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아래에서
- 신과 이웃한 곳에 사는 일상 덕일까. 네팔사람들은 삶의 여러 어려움들을 받아들이며 막아내고 있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5-27 13:21:10
[글/왕밍취안] 2015년 4월 25일 발생한 네팔 대지진은 2,500만년 전 운명 지어진 재난으로 여겨진다.
네팔은 유라시아 판과 인도양 판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두 지각 판이 옛날부터 계속해서 부딪히고 해마다 서로 밀면서 산지와 평원을 만들어내고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히말라야산과 겐지스초원—용의 모양을 방불케 하는 지리적 상징—사이에 위치한 네팔은 면적이 좁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해발의 높낮이까지 당황스러우리만치 가파르다. 길이 800킬로미터, 폭 200킬로미터의 길고 좁은 사다리꼴 모양의 지형은 통상적으로 북부의 히말라야산지, 중부의 구릉지대, 남부의 터라이(Terai)평원으로 나뉜다.
수백 킬로미터 사이에‘세계의 지붕’에서 평원으로 지대가 급격히 낮아지고 기온 역시 극심한 추위에서 무더위로 바뀐다. 만물이 다를 것 없는 모진 세상이지만 다행히 네팔사람들에게는 신과 종교가 있다.
왕조에서 공화정으로
‘네팔’이란 이름에는 그 전생과 이생이 숨겨져 있다. 네팔의 전설(<색건타왕사서(塞犍陀往事书)>에도 반영되어 있는)에 따르면 히말라야산자락에‘네(Ne)’라는 이름의 힌두교 신선이 살았다 하여 그가 살던 곳이‘네팔(Nepal)’—‘네(Ne)’가 보호하는 곳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수주왕사서(兽主往事书)>에서‘네(Ne)’는 종교신자로서 카트만두계곡의 바그마티강변애서 명상과 수도를 하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주목할만한 점은‘네팔’이란 단어가 산스크리트문자‘Ne’와 팔리(Pali)문‘Pala’의 요소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문자의 결합은 힌두교와 불교를 함께 섬기는 네팔의 상황과 은근히 맞아 떨어진다.
네팔의 역사는 네팔의 지형과 같이 평탄하지 않다.
BC6세기경 오늘날 네팔의 남부에서 작은 왕국들이 독립하기 시작했다. 그 중 카필라바스투의 구담실달(Gautama Siddhanta)왕자가 불교를 창립하였다. BC3세기중엽 북인도 마우리아왕조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불교신앙이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를 정복했다.
그 후 네팔은 인도 또는 토착세력이 돌아가며 통치하였다. 현장법사는 <대당서역기(大唐西域记)>에 네팔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네팔은 리차비(Licchavi)왕조 시대였다. BC11세기 인도 서찰루키아 왕조가 네팔 남부를 침략하면서 힌두교가 네팔로 들어가 불교를 대체해 통치적인 종교로 자리잡았다.
12세기가 시작되자 네팔에는 두 개의 마라왕조가 출현했다. 마라왕조는 분열할거의 상황이었으나 600년 가량 이어지며 네팔의 문화가 흥성해 ‘리차비왕조 이후 제2의 전성기’로 여겨진다. 마라왕조국가는 모두 힌두교국가로 카스트제도가 강화되어 불교신자들까지 카스트를 나누기 시작하고 왕들은 신전을 수리해 신령을 모셨다. 카트만두, 파탄, 바드가운 모두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가득한 황실광장을 남기면서 네팔의 건축, 조각, 회화 등 예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인도 라자스탄에서 네팔서부의 산지로 도망 온 라지푸트사람(산스크리트어로‘왕족의 후예’라는 의미)들로부터 용맹스럽고 무를 숭상하는 구르카부락이 생겨났다. 18세기중엽 구르카부락의 지도자 프리티베 나라얀 사샤의 지도 하의 각개격파로 네팔‘3국시대’의 막이 내리고 샤(Shah)왕조가 새워지면서 네팔에서 힌두교의 통치적인 지위가 더욱 공고해졌다.
샤왕조가 통치하는 네팔은 맹위를 떨치며 짧은 기간에 현재 영토의 3배에 달하는 영토를 차지하였으나 머지않아 중국,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전한다. 중국과 전쟁에서의 패배로 네팔은 청(清)제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전락하였고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전함으로써 시킴을 강제로 할양 당하고 병력 모집권을 잃고 외교적으로 감독을 받게 되었다.
1923년 네팔은 중국의 예속국과 영국의 식민지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내부의 정치분쟁이 끊이지 않았다.1950년 네팔은 백 년간 이어진 라나가문의 수상통치를 벗어나 왕권을 회복하고 군주입헌시기로 들어선 후‘무 당파 5대 노회제도’,‘다당제의회제’,‘비렌드라왕실의 유혈사건’,‘갸넨드라국왕의 섭정’등 여러 시기를 거쳤다.
2006년 의회가 국왕의 특권과 힌두교의 국교지위를 폐지하기로 결정하면서 네팔은‘세속국가’가 되었다. 2008년에는 네팔 헌정회의에서 군주제를 폐지하고 연방민주공화국을 성립하였음을 선포하면서 샤왕조의 마지막 국왕 갸넨드라가 퇴위하였다.
그러나 공화정을 향한 네팔의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갸난드라가 퇴위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시점까지도 헌정의화는 해산과 소집을 반복하며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지 못했다. 헌법정치의 꿈이 실현되기까지 각 측이 진정으로 서로 타협하는 것만이 헌법정치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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