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이립(三十而立), 하이난 개혁의 새로운 출발

하이난경제특구의 설립 3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어떻게 ‘삼십이립’의 책임을 짊어질 것인지, 어떻게 경제특구의 품질과 의미를 높일 것인지, 또 어떻게 업그레이드된 국제관광 섬을 만들 것인지 등의 문제가 이 시대 하이난지역의 새로운 명제로 떠올랐다.
김지영 bnu0827@gmail.com | 2018-04-06 16: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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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글/ 가오훙(高虹)]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보아오(博鳌)아시아포럼 주최국인 중국은 2018년 포럼 총회에서 ‘개혁 재출발’이라는 세션을 따로 마련됐다. 지난날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찬 발걸음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중국의 개혁개방의 화두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40년 격동의 세월이 흘러 중국은 개혁개방이라는 운명 개척의 결정적인 열쇠로 중국 특색의 비약적인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중국 최남단에 위치한 하이난지역은 30년간 지속적으로 개혁개방을 위한 노력을 해왔으며 변방 작은 섬에서 국제관광 섬으로 탈바꿈해 당대 중국 개혁개방의 한 축소판이 됐다. 

 

개혁개방으로 태어나 개혁개방으로 인해 번영하게 되었다. ‘삼십이립’의 하이난은 이제 새로운 발전의 출발점에 섰다. 

 

계속 남쪽으로 향하다 

 

1988년 4월 황이밍(黃一鳴)은 하이커우(海口)시 하이푸(海府)로에 위치한 하이난행정구위원회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노동자 2명이 삼륜차를 타고 천천히 구 행정청사 마당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삼륜차에는 큰 간판이 실려있었는데 ‘하이난성인민정부’라고 큰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황이밍은 더 생각하지 않고 곧장 구청 안에 위치한 사무실로 돌아가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삼륜차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당시 곧 하이난성정부 사무처가 될 곳의 대문 앞이었다. 흰 셔츠 차림의 스태프 한 명이 문에 기대둔 대나무 사다리를 밟고 다른 두 사람한테서 붉은 비단을 건네 받고 ‘하이난성인민정부’라는 글씨가 새겨진 현판을 벽에 걸어 놓았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황이밍은 셔터를 눌러 이 소중한 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찍은 다음날인 1988년 4월 26일, 당시 광둥(廣東)성 하이난행정구정부 정문에 걸려 있던 붉은 비단이 벗겨지면서 ‘중국공산당 하이난성위원회’, ‘하이난성인민정부’가 공식 출범하였으며 하이난 지역은 새로운 역사 단계에 들어섰다. 

 

실제 하이난섬의 개발은 개혁개방 초기부터 중앙정부의 관심을 끌었다. 

 

하이난은 해상 실크로드의 요충지에 속한다. 역사적으로 피와 불의 세례를 거쳐 온갖 시련을 이겨 냈고 건국 직전에는 중국 남대문의 국방 전초 기지로서 자원이 풍부하지만 가난하고 폐쇄적인 지역에 속했다.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1978년 중공 11기 3중전회 이후에 중앙에서는 대내 개혁과 대외 개방을 추진할 것을 결정했다. 개혁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샤먼(廈門), 산터우(汕頭) 등 4곳에 경제특구 를 잇따라 설치했다.
하이난지역 개발도 이 무렵부터 시작됐다. 국무원은 1980년 하이난섬 문제를 둘러싸고 좌담회를 열었으며 ‘하이난다오 문제 좌담회 기요(紀要)’를 만들었다. 

 

 

국무원은 1983년 2, 3월 사이에 하이난섬 개발 문제를 연구하는 세미나를 3차례 열고 ‘하이난섬 개발 문제를 가속화하는 방안에 대한 토론 기요’를 만들어 ‘대외 개발을 실행해 하이난을 개발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했다. 이때부터 하이난의 개방과 발전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저희들은 하이난다오(海南島) 경제특구라는 더 큰 특구를 만들려고 합니다. 하이난다오를 잘 발전시키는 것은 굉장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입니다.” 1987년 6월 12일 덩샤오핑(鄧小平)은 중대한 결정을 처음으로 세상에 발표했다. 

