량, 짧은 다리, 낮은 혈압 등 등산을 위한 천혜의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다. 전문산악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그야말로 산을 타기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산행가이드는 자연스럽게 셰르파족 사람들의 일반적인 직업이 되었다. 


사실 셰르파족은 다국적민족으로 대부분은 네팔에 거주하며 일부는 중국에서 생활한다. 고증에 따르면 세르파족의 기원은 서하(西夏)인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서하가 몽고에 멸망한 후 당항족 일부 귀족들이 남쪽으로 도망해 티베트로 들어왔다.

 

이후 원나라 몽고대군이 티베트에 쳐들어왔고 쿠빌라이칸(忽必烈) 파스파를 군주로 받들면서 서하 귀족들은 화를 피해 다시 도망간다. 인적이 드문 지역으로 도망해 서서히 고산지대 주민 셰르파족으로 변화한 것이다.


산악은 네팔의 중요한 산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10개의 봉우리 중 8개가 네팔이나 중국과 네팔의 국경지대에 있으며, 여기에 셰르파족까지 가세해 현대적인 의미의‘산으로 밥 먹고 사는’생활방식이 형성되었다. 


아마추어 산악인들의 방문이 늘어나면서 전문산악인들의 일이자 꿈으로 여겨지던 초모룽마봉 등정이 과시와 허세의 방식으로 변질되었고 이에 따라‘초모룽마봉 경제’라는 어휘가 점차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부 셰르파인들은 등산가이드에서 ‘등산보모’로 발전시켜 많은 추가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한간에는“돈만 내면 셰르파인이 초모룽마봉 정상까지 올려준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그러나 등산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셰르파인이라도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세르파족 중에 초모룽마봉 등정에 성공한 사람이 많은 것은 그 만큼 등정 중에 사고로 사망한 사람 역시 가장 많기 때문이다. 한 셰르파인은 자신이 아는 셰르파가족은 거의 다 산에서 사고로 사망한 식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등산이 그들의 주특기인 세르파인 들로서는 더 좋은 선택의 여지도 없다. 훌륭한 등산가이드만 되면 등산시즌 한 철에 일반 네팔국민 연봉의 수 배에 달하는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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