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펑(汪峰)의 성공학 (4)
- “손바닥의 단순한 생명선을 본 적 있는가, 버려진 후의 외침을 들은 적 있는가”——<동전(硬币)>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5-28 09:42:51
예능인이 된 왕펑
왕펑은 조수의 손에서 바이올린을 건네 받았다. “송진좀 바를게요.” 그가 말했다. 연습실에서 왕펑은 절대적인 핵심이다. 손만 내밀어도 주변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물컵, 기타, 악보… 집도의에게 메스를 건네듯 정학하게 왕펑의 손에 건네는 조수들의 표정이 조심스럽다.
멜로디를 몇 소절 빠뜨리자 왕펑은 “한달 동안 잘 넘어가나 했더니만 또 시작이구먼.”이라 말하고는 크게 웃었다. 그는 콘서트에서 수 년간 묵혀왔던 그의 전공을 선보이려 준비 중이다. 최근 그는 마음 내키는 대로 공연콘티를 짜고 다른 사람에게 출연을 의뢰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데뷔하자마자 상승가도를 걸은 가수가 아니다.
2004년 발표된 앨범<웃는데 눈물이(笑着哭)>는 어떠한 의미에서 끊임 없는 시행착오 끝의 우연한 성공이다. 그 중 이후 <더 높이 날다(飞得更高)>로 제목을 지은 곡은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정신의 숨결을 정확히 반하였다. 당당하면서도 고무적으로 한 방울의 닭 피와 닭 수프로 자신에게 이유 모를 격려를 한 것이다.
이 곡의 상업적 성공은 고속성장을 준비 중이던 중국의 당시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04년중국철도의 장계계획으로 중국 고속철도의 기반이 다져지기 시작하고 대규모 인프라건설과 부동산공사와 더불어 정부의 방대한 투자로 세계가 놀랄 만 한 GDP성장을 이끌었다.
왕펑의 노래는 개인적인 분발을 위한 외침이자 국가주의적 차원에서는 시대의 찬미이다. 규모화 된 주 선율의 찬미자에 비해 왕이는 더욱 서민적이며 시장화되고 일반 국민과 가까웠다. 사람들은 시대적인 급진에 고무되어 급성장의 환상에 휩싸여 이 곡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얼마 후 이 곡은 뜻밖에도 ‘선저우6호(神六)’ 발사 생방송 주제곡으로 선정되었다.
의심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들은 로큰롤가수의 작품이 이렇게 당당한 것은 우주선 ‘선저우6호(神六)’ 발사와 같은 사건과 관계된 것이라 보고 왕펑이 권력에 대해 자발적으로 결탁했다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왕펑은 “이러한 걱정은 어느 날 갑자기 표출되지만 바로 얻을 수 있는 해답은 안목이 있는 사람들과 제 작품을 들으시는 분들이 제 모든 앨범을 지켜보고 있다고 믿는 거였어요.