 

 

10개월이 지난 1988년 4월 13일 제7기 전국인민대표대회 1차 회의에서 하이난성을 건립하고 전국 최대 규모의 경제특구를 준공할 것을 결정했다. 이로써 하이난성은 광둥성의 한 행정구에서 독립해 중국의 제일 젊은 성(省)이 되었고, 폐쇄적이고 낙후된 국방 전선에서 개혁개방의 최전선이 되었다.

 

 

하이난은 1980년대 중 후반에 이르러 지식인과 청년 학생들이 선망하는 지역으로 성장했으며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 치웅저우(瓊州)해협을 넘어 하이난에 몰려들었다. 이런 개혁개방의 이례적인 현상은 훗날 ‘10만 명 인재 하이난에 진출’이라는 수식어로 불렸으며, 이들에게는 ‘촹하이런(闖海人), 바다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공통된 이름이 붙게 되었다. 

 

베이징 청년 친지옌궈(秦建國)가 하이난에 도착하던 그날, 하늘에는 흰 구름이 가득했고 햇빛이 밝았다. 그는 수십 개의 라면과 졸업장을 들고 몇 날 며칠을 들여 하이난의 뜨거운 토양을 밟게 되었다. 두꺼운 겨울 옷을 입고 출발했던 그는 기차, 버스, 배를 전전하며 오는 도중에 점차 하나씩 겉옷을 벗어 버렸다. 마치 무슨 의식과도 같았다. 그는 ‘누가 자신의 집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누가 세상을 떠돌고 싶어하겠는가, 자신의 길을 걷기 위해서일 뿐, 파종을 했으면 새싹이 돋아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라는 노래가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1988년 전후로 ‘10만 명의 인재가 하이난에 집결’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는 하이난섬의 역대 인구 이동과 완전히 달랐다.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하이난은 ‘특구보다 더 특별한 곳’이었고 꿈과 희망이 있는 곳이었다. 

 

‘산쟈오츠(三角池)’라는 이름은 당시 하이난 지역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이 이름보다 더 잘 알려진 지명이 없을 정도였다. 

 

이곳은 하이슈(海秀)로, 붜아이(博愛)로, 하이푸로 3차선 교차로에 위치해 있으며, 하이난성위원회, 성정부와 잇닿아 있고 당시의 인력교류센터와 불과 600, 700미터 떨어져 있었다. 인재교류센터의 장소가 한정돼 있어 하이커우 동호(东湖)일대가 점차 자발적으로 구직정보 교류장소로 변해갔다. 취업 준비생들이 삼각지 공원 담장에 글을 붙이고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가 하면 어둠이 깔리면 그곳에 모여 시편을 낭송하고 큰 소리로 노래까지 불렀다. 

 

지금 항구도시 재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로 변한 이 지역은 산쟈오츠 지구 블록(1기) 복합환경정비사업으로 도시의 추억을 되살리고 시정의 활력을 되찾아 가고 있다. 또 이곳에 ‘촹하이챵(闖海墻, 바다를 건너는 담장)’을 설치해 바다 문화 역사를 지닌 이색적인 기억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열정으로 끓어 넘치던 당시를 기억하도록 하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바다를 건너는 대군 중 나중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들은 ‘만통육군자(萬通六君子)’이다. 왕궁쵄(王功權), 펑룬(馮侖), 왕치푸(王啟富), 이샤오디(易小迪), 류쥔(劉軍), 판스거(潘石屹) 등 6명의 젊은이들이 3만 위안을 모아 하이난에서 화려한 모험을 펼쳤다. 1993년 완퉁(万通)그룹을 창립할 때까지 이들은 이미 3,000만 위안을 벌었다. 하이난에서 부동산사업을 시작한 뒤 완퉁 6군자 중 펑룬, 이샤오디, 판스거는 중국 부동산업계의 큰손이 됐고 왕궁쵄은 나중에 유명한 투자가로 변신했다.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촹하이런’ 정신은 대특구 정신의 중요한 요소이다.

