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난징(南京)대학살
- 그들이 어떻게 침해를 받았는지, 또는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많이 묻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배우자, 가족들, 사랑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와 그 세대 생존자들이 겪어온 삶을 생생히 이야기하도록 할 뿐이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일상에 재난을 재현하고 마음속 깊이 와닿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02-01 12:08:32
기자/류위퉁(刘禹彤)(난징 南京)
“12월 18일, 인터뷰에 응한 천원잉(陈文英)과 취재를 한 루옌밍(卢彦名), 난징(南京), 중국”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대학살기금회(USC Shoah Foundation)의 동영상파일과 후기제작 담당자 쟈크(Zac)가 카메라 앞에서 슬레이트를 치는 것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천원잉은 거실의 창문을 등진 체 휠체어에 기대앉아 있었다. 90세 노인의 작고 마른 체구가 암홍색 면 상의에 싸여 다소 비대해 보인다. 딸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 실수로 넘어져 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천원잉을 제외하면 거실에는 인터뷰 질문을 하는 난징대학살기념관 연구원 루옌밍과 카메라감독, 음향감독뿐이었다. 다른 방에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대학살기금회(이하, ‘대학살기금’) 문헌연구부 캐런(Karen)주임과 그의 조수 팡청(方程)이 천원잉과 딸과 함께 앉아 있었다.
천원잉은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1925년, 그녀는 방직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에게는 세 자매와 오빠 하나가 있었는데, 난징대학살 때 그녀의 오빠는 사살당하고 그녀를 매우 아끼던 셋째 언니는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한 후 살해당했다. 셋째 언니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얼굴을 움찔하며 눈물을 흘렸다.
모니터 뒤에 있던 캐런이 고개를 돌려 딸에게 잠시 쉬었다 가야 하겠느냐 묻자 딸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캐런은 잠시 망설이다 인터뷰를 중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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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0월, 루옌밍(卢彦名, 가운데)은
난징(南京)대학살 생존자들을 인터뷰했다. 2012년 중국과
미국의 협력으로 시작된 난징대학살 생존자 증언기록프로젝트는 현재까지 세 차례의 인터뷰가 진행되었으며, 생존자 50명의 증언이 영상으로 기록되었다. 사진/인터뷰 응답자 제공 |
천원잉은 이 팀이 취재하는 서른 다섯 번째 난징대학살 생존자이다. 생존자 서른 다섯 명의 평균연령은 85세로 가장 나이가 많은 생존자는 94세이다.
“다양한 분야의 직원들이 많죠. ‘콘텐츠 생산팀’이라 불리는 그들은 세계 각지에서 우리 프로세스에 따라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록합니다.” 캐런이 <중국신문주간(中国新闻周刊)>에 소개했다.
1993년, 2차세계대전 기간의 나치유대인 역사를 다룬 영화 <쉰들러리스트>가 세계의 심금을 울리며 다음해 제66회 오스카영화제와 제5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7개부문을 수상했다. 그 후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감독은 영화 수익 전부를 들여 대학살기금회를 세워 대학살 생존자들의 영상증언을 기록, 보존하는 데 힘쓰고 있다.
대학살기금에는 2차세계대전 기간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계획적인 민족멸절 및 학살에 관한 생존자 5만3000여명의 증언이 수집되어 있다.
2012년, 대학살기금은 ‘일본침략군 난징대학살 피해자기념관’(이하, ‘난징대학살기념관’)과의 협력으로 난징대학살 생존자들의 증언을 공동기록하기 시작해 연말 촬영 팀이 중국어로 생존자 12명과의 첫 번째 인터뷰, 2014년 가을 18명의 생존자를 대상으로 두 번째 인터뷰를 완성했다. 이번 세 번째 인터뷰는 2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이들 생존자의 영상증언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역사 및 교육 시청각자료실에 소장될 뿐 아니라 5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편집되어 미국의 유명 매스컴 NBC를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된다.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캐런은 “이래야만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죠. 이 프로젝트는 중국뿐 아니라 우리의 데이터플랫폼을 통해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작은 역사 속의 큰 역사
“늙어서 더 이상 바깥세상을 보고 싶지도 않고, 대학살 관련행사에 참여하고 싶지도 않아요.” 인터뷰 40분 즈음 천원잉의 주름진 얼굴에 다시 한 번 눈물이 흘러내리며 그녀가 무릎 위의 열 찜질주머니를 꼭 쥐었다. 오랜 시간 지난 아픈 기억으로 빠져들다 보니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캐런이 “컷,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라며 촬영을 끊었다.
