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베테랑 흥망록
- 주식시장이 오름세라고 모든 투자자들이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증권사와 같은 일부 기업들은 가만히 앉아 오름세 효과를 누리기도 한다. 진정한 투자의 고수들이라고 오름세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것은 아닐 수 있으나 가장 확실한 사실은 하락세도 소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7-29 09:31:40
[기자/천지잉] 진정한 투자 고수들은 주식시장의 등락에 관계없이 모두 승리자이다. 오름세에는 돈을 벌고 내림세에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들은 오름세에 ‘물불 가리지 않는 투기꾼’과 비교도 되지 않는 가장 많은 수익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시금석은 내림세로, 이 시기에는 진정한 고수 만이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소비, 투기, 그리고 차익 거래
화룽(花荣)의 실명은 위정화(余郑华)이다. 예명은 알지만 그의 실명을 모르는 누리꾼들이 많다. 그는 주식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마이더스의 손’이다. 그는 ‘1승 2무 7패’의 전적을 겪으며 자신을 노루, 호랑이, 사자가 공존하는 주식시장이란 정글의 사냥꾼이라 여긴다.
반팔 T셔츠차림에 가끔 머뭇거리는 말투의 그는 겉보기에 보잘것없다. 그도 손해를 본 적이 있다. 13~14년 전 집안재산 수백만 위안을 순식간에 날리고 낙담한 것이다. 그러나 그 후 그는 2008년 주가가 6,000p에서 1,600p로 폭락한 상황에서도 주식투자로 돈을 벌었다.
2001년 무렵의 실패는 타격이 매우 컸다. 그 시절은 화룽의 치부이자 눈물 없이 말할 수 없는 세월이다. 그는 2007에야 재기에 성공해 손해를 만회했고 과거 실패의 ‘아픔’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1991년 주식시장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화룽은 한번도 주식시장을 떠난 적이 없다. <포브스>지에 랭크 된 재벌들은 사업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은데, 화룽은 그러한 성공은 좋은 기회와 지리적 조건, 인간관계의 종합적인 소질이 필요하며 운, 능력, 시기, 인맥, 권력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주식투자는 달라요. 젊은 시절에는 권력이 없으니 재벌2세라고 두렵지 않은 게 아니죠. 능력만 있으면 주식투자로 후한 수익을 얻을 수 있어요. 한마디로 주식투자가 사업보다 쉬워요. 최근 2년은 1년에 세 번 융자를 받고 연간 자산가치가 수억 달러에 달하는 회사도 적지 않지만요.”라고 화룽이 말했다.
화룽은 주식투자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는다. 중국 전체에서 그가 인정하는 주식투자의 고수는 열명을 넘지 않는데, 자신도 그 중 한 명이다. 성명을 밝히지 않은 한 증권사 임원은 화룽에 대해 다소 복잡한 어감으로 “투자방식이 좀 거칠죠. 명문정파라 할 수는 없지만 자신 만의 방식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화룽은 외부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다. 책과 웨이보(微博), 블로그 등의 SNS, <백전명장(百战成精)>을 통해 투자방법을 전수하고, 소설 <주식투자가(操盘手)>는 그의 자서전이라도 되는 양 “실화 만을 적었다”.
이미지 메이킹에 능한 화룽 역시 이러한 칭찬과 추앙을 받았다.
1승 2무 7패. 진정한 고수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 질까?화룽이 보기에 주식투자자는 ‘소비형’과 ‘투기형’, ‘차익거래형’으로 나눌 수 있다. ‘소비형’ 투자자는 소비하는, 다시 말해 ‘주식시장에 돈을 바치는’부류로 ‘더위 먹고’ 기본적인 투자경험이 부족한 대부분의 주식투자자들의 속성이다. “(투자경력)3년이하의 주식투자자들은 대부분 그렇다. 10년이 넘어서도 발전 없이 이 부류에 머무는 사람도 있다.”