 

“대담하게 도전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특구의 정신에 부합되며 하이난특구 건설 중 점차 양성되고 연마된 사상이며 정신적인 풍모입니다. 이는 특구 사람들의 품격을 보여주고 특구 사람들의 역량을 집결하며 특구 사람들을 격려하는 정신적인 자산입니다.”  

 

하이난성위원회 당사 연구실 마오즈화(毛志華) 주임은 이렇게 말했다. 특구 정신은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앞장서 나가는 ‘창시’ 정신이며 성실하게 실천해나가고 규칙을 존중하며 객관적으로 사물의 내재적 규율을 탐구해 나가는 정신이다. 또 전체적인 국면을 살피고 책임을 지고 나아가는 봉사정신이며 도전하고 분발해나가며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승부사 정신’이다. 

 

30년간 용감하게 도전하고 실행에 옮겨가며 꾸준히 해왔던 특구 정신으로 하이난특구는 괄목할 만한 정신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6월 하이난성 서기 류츠구이(劉賜貴)는 하이난연구원, 중국(하이난)개혁발전연구원의 전문가들과 좌담회를 열었을 때 “용감하게 도전하고 실행에 옮기며 꾸준히 노력하는 특구 정신을 잘 발휘해 기회를 잡고 기회를 만들면서 전국 최대 경제특구로 발전해 갔고 미래의 전략적 지위와 역사적인 사명을 확립해나갔다”고 말했다. 

 

이곳에 도전의 땀방울을 남겼다 

 

2018년 CCTV 춘완(春晚, 설 맞이 특별공연) 싼야(三亞)지역 공연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CCTV 춘완 기획자인 주하이(朱海)는 싼야지역 공연 첫 번째 방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실제로 2018년 CCTV 춘완을 본 시청자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하이난에서 지내 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 수십 년 전 하이난에 온 주하이는 적막한 밤 백사장을 달리며 바다를 향해 “들리는가? 바다여, 들리는가”하고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하이난에서 도전해 온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주하이의 눈앞을 스쳤다. 

 

성급 경제특구를 운영하려고 보니 당시 참조할만한 경험이 없었다. 하이난은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너야 했고’ 새 길을 개척해 나가야만 했다. 성급 행정지역으로 독립한 뒤 하이난은 혁신적인 개혁을 대대적으로 추진해 전국 개혁의 시험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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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체제개혁 면에서 하이난은 앞장 섰다. 1988년 하이난성은 성급 기구 개혁 시범을 실시해 성에서 직접적으로 현(縣)을 관리하는 체계를 실행하고 ‘작은 정부, 대 사회’ 관리 구조를 모색해 행정 효율을 극대화 했다. 1991년에는 국민 소유제 기업 주주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해 기업 주식제 개혁을 본격 추진했다. 1993년에는 앞장서 ‘먼저 승차하고 나중에 티켓을 끊는’ 기업등록제도 개혁과 자동차유류할증료 개혁을 선행했다. 2004년에는 농업 세금을 없앴고 2005년에는 전국 다른 지역보다 1년 먼저 농업 특산세를 없앴다. 

 

 

발전 경로 측면에서는 ‘일성양지(一省兩地, 하나의 성, 두 개의 지역)’, ‘국제관광 섬 건설’, ‘공급 측면 구조 개혁 추진’, ‘12개 중점 산업’에서 ‘현대화 경제체제 구축’, ‘고품질 성장’으로 발전했다. 하이난성은 꾸준한 탐색을 통해 역동적인 삶의 발전을 도모해 나갔다. 

 

