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펑(汪峰)의 성공학 (3)
- ‘인문가수’로 정의될 만큼 그의 사생활은 매체의 시야를 교묘히 벗어나있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의 음악율동과 고문하듯 가슴에 사무치는 가사뿐이었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5-28 09:38:41
2011년 1월 17일 왕펑은 자신의 웨이보에 전 여자친구 거후이지에가 왕펑이 그들의 딸을 대리고 친자확인을 했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응했다. 그는 친자검사는 법률적인 요구였으며 자신이 한 모든 일은 아이를 위해서였다고 해명하였다. 전까지 왕펑은 스캔들이나 가십거리가 거의 없었다.
‘인문가수’로 정의될 만큼 그의 사생활은 매체의 시야를 교묘히 벗어나있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의 음악율동과 고문하듯 가슴에 사무치는 가사뿐이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왕펑이 가십 면에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그의 정신 만을 찾게 되었고 이번 전 여자친구와 딸의 생모의 등장으로 그의 육체적인 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왕펑의 현실적인 이미지는 정신 고문자와 넘치는 정욕자 사이에 기이하게 걸렸다.
이러한 스캔들에 빠진 같은 해 왕펑의 앨범 <바라는 것 없는 삶(生无所求)>이 발매되었다. 앨범의 <한 순간>이라는 곡이 인기를 끌면서 의도치 않게 자신에 대한 고백이 드러났다. “거울 속의 나를 자세히 들여다 본다. 어찌나 낯선 사람인지. 한평생 의미 없이 살아온 몸뚱어리 뒤로 상처 가득한 슬픔만 남았네.”
왕펑은 ‘의미 없이 허송세월 한 삶’에 대한 검토와 함께 반성도 잊지 않았다. 그는 <존재(存在)>라는 곡을 통해 절묘한 형이상학적 사고를 펼친다. 결론적으로 그의 고상함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추궁할 생각이 진짜로 들지 않도록 한 것은 그의 음악 팬들이다.
중국의 허위중산층은 한담 중 미화로 자신의 깊이 뽐내기를 즐긴다. 가장 기본적인 정신세계가 부족한 남자들은 가벼운 고난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허울좋은 물질적 성공을 드러내고 싶어하는데 왕펑의 노래 <존재>가 그들의 이러한 필요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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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
왕펑은 노래 중 <비상, 날개, 그리고 먼 곳(飞翔、翅膀和远方)>을 즐겨 불렀다. 그러나 2011년 이후 전 부인, 외도, 자녀양육 등의 흔한 함정에 빠졌다. <존재>와 같은 궁극적인 의미의 고통스러운 추궁과 결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전(前)부인의 눈물 어린 하소연 사이에 갑자기 블랙유머의 틈이 생겼다. 그의 팬들 역시 일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왕펑의 깊이 있는 가사에 감동하면서도 그의 문란한 사생활에 당황했다. 둘 사이의 괴리는 왕펑을 점점 더 가식적인 모습으로 치장하는 듯했다.
“이 이론 또는 사람의 진리라는 건 어디서 오는 건가요? 그러니까 이런(이런 노래를 쓰는)사람(의 사생활)은 반드시 이럴 수 밖에 없다는 거요. 더구나 그런 뉴스들이 진실인지는 알아보지도 않잖아요. 그 사람이 겪었을 감정의 경우 이혼을 했으니 이러 이러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요. 항상 그렇듯이 우리 기억에 남을만한 사람들의 인생 전체를 봐도 대체로 그런 일들을 겪어요.”
왕펑이 웃으며 말한다. 말이 좀 헷갈린다. 결론적으로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복잡한 사생활이 생활이 일부이듯 자신의 음악 역시 생활의 일부일 뿐이며, 음악과 사생활이 상쇄 될 수 없음으로써 자신이 거짓된 사람임을 증명된다는 점이다.
왕펑의 친구이자 쿤밍(昆明)라디오방송국 진행자 정커(曾克)는 “왕펑과 각자의 감정과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누었는데 왕펑도 똑 같은 보통 사람이에요. 뚜렷한 장점도 단점도 있고, 피와 살이 있는. 좋지 않습니까?” 라고 평가했다.
2013년 9월 왕펑은 이혼사실을 밝히면서 ‘맑고 투명한 생활의 시작’이라 했다. 그러나 그날은 그가 맑고 투명하게 살 수 없는 날 이었나보다. 같은 날 왕페이(王菲)의 이혼소식이 퍼지자 누리꾼들은 왕펑의 긴 역정을 가십거리 삼아 비웃었다. ‘왕펑을 톱기사로(帮汪峰上头条)’가 오랫동안 전 국민의 재밋거리가 되었다.