2014년 7월부터 최근까지의 활황세를 지나며 잉다(英大)증권연구소 리다샤오(李大霄) 소장은 증시버블로 주식투자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는 특히 자산분배, 융자, 대출로 주식투자를 하는 개인투자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자신의 웨이보(微博) 프로필에 ‘마약을 멀리하라, 레버리지를 멀리하라(远离毒品,远离杠杆)’고까지 적으면서도 “이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오름세인데, 지금이 바로 그 때”라며 소비자형 투자자들의 주식투자를 부축이고 있다.
‘더위 먹은’상태의 소비형 투자자에 비해 ‘투기형’ 투자자는 증권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으며 투자경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름세에 모험적인 투자를 즐기고 5~10배 이상의 레버리지를 적용하며 과감한 ‘모험’전략으로 오름세에 가장 큰 수익을 볼 수 있으나, 동시에 위기관리의식이 강하지 않아 내림세에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 수 있다.
화룽 자신도 도박형 투자자의 속성을 지닌 적이 있었다. 증권회사에서 자영업무를 담당하던 그는 증권회사의 상주거래가 장려되면서 투자대리인으로서 증시 ‘큰 손’들의 자금흐름을 볼 수 있었다. “투자위험은 지도자들이 생각하고 우리는 돈 많이 벌 생각만 했어요.”
주식투자로 100만 위안을 번 후 화룽은 국영업체에서 나와 최초의 워털루를 만났다. 2001년즈음 친구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주식을 투자하도록 부축인 것이다. 그들은 화룽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났고 당시 화룽의 재산은 700여만 위안이 채 되지 않았다.
결국 화룽은 거의 전 재산을 주식에 투자했고 친구들은 재산의 일부만 투자했다.증시가 한창 좋을 때라 그들은 10배의 레버리지를 적용했다. 주가가 10%p만 하락해도 원금 전액을 날리는 것이다. 7~8%p까지 하락하자 화룽은 참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주식투자를 그만 두라고 극구 만류하기 시작했다. 체면과 존엄성 때문에 화룽이 50%의 손실액을 감당했다. “친구들은 그때 제가 그렇게 많이 손해를 봤는지 몰라요.”
그래서 지금까지 화룽은 자신이 (주식투자의)고수라 생각하면서도 레버리지를 멀리한다. 융자나 자산분배자금은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며 레버리지를 적용하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또한, 재산이 모일 만큼 모이고 나이, 심리, 기술이 더욱 성숙해 질수록 오히려 “위험을 더욱 신경 쓰게 되는”것을 느낀다.
화룽은 80~90%의 자산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그는 “자금은 충분한데 사용할 주식이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그가 어떤 종목을 추가로 구매하려 할 때다 많이 구매하면 가격이 오르는 바람에 “싸게 매입할 수가 없었다.”
재산에 대한 열정이 충만한 화룽은 주식투자를 그만두지 못한다. 그에 따르면 ‘생존의 자유’는 360만 위안으로 밥그릇이 없어 굶어 죽을 걱정은 없기에 싫은 일은 하지 않을 수 있는 상태, ‘여행의 자유’는 720만 위안으로 몬테카를로(Monte Carlo)에서 이성적으로 도박을 즐기거나 산야야룽만(三亚亚龙湾)에서 베이징(北京)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상태, ‘생명의 자유’는 1080만 위안으로 스위스 징강(静港)센터에서 몸과 마음을 젊게 가꿀 수 있는 상태, ‘지배의 자유’는 2억 위안으로 모델 팀이나 축구팀을 살 수 있고 성격이 활달한 사람의 경우 브랜슨(Branson)의 생활방식도 배울 수 있는 상태, ‘완벽의 자유’는 당신만 좋다면 20억 위안으로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꽃을 바치거나 불꽃을 터뜨리는 이벤트 대신 상한가주식을 미음대로 선물할 수 있는 상태이다.