대외 개방 면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1990년 국무원은 외국인이 하이커우나 싼야에서 입국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하이난은 국내 최초로 착지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2000년 국무원의 허가를 거쳐 하이난성은 21개국 관광객에 한하여 비자면제정책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1993년 양푸(洋浦) 경제개발구가 정식으로 문을 닫았는데 이를 두고 ‘중국 개혁개방 바로미터’라고 한다. 2003년부터 항공운수권 개방 시험을 실시하고, 제3, 4, 5 항공운송업무를 개방하였다. 2001년에는 보아오아세아포럼 창립총회를 열고 충하이(瓊海)시 보아오지역을 영구적인 포럼 개최장소로 정했다. 2009년 12월 31일 국무원은 ‘하이난 국제관광 섬 건설 발전을 추진할 데 관한 약간의 건의’를 발표하여 하이난성에 대한 26개국 무비자 입국정책을 비준하였다. 현재 무비자 입국 대상국은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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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개혁 조치는 당시의 사상과 체제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전국 관련 분야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왔고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이난에서 시작된 과학기술실업회사인 하이난리성(海南立昇)은 하이커우에 세계 최대의 초대형 필터 생산기지를 갖췄고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고성능 필터 개발업체에 속하며 산업화 생산의 초대형 필터 및 모듈 공급업체로 성장했다. 이 회사의 상품과 서비스는 세계 40여 개국과 지역에 진출했다. 

 

“하이난에 온 이래 후회한 적이 없어요!” 하이난리성 정수과학기술실업유한회사 회장인 천량강(陳良剛)은 이렇게 속내를 드러냈다. “만약 도시를 바꿨다면 지금의 하이난성이 없었을 수도 있어요. 하이난에 왔고 이 곳을 선

택하면서 새로운 삶의 시작됐습니다. 이곳은 저의 도전의 땀방울이 있는 곳입니다.” 

 

하이난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할 때 중앙정부가 이 지역에 대한 고도의 중시와 관심을 기울였다.  

 

“저는 바다에 나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바다에 나가죠.” 탄먼 (潭門)지역의 많은 어부들의 집에는 2013년 시진핑 총서기가 이 지역을 시찰할 때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이 한 장씩 있다. 

 

2013년 4월 국가주석에 취임한지 20여일이 되던 시점에 시진핑 국가주석은 보아오 아시아포럼 연례 총회에 참석해 대외에 “중국은 개혁개방을 견지하고 동요하지 않겠다!”, “중국개방의 대문은 닫히지 않는다!” 등의 연설을 발표했다. 그 후 하이난성을 시찰할 때 시진핑 주석은 전국 최대의 경제특구를 건설하라고 했던 덩 샤오핑의 숙원을 되새길 것을 강조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개혁개방은 당대 중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열쇠이자 ‘2개의 100년’ 분투 목표를 결정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건설적인 조언과 당부를 기억하고 구름 층과 안개를 뚫고 나가야 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여정에 있어 하이난 경제특구의 사명은 끝이 아니다. 앞으로 더 높고 무거운 임무가 주어질 것이고 무거운 책임을 뒤따를 것이다. 

 

2017년 4월 하이난성위원회 서기 류츠구이는 취임 후 성위원회 상무(확대)회의를 열어 시진핑 총서기가 2013년 하이난 시찰 당시에 했던 중요한 담화문 내용을 학습할 것을 호소했다. 이어 제1기 하이난성위원회 ‘백일 대토론 및 행동’이 전성 범위 내에서 전개되었다. 시진핑 주석이 하이난 시찰 당시 했던 중요한 담화문에 담긴 정신을 학습하고 관철하며 아름답고 새로운 하이난을 건설할 데 관한 주제는 이 지역의 새로운 개혁개방의 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제19차 당대회 폐막 직후 하이난성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는 ‘당의 19차 당대회 정신을 학습하고 관철할 데 대한 중공 하이난성위원회의 건의’를 발표해 33개 학습 선전 관철 의견을 내놓았다. 

 

개혁개방의 귀중한 표본 

 

하이난 경제특구의 개혁개방과 건설 발전과정은 늘 주목을 받았지만 그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초창기에는 외국기업이 장기 임대 방식으로 토지의 사용권과 관리권을 취득해 투자한 후 투자수익으로 개발 원가를 상환하는 ‘양포모식(洋浦模式)’을 개척했다. 하지만 이 조치가 ‘양포풍파(洋浦風波)’로 번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1992년 양푸 지역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보세구역 정책을 누리는 국가급 개발구가 됐다. 

