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신: 바오펑(暴风) ‘몬스터주’를 만든 남자 (2)

갈 때까지 가보자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6-29 09: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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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위안루] 마감 당일 펑신은 어렴풋이 주가폭등을 예감했다. 그날 그는 “중국 내국인주식시장이 바오펑을, 바오펑이 중국 내국인주식시장을 누리는 시대를 열고 싶다.”, “나 혼자 진출한 것이 아니라 수 억의 네티즌, 5천만 고객들과 함께 중국인 주식시장으로 돌아온 것이라 군중기초가 매우 강대하다.”는 두 마디 말을 했다. 

 

그는 자산 배후에 바오펑 5천만 고객의 힘이 숨어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가 말한 ‘군중기초’에는 그의 가족도 포함된다. 펑신의 어머니는 컴퓨터만 켜면 ‘바오펑음향(暴风影音)을 연다. “다른 게임을 할지언정 바오펑을 연다.” 그의 누나와 여동생도 바오펑의 단골이다. “다른 플레이어를 사용하는 사람만 보면 꼭 한두 마디 한다.”

 

바오펑의 주식은 이렇게 방대한 고객을 기반으로 많은 금융권인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로드쇼(Road Show)에서 중진(中金)의 한 투자자가 펑신에게 바오펑 주식에 대해 문의하는 펀드회사 총감독이 많다고 말했다. 펑신이 동의하지 않자 그는 예전에는 총감독이 아니라 실장이나 사장이 문의하는 경우가 제일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제서야 펑신은 바오펑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관심을 받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바오평이 상장허가를 얻었음을 알게 된 그 순간과 마감 하루 전날에도 펑신은 외부사람들의 생각처럼 극도로 흥분하지 않았다.“실제로 마음이 매우 차분했다.” 


선전(深圳)증시에 상장하던 날 다른 기업 세 개가 바오펑와 함께 개장 벨을 울렸다. 다른 기업 대표들은 모두 양복을 차려 입었는데 펑신만 검정셔츠와 청바지, 뉴 발란스 운동화 차림이었다. 개장 벨을 울리기 전의 ‘통과회의’(새로운 주식발행이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심사비준을 통과하는 것) 당일 정부부처 지도자들이 모두 양복을 입은 것을 보고 사무실 밑에서 급한 대로 양복을 한 벌 사 한 시간 입은 후로는 한번도 입지 않았다. 


운동화차림으로 개장 벨을 울린 것은 상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펑신은 상장을 위해 4년을 기다렸다. 4년 전 대다수의 인터넷업체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향해 돌진하면서 모든 중국인터넷업체들이 미국증시상장을 돈벌이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펑신은 중국 국내시장 상장으로 돌려 경쟁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2010년 한해 전 중국 내국인증시에 상장한 화이브라더스(华谊兄弟)가 좋은 실적으로 스타기업으로 성장한 것을 본 후였다. 당시 미국은 금융위기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었고 미국에서 중국 개념주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중국 내국인증시에 상장한 기업들이 브랜드프리미엄을 얻고 있는데 외국증시에 상장하면 브랜드프리미엄은 얻지 못하고 자본수익밖에 얻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마침 바오펑의 이윤 역시 중국 내국인증시상장의조건에 맞았다. 


때마침 골드스톤(Goldstone)이 바오펑에 투자하겠다며 펑신을 찾아왔다. 현재 바오펑의 CFO 비스쥔(毕士钧)이 당시 골드스톤을 대표해 펑신과 연락했다.
2011년 펑신은 비스쥔의 주도로 자본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비스쥔은 “동영상사업의 전망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펑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 투자했다.”고 회고했다. 


펑신은 구조조정을 마무리 한 후 2012년 3월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차스닥에 증시상장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주석교체로 사오강(肖钢)이 궈수칭(郭树清)을 이어 주석이 되고 중국 내국인증시의 칭냐오화광(青鸟华光), SST화수(华塑), 하이롄쉰(海联讯)등 회사들이 줄줄이 입안되어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상장허가가 잠시 정지되어 2014년 봄에야 재개되었다. 


중국 내국인증시가 재개된 다음해까지도 많은 회사들이 상장창구를 보지 못해 신청을 취소했지만 펑신은 있는 힘껏 버텼다. 그는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에 신중을 기하고 콘탠츠 구매 시 독점방영과 최초방영권은 구매하지 않거나 적게 구매해 콘텐츠제작에 돈을 들이지 않았다. 


이 기간 써우후(搜狐), 신랑(新浪), 투더우(土豆), 여우쿠(优酷), 성다(盛大)의 관계자들이 펑신을 찾아와 바오펑을 인수할 것을 논의하였으나 펑신은 모두 거절했다. 2013년말에는 알리바바가 그를 찾아왔다. 펑신은 투자부, 엔터테인먼트부에서 전략부, 당시 CEO 루자오시(陆兆禧)에 이르기까지 알리바바의 관계자들과 교섭을 시작했다. 2개월여의 교섭 끝에 알리바바가 3년 동안 9억달러를 투자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펑신은 그렇게 되면 자신이 최대주주를 잃을 가능성이 있어 독자적으로 상장하는데 영향을 받으리라는 것을 의식했다. 


알리바바와의 교섭 중 펑신은 친구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중국 내국인증시가 열릴 조짐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을 알게 되자 알리바바와 더 이상의 교섭을 할 흥미가 없어졌다.
가장 망설여질 때 그는 전자상거래업체 라카라(拉卡拉)의 CEO 순타오란(孙陶然)을 찾았다. “갈 때까지 가보라.”는 순회장의 말을 듣고 펑신은 죽을 각오로 독립상장을 해 보기로 결정했다.


증권감독관리위원회가 상장심사를 재개한 그 해 여름, 펑신은 각종 전문용어를 찾아가며 투자설명서를 쓰는 방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문가보다 잘 써요.” 한동안 그는 베테랑 주식투자자처럼 매주 두세 번씩 증권감독관리위원회 건물로 찾아가기를 3개월 동안 계속했다. “상장 대기중인 회사 사장님들과 함께 줄을 서서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예심위원, 관계자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2014년 설 전의 어느 날 펑신은 회사일로 분주한 중에 상장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는 혼잣말로 상장과정의 99%를 완성했을 뿐 상장은 개장 벨을 울리는 날 끝나는 것이라 되뇌었다. 그러나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걸어 가족들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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