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샤오펑, 원숭이가 초빙한 지원군
- 그의 <대성의 귀환(大圣归来)>는 역사상 중국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든 중국 애니메이션이다.
이제까지 중국애니메이션은 저 연령 아동을 대상으로 하거나 시장의 비웃음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톈샤오펑(田晓鹏)은 폭발적인 특수효과를 사용해 감탄할 만한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흥행에 성공한 후 어려웠던 과거를 털어놓은 적은 없지만 톈샤오펑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생을 했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8-31 10: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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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톈샤오펑(田晓鹏)감독(서있는 사람). 베이징 ‘옥토버 애니메이션스튜디오’에서. 사진/신화사 사진 설명/둥제쉬 |
[기자/완쟈환] 7월 21일 오후6시. 톈샤오펑이 회사에 남아 기자를 맞았다. 그의 사무실은 컴퓨터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다. 바깥 방의 긴 탁자 몇 개 위에는 일반 데스크톱 컴퓨터와 선풍기가 놓여 있고, 통로에는 종이박스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으며, 컴퓨터 앞에 십여 명의 직원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있다.
“퇴근을 하시죠?”
“이게 저희 직원 전부에요.” 톈샤오펑이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한다.
톈샤오펑은 올해로 40이다. 2015년 7월까지 그와 ‘옥토버디지털스튜디오(Octoberdigital Studio)’ 라는 평범하디 평범한 그의 회사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유명세를 탄 지금 누리꾼들은 그를 ‘톈치(田七-7억흥행감독 톈샤오펑)’이라 부른다——7월 28일 그가 8년동안 기획, 제작한 애니메이션영화 <서유기, 대성의 귀환(西游记之大圣归来)>의 흥행수익이 7억 위안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8월 4일 그의 별명은 ‘톈빠(田八)로 바뀌었다.
중국 애니메이션영화가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대성의 귀환>이 미국 애니메이션영화 <쿵푸팬더2(功夫熊猫2)>의 중국시장 흥행수익(6억 1천 2백만 위안)기록을 깨고 사상 최고의 흥행작이 된 것이다. 최근 10년간 중국시장의 애니메이션영화 흥행기록을 모두 외국작품이 독차지 하고 있었기에 영화평론가들은 <대성의 귀환> 흥행성적에 흥분하며 이 작품으로 중국애니메이션이 ‘파국’을 맞고 있으며 2015년이 ‘중국애니메이션영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평까지 하고 있다.
톈샤오펑은 흥행수입이 1억 위안을 넘었을 때도 잠시 흥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무덤덤해졌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와 버렸다.” ‘수돗물’(기꺼이 <대성의 귀환>의 지원군으로 나선 팬들) 들은 5년전 그가 웨이보(微博)에 올린 글까지 들추며 평론했고 매일 기자와 투자자들이 찾아왔다.
그 평생 이렇게 주목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는 며칠 동안 전투형태의 손오공이 프린트 된 <대성의 귀환> T셔츠만 입고 있다. T셔츠의 손오공은 몸에 체인을 두르고 코피가 나도록 맞으면서도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다. 지난 몇 년 중국 원작애니메이션의 창작분위기에서 손오공은 톈샤오펑 자신을 묘사한 듯하다.
이상주의
“저는 좀 답답한 사람이에요.”
인터뷰 전 톈샤오펑이 먼저 설명했다.
그는 평소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술을 마실 때조차. “마시기 전에 ‘자, 마셔.’ 한마디가 다에요.” <대성의 귀환> 감독 진다융(金大勇)은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기술자들은 정말 답답해요. 사회성도 좀 떨어지고.”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보는 톈샤오펑은 전형적인 기술자 오타쿠로 평소에는 T셔츠에 청바지, 운동화만 입는다. 옥토버디지털 애니메이션스튜디오 장여우둥(张有栋) 미술감독은 자신의 사장에 대해 “운동화 한 켤레로 3~4년을 신으셔요. 근검하고 소박하신 분이죠.”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직원들은 톈샤오펑을 재미있는 ‘내숭남’으로 생각한다. 촬영장에서 그는 대부분 멍한 무표정이지만 가끔 입술을 쭉 내밀어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 톈샤오펑의 친구이자 ‘쓰리베어스(Three Bears)애니메이션스튜디오’ 창시자 양잉거(杨莺歌)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대성의 귀환>에 나오는 손오공의 재미있는 표정들이 알고 보면 톈샤오펑의 표정과 매우 닮았다.”고 밝혔다.