 

2004년부터 국무원의 지원을 받아 하이난성위원회와 성정부는 양푸지역 개발 주체에 대해 2차례 재편성을 실시했으며 2007년 정부 주도 개발이라는 개발방식의 중대한 전환을 실현했다. 2008년 11월부터 양푸 보세항구는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갔으며 이는 중국에서 운행에 들어간 네 번째 보세항구에 속한다. 여러 체계적인 메커니즘이 안정되자 양푸지역의 산업 발전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다. 

 

양푸경제개발구관리위원회 장레이(張磊) 주임은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양푸의 주도 산업은 이미 형성돼 있으며 집약적, 클러스터, 친환경, 단지화(園區化), 하이테크 기술의 발전 방향을 앞세워 새로운 패러다임의 산업 성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립 이래 고정자산 투자 1,100억 위안을 달성했는데, 그 중 생산성 투자가 890억 위안, 석유정제 가공 600억 위안 규모의 산업 클러스터, 석유비축, 펄프 및 종이류 일체화의 200억 위안 규모의 산업 클러스터 2개, 항만 물류, 농산물 가공, 현대 캐피탈 등 10억 위안 규모의 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됐다.” 

 

일부 중점분야에서 개혁이 더욱 진전되는 것은 최근 하이난 체제개혁의 중요한 돌파구가 되고 있다. 

 

2015년 6월 5일 시진핑 총서기 주재로 열린 중앙 집중 개혁 영도소조 제13차 회의에서 하이난성에 먼저 전국적으로 ‘다자 통합’ 개혁 시범구를 만들데 대해 동의했으며 전국적으로 참조할 가치가 있는 좋은 개혁의 시범을 보여줘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을 희망했다. 

 

중앙정부 개혁 심화의 중대한 임무를 실행함에 있어서 ‘다규합일(多規合一, 많은 계획을 하나로 통합함)’을 실시해 ‘서로 싸우고 협력하기 어려우며 각자의 정책을 펼치고 자원을 낭비하는 문제’ 등을 해결함으로써 규범적인 발전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2017년 6월 하이난은 전국 유일의 성급계획위원회를 발족하여 전 성 공간에 대한 총체적 계획을 만들고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하이난성의 마스터 플랜’에 대해 끝까지 추진할 데 대한 청사진을 내놨다.
하이난성기획위원회 딩스쟝(丁式江) 주임은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하이난의 ‘다규합일’ 개혁 시범구는 2015년 가동된 이후에 총괄협조 주체 기능에 대한 계획, 생태보호 레드 계획, 도시 및 농촌 체제계획, 토지 활용 마스터 플랜, 임지보호 이용 계획, 해양 기능 기획 등 6종의 공간 계획을 수립한 기초에서 ‘하이난성 마스터 플랜(공간류 2015-2030)을 만들어 2017년 11월 국무원의 비준을 받았다. 이는 전 성 건설에 대한 기획 설계도이며 통일적인 공간 기획 시스템의 구축을 의미한다. 

 

하이난성에서 착안한 중대 개혁 기획은 오늘날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중앙 전면 심화 개혁 영도소조에 의해 ‘전성 통일 공간 기획 체계를 수립하는데 한 걸음 나아간 것이고 경험을 모색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공산당 중앙판공청, 국무원 판공청은 2017년 1월 9일에 ‘성급 공간 기획 시범 방안’을 발표해 하이난에서 우선 시행한 기초에서 지린(吉林), 저장(浙江), 푸젠(福建), 쟝시(江西), 허난(河南), 광시(廣西), 구이저우(貴州) 등 7개 성에 성급 공간 기획 시범 구역을 만들어 성급 ‘다규합일’ 개혁을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봄철 하이난은 붉은 목면화(木棉花)로 물들어 있다. 매년 2, 3월 창쟝(昌江)에 목면화를 보러 가는 것이 이미 하이난 서부 관광 코스로 자리잡았다. 

 

전국적으로 처음으로 성급 ‘다규합일’ 개혁의 계기를 마련한 하이난은 섬 전체를 하나의 큰 관광지로 기획하고 건설했다. 2년여 동안 하이난은 ‘점, 선, 면’에서 착수하여 전 지역범위의 관광 시범 도시를 전면 가동하고, 경험을 살려 전국적인 시범지역을 건설하여 하이난성 관광 활성화를 효과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는 중국 대중 관광 시대의 흐름이자 하이난에서 국제관광 섬을 건설한 이래 경험 쌓기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2009년 12월 31일, ‘하이난 국제관광 섬 건설 발전에 관한 국무원의 의견(이하 의견이라 칭함)’이 발표되었는데, 이는 하이난 국제관광 섬 건설이 본격적인 국가전략으로 떠올랐다는 의미이다. 