<더 높이 날다>를 발표한 후에 다른 사람들은 한 앨범에 이런 곡을 8곡 수록하면 어떠한 해명도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저는 아니에요.”라고 밝혔다. <더 높이 날다>의 ‘대박’으로 왕펑은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거대한 상업적 성공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왕펑은 ‘자수성가한 로큰롤 가수’일 뿐 그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파 해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그의 출연료는 3-5만 위안 이었다. 왕펑은 “저축도 20~30만위안이 전부였죠.”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더 높이 날다>이 후 그의 출연료가 10~15만위안으로 뛰었다. “하지만 생활도 같이 바뀌다 보니까 씀씀이도 커지더라고요. 생활하는데 걱정 없겠다고 느끼기엔 부족했어요. 그렇지 않았어요.” 이어 그는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노래가사로 썼어요. 더 높이 날고 싶다는 의미였죠”라고 떠올렸다. 왕펑의 친구이자 탕산음악방송국 진행자 둥펑은 “왕평의 지금 앨범도 최소 70%는 일상, 생각, 모순, 불안, 말과 행동의 순간적인 기록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2005년에 발표된 <만개한 생명(怒放的生命)>은 완벽한 ‘유산’이 되었다. 왕펑은 이런 고결한 정신의 계승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제가 미치지 않는 한은요. 일찍이 곡을 쓸 때부터 알게 된 원리는 목적을 가지고 곡을 쓰면 실패한다는 거에요. 이렇게 생각해 보죠. 내가 쓴 곡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리라 확신할 수 있죠? 그렇게 정확한가요?” 왕평의 말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의 작품에 감춰진 상업적 가치를 개발해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슬프고 심각하면 음악과 정서에 대한 소 그룹의 칭찬이 전부이다. 그러나 자신 있게 나서면 더 많은 자본과 관객을 모을 수 있다. 따라서 왕펑은 이 길에서 좀 더 멀리 나가보기로 결정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곡과 <더 높이 날다>는 정서적으로 대구를 이루며 좀더 자아적이다. 그는 “이미 몇 번을 방향을 잃고 깨진 꿈. 이제 더 이상 막막하지도 않네. 내 생명을 해방시켜주고 싶어라.” 라고 노래한다. 그 해 중국에서는 오디션 붐이 일었고 수 많은 도전자 가운데 안경을 낀 왕펑이 메인 무대의 ‘로큰롤 베이비’가 되었다.
이 두 장의 앨범을 시작으로 왕펑은 자신 만의 것이면서도 대중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전형적인 패러다임을 찾은 듯하다. 그는 또한 앞으로의 가장 중요한 관객——중국의 신생 중산층——과 서서히 접합을 시도했다. 런민(人民)대학 사회학과의 한 논문에 따르면 중국 중산층은 급격한 사회구조변동에 따라 생겨난 계층이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적 조건에서 탄생한 중산층은 서양 자본주의체제 하의 중산계층과는 그 특징과 사회적 기능이 다를 수 있다. 당시 중국의 중산계층은 ‘돌연변이’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그들은 개혁 전의 중국사회를 지속하면서도 사회구조전환 과정 중에 갑자기 생겨나기도 한다.
중국의 특수한 구조전환시기를 바탕으로 부를 축적한 중국의 중산층은 어떤 측면에서 말하자면 ‘허위 중산’계층이다. 그들은 자아반성과 비판능력이 부족하며 미래가 불안하고 정신적으로 공허하다. 땅부자와 빈곤계층 사이에서 일어난 중간계층으로서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자 하는 욕망을 갖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소연의 욕망에 따라 옆 사람에게 자신의 힘들었던 시기를 털어놓고 자신을 숭고한 사람으로 포장하며 산전벽해를 겪은 비장한 의미를 드러내고 싶어한다. 그들에게 왕펑의 가사와 성대한 편곡은 자아환상에 빠지기에 완벽한 배경음악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왕펑이 자신의 마음을 노래했다 느끼는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앨범을 낼 때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지 특별히 고민하게 되요. 앨범의 구조성에 각별히 신경 쓰죠. 앨범마다 <만개한 생명>, <용감한 마음(勇敢的心)> 같은 곡이 1~2곡 있었으면 좋겠고 필요해요.”라며 “앨범의 곡들 중 70%는 <아름다운 세상의 고아(美丽世界的孤儿)>처럼 좀더 록 적인 곡 들, 나머지 한두 곡은 사랑이야기로 채우고 있다”라고 자신의 앨범을 자체적으로 분석했다. 그의 후반기 앨범의 성공비결이기도 하다. 그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감독으로서 자신의 음악구조에 대한 구상을 매우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저작권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 왕펑(汪峰)의 성공학 (1)2015.05.28
- 왕펑(汪峰)의 성공학 (2)2015.05.28
- 왕펑(汪峰)의 성공학 (3)2015.05.28
- 왕펑(汪峰)의 성공학 (4)2015.05.28
- 왕펑(汪峰)의 성공학 (5)2015.05.28
- 왕펑(汪峰)의 성공학 (6)2015.05.28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
많이본 기사
- 경제
- 사회
-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