캐런은 인터뷰에 응하는 생존자의 감정을 각별히 신경 썼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휠체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천원잉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인터뷰 중에 불편한 데 있으시면 멈출게요.”
그녀는 천원잉에게 조명이 눈부시지 않은지 몇 번이나 확인을 했다. 배경, 조명, 음향테스트 등 촬영준비가 끝나자 인터뷰를 진행할 루옌밍 박사와 카메라감독, 음향감독 외의 다른 팀원들은 모니터실이나 밖으로 흩어졌다.
천원잉이 쉬는 동안 캐런은 루옌밍을 옆으로 불러 잠시 동안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음 인터뷰에서 몇 가지 질문을 보충하기를 원했다.
천원잉이 대학살 후 한 일본상인 가정에서 보모 일을 했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캐런은 자신의 오빠와 언니가 대학살로 죽은 상황에도 일본인 가정에서 보모로 일한 루옌밍의 심정이 어땠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일본인이 일본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면 기분이 어땠을지, 정말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어떠한 선택을 할지 등등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캐런은 팀원들에게 생존자에게 이야기 하기 원하지 않는 내용을 이야기 하도록 강요하지 말 것을 강조해 왔으며, 루옌밍에게도 생존자가 흥분하거나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면 인터뷰를 멈추어야 한다고 일러두었다.
루옌밍은 대학살기금과 난징대학살 기념관의 협력으로 진행되는 난징대학살 영상프로그램의 인터뷰 진행자 중 한 명이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의 연구원인 그는 기념관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주요 담당자이기도 하다.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팀과 계속해서 협력을 진행하고 있어요. 첫 번째 대상 열 두 명과의 인터뷰는 만족스럽지 못했고 질문도 거시적이라 자세한 의식을 묻지 못했거든요” 라고 밝혔다. 따라서 인터뷰 중간마다 미국 팀이 매우 많은 문제를 추가해 주었다.
이 밖에 미국 팀은 질문을 이어가는 것 역시 매우 중시했다. 협력을 통해 루옌밍은 성공적인 인터뷰란 인터뷰 대상자의 이야기를 듣고 신속히 요점을 찾아 추가로 질문을 이어가는 것임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오늘 같은 경우 천원잉 선생님이 어머니께서 눈이 안 좋으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제가 왜 좋지 않으시냐고 묻지 않으면 캐런이 분명히 질문하라고 코치했을 거에요. 캐런이 추가로 질문할 것을 아니까 저도 바로 물었더니 언니, 오빠와 부모님 생각에 너무 울어서 눈까지 상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루옌밍이 말했다.
매번 인터뷰 때마다 캐런은 모니터 앞에서 생존자와 가족의 대화 중에 알게 되는 생존자의 정보와 생존자가 카메라 앞에서 빠뜨린 문제를 적어 인터뷰 두 번째 단계에서 빠진 문제를 채워간다. 따라서 생존자와의 인터뷰는 보통 기본정보, 추가질문, 가족과의 합동인터뷰 세 단계로 나뉜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에 몇 백 점의 문물을 기부한 난징항공친목회 이사이자 난징 황푸(黄埔) 친족친목회 회원 천궁(陈功)은 루옌밍과 함께 인터뷰 진행자이다. 그날 촬영에서 그는 대학살기금에 등록된 협력파트너로서 촬영팀 프로그램제작 주임을 맡았다.
천궁의 기억에 따르면 난징대학살 기념관은 일찍이 난징대학살 사건에 대한 기억을 주제로 일부 생존자들의 증언 동영상을 제작했었는데, 이번 미국과의 공동 제작한 내용에는 생존자 가정의 역사와 항전승리 후의 경험이 추가되었다.
일부 생존자들은 인터뷰에 관성이 생겨 이야기를 하다 순식간에 자신도 모르게 난징대학살 당시의 이야기에 몰입하기도 한다. 그들은 캐런 일행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대학살 후의 경험에 대해 왜 관심을 갖는지 매우 궁금해 한다.
캐런 일행에게 인터뷰는 난징대학살 시기의 역사를 이해할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 생존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알아 모든 생존자의 인생을 단순한 전쟁의 피해자가 아닌 하나의 전체로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악령(demons)>에서 샤토프와 스타브로긴이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 “무궁 무한한 세상에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만난 두 생물이라네……그런 말투로 이야기 하지 마오. 사람처럼, 최소한 사람의 목소리로 이야기 해 주오.” 인터뷰에서는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같은 질문이 생략되고 등한시 되던 일상생활이 많이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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