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EU에 ‘결벌’선언 한 이유
- 영국은 결정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처럼 막대한 자금으로 긴급한 형제들을 도와 EU재정단일화를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EU의 외부파트너가 될 것인가? 카메룬은 이러한 결단을 내릴 능력이 없어 ‘대영제국 신민’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진정으로 노리는 것이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6-27 10: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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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3일 벨기에 브뤼셀. 영국의 캐머런(Cameron) 수상이 EU정상회담 지도자 단체사진 촬영장소에 도착했다. 촬영/Francois Lenoir 편집/허시위 |
[글/위하이양] EU가 하나의 가정이라면 영국은 매일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주부와 같이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긴장되어 있다.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결국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보이면 그를 바꾸려 하면서도 어디서부터 시작할 지 몰라 결국 부담과 좌절감 속에서 고집스러운 남편, 제멋대로인 시동생, 권력을 놓지 않는 시어머니에게 선언하고 싶을 것이다. “이혼해도 될까요?”
5월 27일 영국의 엘리자베스(Elizabeth)2세 여왕은 영국 보수당정부가 2017년 말까지 영국의 EU회원국지위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해 결정할 계획이라 밝혔다.
사실 영국은 EU회원국들이 “도대체 어떡하면 떠나지 않을 수 있나?”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의견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EU회원국들의 대답은 실망스럽다——시어머니는 “네 말을 취소하면 용서해 주마”(메르켈(Merkel): 영국이 EU탈퇴 공개투표를 하기 전에 독일은 영국을 여전히 ‘건설적 협력파트로’로 본다)고 대답하고, 시동생은 “자신의 문제를 찾아보라”(프랑스 파비우스(Fabius)외교부장관: 영국인이 축구팀에 가입했다면 프랑스는 경기진행 중에 이제 럭비를 하자고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남편은 언제나 그렇듯 아내의 고민을 못 본 척하면서도 뒤에서 아내가 잔소리만 하고 집안일은 하지 않는다고 질책한다(EU위원회 주석 바호주(Barroso): (영국이 EU의 채무위기를 못 본 척 하고 있다.) 이러한 결혼생활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겠는가?
세계국가, 비(非)유럽국가
남편에 대한 주부의 불만은 진실이다. 그러나 진짜로 마음을 정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함께 지내온 세월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단일화’의 꿈은 중세기 성직자들이 집권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교회가 유럽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세속사회는 권력을 잡은 영주와 기사가 장악하고 있었다. 독재자의 난립에 따른 끊임없는 전쟁으로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지식인계층이 큰 괴로움을 겪었으며, 정신세계와 정치판도를 하늘의 손에 두자는 것이 사회의 주류적인 의견으로 유럽인들의 뇌 속에 깊이 새겨졌다.
교황이 정치무대에서 물러난 후 유럽은 형식적인 통일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왕실귀족, 자산계급정당 할 것 없이 국민들이 도탄에 빠진 유럽대륙의 상황을 바꿀 능력이 없었다. 2차세계대전때까지 내부 세력으로 마지막 피 한방을 까지 다 쏟은 유럽은 세계패권을 미국에게 넘겨준다. 이 실패를 교훈 삼아 영국의 정치가들이 결단을 내려 결정적인 조치를 통해 혼전의 수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1945년 최초로 유럽합중국 재건을 제안한 사람이 바로 당시 영국의 처칠(Churchill)수상이라는 점이다. 영국이 2차세계대전에 비할 바 없이 고생스럽게 나치에 대항한 공로와 처칠의 명망에 힘입어 처칠의 제안은 자연스럽게 널리 환영 받았다.
처질의 연설은 영국과 꿈에 그리던 유럽합중국 관계의 기본정신이 되었다. “우리는 모종의 유럽합중국을 세워야 한다. 이 긴급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은 화해해야 하며, 영국연방, 강대국 미국,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소련은 모두 새로운 유럽의 친구이자 보증인이 되어야 한다…”
원래 처칠이 보는 합중국은 유럽대륙의 합중국이며 영국은 미국, 소련과 같은 세계적인 국가이지 유럽국가가 아니라고 보았다. 우호적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자신을 보호자의 자리에 두는 이러한 태도는 대영제국이 과거 수 백 년간 이어온 영광스런 전통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영국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나 유럽대륙의 입장에서는 귀에 거슬리는 발언이었다. 결국 프랑스가 단일화의 기를 이어받아 1951년 4월 18일 <유럽석탄철강공동체(欧洲煤钢联营条约)>을 체결하면서 관념과 꿈에 머물렀던 유럽연합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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