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샤오펑, 원숭이가 초빙한 지원군(2)

“시장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8-31 10: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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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샤오펑은 애니메이션가공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애니메이션 영화제작이라는 더 큰 야심이 있었다. 


1999년 작품 <바오롄덩(宝莲灯)>이후 더 큰 주목 받은 중국애니메이션영화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수평적 비교를 통해 톈샤오펑은 중국의 애니메이션영화가 기술이나 스토리 면에서 모두 자신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그는 대작영화를 만들어 낼 능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다양한 소재들을 생각해 보았으나 서유기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즈음의 일이다. 그의 아이디어 중 3D애니메이션으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군중기반이 마련되어 있고 장력과 표현공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 영화 <대성의 귀환(圣归来)> 포스터 사진/CFP

톈샤오펑은 <서유기>를 자신의 해석과 표현으로 제작하고 싶었다. 500년의 긴 시간을 오행산(五行山) 아래 깔려있다 ‘감옥’에서 해방되어 나온 손오공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계속해서 영웅스러움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톈샤오펑과 디자인팀은 인물을 디자인했다.

 

 당시 디자인한 손오공은 길고 하얀 얼굴에 눈 주위가 빨갛고 걸음걸이가 힘찬 ‘두려울 것 없는’ 캐릭터였다. <대성의 귀환> 미술감독 주칭(朱晴)의 말을 빌면 “얼굴이 복숭아 같고” “더 만화 같았다.” 


그 기간 옥토버디지털 사무실의 벽은 온통 원숭이그림이었다. 누군가가 이 대성은 “괴상하게 생겼다.”고 했을 때 톈샤오펑은 매우 만족했다. “모두의 생각과는 다른 손오공을 원했거든요.” 


그러나 몇 년 동안 자금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부지원사업은 기업의 자질, 등록자본 등의 조건이 있는데 톈샤오펑의 회사는 규모가 너무 작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 전 톈샤오펑은 자비를 들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영화샘플로 제작해 투자자를 찾기 시작했다. 

 

단편영화업계의 반응은 좋았으나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가 없었다. 2006년에 상영된 애니메이션영화 <울트라맨 뫼비우스(魔比斯环)>의 경우 1억 3천만 위안의 자금이 투자되었으나 흥행수익은 400만 위안에 그쳤다——이러한 선례가 있는데 누가 애니메이션영화에 투자하겠는가? 


2009년, 플래시(Flash)애니메이션영화 <희양양과 회색늑대(喜羊羊与灰太狼)>가 흥행하자 원장애니메이션회사들 사이에서는 제작비가 저렴한 플래시영화 붐이 일었다. 그러나 톈샤오펑은 그때까지도 자신의 3D애니메이션영화 투자자를 찾고 있었으니 결과는 뻔했다. 양잉거는 “전체 범위에서 찾았어요. 

 

제작자는 이 사업을 해외까지 가져갔죠. 위로는 하늘 끝, 아래로는 황천까지 봉변도 많이 당했어요.”라고 말했다.


몇 년간 중국원작 애니메이션산업은 심각한 악순환에 빠졌다. 정부보조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많은 애니메이션업체는 단순히 생산량 채우기에만 급급했고 다른 작품은 완구업계의 돈벌이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많은 원작애니메이션이 조잡하게 되는대로 만들어지다 보니 시장의 신뢰가 점점 떨어졌다. 


2011년 톈샤오펑은 마침내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고 느꼈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할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는 올인 하기로 결심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 


그 해 톈샤오펑은 36세였다. 업계에서 가장 좋은 것은 아니지만 괜찮은 편이었다——애니메이션주문생산과 학원운영으로 돈을 벌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상장회사 사장의 친척에게 자금을 빌리고 전재산과 회사 주주들의 돈까지 긁어 모아 <대성의 귀환>제작에 몸과 마음을 들이기 시작했다. 

 

예상되는 비용은 500만 위안, 그의 기억에 가장 좋았던 중국산 3D애니메이션영화의 흥행수익은 1천 여만 위안이었다. 


같은 해 중국애니메이션업계에는 상반된 두 가지 소식이 있었다. 하나는 <중국애니메이션산업발전보고서(中国动漫产业发展报告)>에 따르면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TV애니메이션 생산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2010년 중국의 연간 TV애니메이션 생산량은 22만분의 놀라운 량을 기록했지만 내용은 대부분 형편없었다. 

 

또 한가지는 2011년 여름방학기간 한달 동안 <괴발의 위기(魁拔之十万火急)>, <토협전기(兔侠传奇)>, <장오다길(藏獒多吉)>, <씨어호의 봉황신수탐사기(赛尔号之寻找凤凰神兽)>, <무어장원의 빙하기(摩尔庄园冰世纪)> 등 중국애니메이션영화 다섯 편이 집중적으로 상영되었으나 흥행은 참패였다. 


톈샤오펑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대성의 귀환>은 그의 마지막 승부였다. 2012년 설. 왜 애니메이션사업을 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남자 평생의 기백이죠. 출신, 가정환경, 평탄한 시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찾은 가장 근접한 방법입니다.”라고 답한다. 

 

이를 위해 그는 웨이보(微博)에 “옥토버 가족여러분. 내일은 옵니다. 1년 동안 롤러코스터 타면서 더욱 자유로움을 누립시다!”라고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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