돈은 충분히 썼는데 동기가 부족하다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는 베이징 화이로우(怀柔)의 옌치후(雁栖湖)호텔에 들어갔다가 호텔이 매우 마음에 들면서도 자신의 재산으로는 호텔에서 묵을 수 있을 뿐 호텔을 마음대로 소유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에 주식투자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동기가 생겼다.
상하이와 선전 주식시장의 1대 직업주식투자자이자 그 가운데 얼마 되지 않는 생존자로서 화룽은주식투자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한 개인투자자들은 24시간 내내 죽어라 증시상황을 지켜보지만 화룽은 개장할 때만 본다. 그는 “개장시간이 너무 긴 것 같아요. 오전이나 오후에만 개장하면 더 좋은데.”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화룽이 주식투자로 ‘재무의 자유’를 실현하긴 했지만 2007년 이후로 주식투자는 그에게 일이자 돈벌이수단일 뿐이다.
“먼저 숙련된 직종으로 노하우를 쌓는 거죠. 이것은 목수가 의자를 만드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요. 솜씨가 점점 좋아지는 것도 그런 거죠.”
개인투자자들은 짜릿하고 재미있기만 하다.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하고 다양한 종목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증권자산을 보며 그들은 도박이나 경마와 같은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화룽은 살기를 느낀다. “참혹해요. 후난(湖南)에서는 4배의 레버리지를 적용했다가 재산 170만 위안을 몽땅 날리고 절망해 자살한 투자자도 있어요.”
화룽 역시 이러한 경험이 있다. 2001년즈음 한 층 전체의 주식투자자들이 거의 모두 처참할 정도로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 화룽과 함께 주식에 투자한 10여 명의 친구들은 같이 등산도 자주 다녔는데 요즘은 화룽을 제외하고 거의 다 이혼했다. “가산을 탕진해 더 이상 살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는 사냥꾼이에요. 그런데 이 잔혹한 전쟁터가 왜 좋은가요?” 이 같은 냉정함이 투자의 고수가 되는 데는 오히려 유리하다.화룽은 무릉도원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독립된 자세를 유지했다. 2001년 증시대란 이후 화룽은 주식투자로 재기할 것을 꿈꿨으나 자금이 없어 돈을 대줄 대 부호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기지를 발휘해 나누어 자금을 구했다. 그와 협력한 부호들은 많게는 10억위안, 적게는 5천만위안의 자산가 들이었다. 화룽은 자신과 대 부호들이 평등하다 생각했지만 그들은 자신이 우세에 있다 생각했다. 5~6년 동안 화룽은 마음속으로 불복하면서 참았다. “돈 없고 자원 없는 사람이 참는 수 밖에요.”
2007년 화룽이 마침내 1천만위안을 모아 레버리지를 깨면서 협력한 대 부호들과 싸울 뻔했다. 그이후에야 그와 대 부호들과의 관계가 서서히 평등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도 ‘모시기가’ 너무 어려운 사모투자회사를 설립하기 원하지 않는다. 사모투자회사는 언제나 비판투쟁회의만 열고 예금주들은 모두 주거량(诸葛亮)이다. “유망주를 사면 차스닥보다 오르는 속도가 느리다 느끼고 1배를 벌면 10배를 벌어야 한다고 느껴요. 결국 자주적으로 독립 할 수가 없죠.”
그러나 화룽은 결국 주식투자가 그를 사회에서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대중들의 인정을 열망했고 이 잠재력을 어떻게 충분히 드러내고 이용할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2002년부터 2007년 뜻이 좌절되었을 때까지는 저술활동이 그의 주요 소득원이 되었다.
현재 화룽은 ‘피서산장(避暑山庄)’이라는 28명 규모의 조합을 하나 세웠다. 한(汉)시대 세조(世祖)류슈(刘秀)의 ‘운대28장(云台二十八将)’을 모방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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