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아프다는 것을 하늘은 알까?

영화 ‘쪽빛 하늘’ 스틸사진
김지영 bnu0827@gmail.com | 2018-08-18 17: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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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다 환자인데 하늘은 이것을 알고 있을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병에 대해 누가 알고 있는지, 누가 진단해줄 것인지, 최종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글/ 양스양(楊時旸)] ‘쪽빛 하늘’은 밝은 제목을 달았지만 어둡고 음침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제목을 들었을 때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생각할 수 있고 몇 명의 학생들이 운동장과 옥상을 돌아다니며 달콤하면서도 약간 가슴 아픈 이야기와 연애를 다룬 장면을 연상하기 십상이다. 하긴 이 영화도 청춘 영화에 속하기도 하지만 청춘의 다른 한 면을 다루었으며 잔혹한 청춘보다 더 잔혹한 내용을 다루었고 살인과 죽음에 이르렀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아래의 모든 것들을 다 햇볕으로 비출 수는 없고 햇볕이 비쳐 들 수 없는 곳에 있는 어떤 것들은 천천히 성장하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자태를 드러냈는데 그 속에 비친 모퉁이 세상은 점점 암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쪽빛 하늘’을 본 영화팬들은 영화 ‘기항지’를 떠올리게 된다. 두 편 모두 홍콩의 하층 세계를 담았으며 모두 핏빛 황혼의 풍경을 담았고 절망 속의 몸부림과 몸부림 속에서 절망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두 영화는 다

른 점도 눈에 띈다. 

 

이 이야기는 비주류에 속하며 범죄수사 영화 이외에 예술 영화(劇情片)와 문예 영화(文藝片)의 골격에 더 가깝다. 경찰 안젤라(Angela)는 신혼 생활을 하고 있는 예비 맘이고 남편과 함께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다. 중학교 여학생 코니(Connie)의 부모가 살해됐지만 수사는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안젤라가 명을 받고 이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부모를 잃은 그 여학생을 잘 위로해주려 애썼으나 그녀는 범행이 자신의 소행임을 스스로 인정한다. 감추고 또 감춰야 할 서스펜스가 처음부터 그 결과를 드러내게 되었다. 영화가 진정으로 탐색할 내용은 이 모든 것을 일으킨 원인과 동기이지 누가 살인을 했는지 파헤치는 과정이 아니었다. 

 

‘쪽빛 하늘’은 여러 가지 사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학교폭력, 최하층 사람들이 망하여 서로 흩어져 생활하는 문제, 중산층의 막연한 생활, 의지할 데가 없는 인심 등이 담겨 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맞이한 중학생들은 겉보기에는 질서가 잘 잡혀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잔혹한 등급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남을 마음대로 부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졌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갈수록 무거워진 저기압과도 같은 모습이다. 코니의 가정은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최하층의 상징이다. 코니의 주요 생활 장소인 학교와 가정 두 곳은 차갑고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며 그녀는 이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결국 살인을 저질렀다. 복수를 위한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출구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가 되었으니 얼마나 잔혹하고 냉혹한 아이러니인가? 이에 비해 코니가 대표하는 것이 ‘혼란’과 ‘무질서’라면 형사인 안젤라는 체면과 질서의 다른 한 면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적어도 맨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햇볕과 흰 구름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가 되었다. 코니의 비극은 사회화되고 공공화 된 비극이다. 미성년자에 불과한 그녀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생활하고 있던 두 친구는 모두 절망에 처하게 되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인물들이다. 반면 안젤라의 비극은 더 개인적이고 개체화 된 처지에 놓여 있어 누구한테 이야기할 수도 없는 대목이다. 보기에는 서로 다른 비극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한 곳에 놓고 보면 서로 비슷하고 반사되어 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세속적인 잣대로 보면 코니의 삶은 보통 삶이 아니다. 그녀는 비뚤어진 부모와 생활하고 있었고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하지만 안젤라의 생활은 정상적이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모습이다. 이로 미뤄 보면, 중학교 여학생이 범인으로 전락하는 것에는 어떠한 타당성이 부여 된다. 하지만 안젤라는 줄곧 순탄한 삶을 살아왔고 하나하나의 단계를 제대로 거쳐온 사람이지만 상대를 통해 자신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었지만 꾹꾹 눌러두었던 충동적인 욕망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여러 가지가 뒤엉킨 증오와 절망 그리고 단절감에 속한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차에 앉아 아버지가 건네준 에그타르트를 보고 그녀는 도리어 미친 듯이 그것을 내리친다. 아버지는 애처로운 울음 소리를 터뜨렸다. 구름 한 점 없이 개인 파란 하늘 아래 차디찬 빗방울이 가슴 속에 떨어져 맺혔다. 그 순간 코니와 안젤라는 거의 오버랩 되어 나타난다. 안젤라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그가 체포한 코니도 누군가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자유생활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아래에 펼쳐진 생활을 살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음산한 비를 피하기 위해서는 생사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 같다.

 


‘쪽빛 하늘’ 중 질병은 가장 뚜렷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코니의 어머니는 환자이며 본인도 마찬가지로 심장병을 앓아 오면서 성장해왔다. 안젤라의 아버지도 알츠하이머병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질병을 앓고 있어 사람들마다 다 환자인데 하늘은 이것을 알고 있을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병에 대해 누가 알고 있는지, 누가 진단해줄 것인지, 최종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안젤라의 아버지인 치매 노인 본인이 의사이다. 그가 진료실에 앉아서 치매에 시달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뒤에는 인심인술(仁心仁術)이라는 글이 걸려 있다. 영화의 시작을 장식한 이 장면은 전편을 관통하는 냉랭한 키워드와 분위기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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