누리꾼이 웨이보에 남긴 ‘대성이 그렇게 높은 바위로 도망 갔는데 쟝류얼(江流儿)은 도대체 어떻게 올라간 거죠?’라는 질문에 “편집해서 올라갔죠.”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영화에 사오정은 왜 안 나오나요?”라는 질문에는 “카메라는 들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톈샤오펑은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기를 배우고 애니메이션 보기를 좋아했다. “우표수집 하듯” 트랜스포머 스티커를 모아 공책에 붙였다. 고3때는 중국어수업시간에 책상 밑에서 <도라에몽> 장편만화를 읽는 ‘대모험’을 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좋아했던 것은 <철일병단(铁人兵团)> 편이다.
그는 판타지 물을 정말 좋아해 지금도 집에 <판타지월드(科幻世界)>, <비밀(奥秘)>, 등 어릴 때 읽었던 잡지가 몇 더미 쌓여있다. 1990년대초의 연제애니메이션 <로보텍(ROBOTECH)>을 읽으면서는 애니메이션이 평화와 사랑에 대해 이렇게 깊이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
대학을 지원할 때 톈샤오펑은 천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취업을 위해 컴퓨터 전공을 선택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는 스스로 이상주의자라 생각하는 사람으로 “꿈을 만들듯이”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상상 속의 것을 특히 좋아한다.
대학시절 그는 3D 프로그램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여유시간에 3차원 애니메이션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당시 그는 중국의 3차원 애니메이션 산업이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우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1998년 그는 외국계 애니메이션 디자인업체에 입사해 광고와 중국애니메이션 <서유기(西游记)>의 일부 제작업무를 담당하면서 중국 국내의 애니메이션산업이 걸음마단계로 모두가 간단한 작품밖에 만둘지 못하므로 “내가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년 후 그는 자기가 회사를 세워 혼자 일하기로 결정한다. 회사의 주요 업무는 애니메이션 가공으로 톈샤오펑의 이력서에는 CCTV 음악채널의 총 홍보영상 및 미국 스파이더맨 게임홍보영상제작, 2006년 CCTV 설 저녁프로그램 총 포장 애니메이션감독도 포함되어 있다.
일을 할 때 그는 광고든 타이틀이든 자신에 대한 요구사항이 있다. 가능한 캐릭터디자인이 있는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는 것이다. 단순한 문자나 사물이 움직이는 그림보다 작업은 어렵지만 ‘재미있고’ 사람이나 사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면 더욱 재미있다.
2004년 톈샤오펑은 게임 ‘대부옹(大富翁)’의 광고작업을 맡아 주문형작품을 별볼일 없는 한 인물이 역습하듯 성장하는 성장드라마 식의 이야기로 제작했다. 돼지, 낙타, 강아지가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 가난으로 자포자기하다 환락의 번화한 대도시에 도착해 세상으로 뛰어들어 결국 각자의 노력과 분투로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양잉거는 “시나리오, 흐름, 카메라언어와 동물의 털, 재질 모두 매우 대단했죠. 십 수년 전에 그 정도 수준으로 만든 건 대단한 거에요.”라고 평가했다. 2006년 톈샤오펑은 양잉거가 창립한 쓰리베어스 애니메이션스튜디오에 들어갔다. 그 때부터 양잉거는 톈샤오펑이 매우 진취적이며 착실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톈샤오펑은 광고처럼 ‘노력만 한다면 누구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 몇 해 중국애니메이션산업은 낙관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듯 보였다. 2004년 중앙정부가 애니메이션산업발전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명확히 밝히고 관련 정책을 통해 산업발전을 위한 환경과 기회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산업으로 몰리다 보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섞여 구분이 어려워지고 목적 역시 각자 달라 애니메이션산업이 시끄럽고 혼란스러워졌다.
양잉거는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톈샤오펑은 품질을 고집하며 맞춤제작 하는 작품에서 창착의 여지를 찾아내려 노력했다.”면서 “모두가 톈샤오펑의 창작태도가 매우 귀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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