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자오줘] “대학생 때 하라겐야(原研哉) 책을 샀는데 그야말로 그 생각만 났어요. 디자이너가 이렇게 대범할 수 있다는 것에 흥분되더라고요. 가깝게 지내면서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잘 하는지 배우고 싶었어요.” 청비의 말이다. 사무실에서 “팬 입니다. 목소리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음악 여러 번 들었어요.”라는 하라겐야의 말을 듣고 청비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
당시 청비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 매우 막연한 상황이었다. “일본문학의 동양전통미학을 공부했고 어릴 때부터 음악, 디자인, 문학 같은 문화와 문예방면의 모든 것을 좋아했어요. 정통하고 멀리 갈 수 있으며 다른 분야를 이끌 수 있는 분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방향으로 노력해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라겐야 작업실에서 단련으로 그녀가 이후 예술의 길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라겐야의 작업실에 인터뷰를 왔던 신화사(新华社)기자 한 명이 청비와 좋은 친구가 되었고, 그를 통해 청비는 재일(在日)시인 톈위안(田园)을 알게 되었다. 당시 청비는 시에 곡을 붙일 생각이 있었는데, 톈위안이 “베이다오를 소개시켜 줄테니 직접 연락해서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것에 동의하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청비는 도쿄 한 대학에서의 교류공연기간 중에 베이다오(北岛)를 처음 만나 그 자리에서 조심스레 <전부(一切)> 불러주었다. 하라겐야외 마찬가지로 베이다오는 노래를 듣고도 아무 이야기가 없다가 한참 후에야 청비에게 연락해 “다른 작품도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하라겐야의 작업실에서 청비는 기초적인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점점 대가를 좋아하는 것과 대가의 옆에서 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작업실 직원인데 우리는 그의 생각대로 할 뿐 우리 생각을 표현하기는 매우 어려웠어요.”
직원 모두가 하라겐야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일했기에 압력이 매우 컸다. 디자이너가 밤낮없이 고쳐 온 원고가 하라겐야가 한 번 보고 하는 말 한마디에 폐기처분 되었다. 청비는 나사가 아닌 창작자가로서 작곡에 더 많이 힘쓰고 싶었다.
“중국에는 제 미적 기준에 맞는 음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유카와 시오네(汤川潮音), 요우모우투하나(羊毛和花) 같은 도쿄의 인디음악이나 아일랜드의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 리사 한니젠(Lisa Hannigen)을 많이 들었어요.
그들과 같은 미적 기준이 제가 표현하고 싶던 것이었고 청중도 많았어요. 중국에는 왜 이런 뮤지션이 없는 걸까요?” 라고 청비가 말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라이브하우스(live house)에서 공연으로 교류하면서 청비 역시 예술작업실을 독자적으로 경영하고 싶어졌다.
일본에서 청비는 천천히 <시, 노래를 만나다>의 대모(demo)를 완성했다. 1년 후 그녀는 음반제작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녹음에 3개월이 걸려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하라겐야 작업실을 그만 두고 도쿄에 자신의 예술작업실을 차렸다.
청비를 주목하고 있던 베이다오가 갑자기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앨범 이름 정했습니까?” 라고 물었고, 청비는 생각 중이며 시와 노래를 결합해 지어볼 생각이라 답했다. 1주일 후 베이다오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시 노래를 만나다’는 어때요?”라고 물었다. 훗날 시인 톈위안에 따르면 “그가 앨범 이름을 생각하는데 이렇게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은 목소리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뜻 밖에 기타를 배우게 되고 우연히 첫 음반을 제작하고, 막연한 가운데 하라겐야의 채용 메일을 받아 음악창작의 길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베이다오의 지도를 받게 되는 등 청비의 예술경력은 보통의 행운이 아닌 듯하다.
“친구랑도 제가 왜 이렇게 운이 좋은지 이야기 한 적이 있어요. 친구는 신념의 힘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사람이나 물건에 다가가고 싶어하면 그들도 모두 제 옆으로 왔어요.”
작업실을 그만둔 후 청비는 도쿄와 베이징을 끊임 없이 왔다 갔다 했다. 도쿄에서 친구와 음반을 제작하고 베이징으로 돌아와 앨범홍보와 공연을 했다. 노래창작, 앨범재킷 디자인에서 편곡자, 녹음실, 엔지니어를 섭외, 마지막 인쇄소에서의 색상교정까지 모든 작업을 혼자 완성했다.
“그 때 제가 모험을 감행해 과감히 회사를 나와 가수가 된 이유는 가수가 되자 않더라도 2년 후 번역과 문학일을 하면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라고 청비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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