왕펑은 “이것은 사건 하나에 불과해요. 누가 시작했는지도 몰라요. 이렇게 된 거 어쩌겠어요.”라며 체념한 듯 “톱기사이야기가 제가 계획한 장거리조작이라는 얘기도 있던데, 제가 그럴 시간이나 있나요? 그런 지혜가 있었으면 뒤탈도 없었겠죠.” 라고 해명한다.
왕펑의 ‘톱기사운동’을 그가 주도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을 터부시 한 적이 없다. 처음에만 자신에 대한 비웃음에 대해 분노하고 우울해 하던 때가 있었다. “너무 괴로울 때가 있죠”.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천천히 말했다. 10년간 왕펑과 함께한 기타리스트 핑충(冯冲)은 “같이 밥을 먹는데 주변 사람들이 비웃을 때도 있고 위로할 때도 있었죠. 지금은 자기가 농담 삼아 톱기사에 나야 한다는 둥 얘기도 하고 많이 좋아졌어요.”라고 기억한다.
한번 시작된 조롱은 끝나지 않는다. ‘Voice of China(中国好声音)’ 무대에서 연습생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 장면에서 ‘왕펑 눈 스티커’의 우스꽝스러운 사건까지 그와 관련된 모든 소식 뒤에는 다분히 악의적인 역할로 꾸며진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왕펑의 운명이고 그의 성공의 대가이다.
재미에 집착하는 시대. 사람들은 비웃기를 즐기고 진지한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왕펑은 매우 오랜 시간 ‘인문가수(人文歌者)의 진지한 역을 도맡아 왔다. 사람들은 <봄날에>를 부르며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성공의 길을 씁쓸하게 돌아보고 ‘날개로 내일의 태양을 들어올린다’고 외치는 왕펑의 모습을 받아들였다.
그 전까지 팬들은 왕펑을 통해 지친 자신과 견딜 수 없는 현실에 용기를 얻었지만 이후 그가 ‘인문주의의 대언자’라 규정되어 버리면 거센 기세가 풀려버릴 것이 뻔하다. 사람들은 유명인의 희극적인 또 다른 모습에 열광한다. 관객들은 왕펑이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누가 알까’라 부르며 무대를 내려와 많은 소녀들의 품에 뛰어들었다는 등의 이야기 듣는 것을 즐긴다.
왕펑이 웨이보에 두 번째 결혼생활을 끝냈다고 밝힌 당일 저녁 왕펑이 친구와 마작을 두는 사진이 널리 퍼졌다. 사진 속 왕펑 옆자리의 여인은 외관상 장쯔이 같았다. 이전 홍콩매체를 통해 공개된 두 사람이 함께 천이쉰(陈奕迅)콘서트를 관람하고 장쯔이가 사베이닝(撒贝宁)과 헤어진 등의 소식이 연결되는 장면이었다. 이로서 왕펑과 장쯔이는 대중들에게 공식적인 연인관계로 알려졌다.
그 해 연말 2013년 11월. 왕펑은 새로운 앨범 <생의방황(生来彷徨)>을 발표하였다. <신앙은 공중에 떠돌고(信仰在空中飘扬)>와 <바라는 것 없는 삶>이 더우반(豆瓣)에서 평점 9점 남짓의 호평을 받은 데 비해 이 앨범의 평점은 6.7에 그쳤다. 돈을 모으면서 팍팍한 삶과 멀어져서 인지 사랑을 해서인지 곡들이 부드럽고 아기자기해졌다.
왕펑의 친구이자 탕산음악방송국 진행자 둥펑(董鹏)은 “현실생활에서 실제로 아름다운 사랑을 했기에 그렇게 많고 널리 유행할 수 있는 사랑노래를 쓸 수 있었다. 입장과 기교만으로는 안 된다. 마음과 감정에서 우러나온 진실이다.”라고 말했다. 왕펑은 앨범의 수록 곡 중 한 곡에서 ‘내 사랑. 이렇게 싸우는 것 의미가 없어. 차라리 내 품에 조용히 기대 잠들어 느껴봐 바람을, 존재감을, 창 밖 꿈의 숨결을, 망망한 세월 속 외로운 두 마음을’이라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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