 

이는 성 경제특구 건설에 이어 중앙정부가 하이난에 가장 큰 폭의 지원과 가장 범위가 넓은 지원을 한 경우이다. ‘의견’은 하이난의 발전목표를 2020년까지 관광서비스 시설과 경영관리 및 서비스 수준을 국제적인 여행 서비스 표준에 도달하게 하고 세계 일류 리조트 휴양지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역사의 연륜으로 발전의 궤적을 쓰다. 

 

2014년 3월 하이난성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중앙 정법위원회는 하이난을 전국 첫 번째 6개 사법체계 개혁 시범 성 중 하나로 정할 데 대해 비준하였다.

 

“이번 사법개혁의 목적은 경쟁을 통해 능력자들을 등용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며 법관 검사 직업의 위상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하이난성 고급인민법원 원장인 둥즈량(董治良)은 하이난성에서 직접 관리하는 현시의 실정과 법원 상황에 따라 전 성 3급 인민법원에서 동시에 개혁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해 12월 성위원회 정법위원회는 전성범위 내에서 ‘사법개혁’을 할 것을 호소하였고 그 후 2017년 10월까지 59개의 개혁 임무를 완수했다. 중앙 정법위원회는 하이난의 사법개혁이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고인민법원장 저우챵(周強)은 두 차례에 거쳐 하이난 인민법원의 사법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하이난 인민법원의 개혁은 전국적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시범구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2015년 12월 29일, 현대 기업 제도의 요구에 따라 새롭게 발족한 하이난 농업 개간 투자 지주(控股)그룹의 설립은 기존의 농지 개간 총국과 농지 개간그룹 사이에 서로 제약하고 자원 통합이 어려웠던 점, 정책 결정 효율이 별로 높지 않은 등의 문제를 해결했다. 하이난 농지 개간 성격은 정부, 사회, 회사 혼합체로부터 완전히 시장 주도의 방식으로 바뀌어 체제의 근본적인 전환을 실현하였고 전국 농지 개간 시스템 개혁에 경험을 제공해 주었다.
의료관광은 하이난성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브랜드로 성장했으며 ‘궈지우탸오(國九條, 중국 국무원이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개혁개방을 하고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아홉 가지 의견)’ 우대정책의 충하이 보아 보성 국제 의료 관광 선행구(先行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3월 31일 일선 행구에 위치한 보아보슈퍼의료원이 개원했고 임상의학분야의 석학과 학과 리더들이 이끄는 국제전염병의학센터, 국제 간장, 담낭, 췌장 종양센터 등 12개 팀이 입주했다. 

 

개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방관복(放管服, 정부기능 간소화, 권력이양 및 서비스 최적화의 줄임 말)’과 상사제도(商事制度, 법인등록제도) 개혁을 지속적으로 심화시켜, 단지의 ‘심사 비준 간소화’ 개혁 시범을 전개하여 전 성 내 ‘한 장 심사 비준 네트워크(一張審批網)’를 조성하였다. 

 

한편, 성 정부 다규합일의 방침 하에 하이난 생태소프트웨어개발원 등 단지는 통일적인 기획 심사로 단일 사업 심사를 대체해 입주기업에 대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심사 비준 간소화’를 실행하고 있다. 다른 한 방면으로 성 행정정보데이터시스템은 500여 개 각 부처별로 정보시스템을 도입하였고 정보시스템 공유율이 99.46%에 달했다. ‘예청스민윈(椰城市民云)’등 빅 데이터를 응용할 수 있는 앱을 통해 시민들은 직접 만나지 않고도 정무 서비스와 심사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용기와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여러 전환점들이 개혁개방을 끝까지 추진할 수 있는 역사적인 원동력이 되었고 밑그림이 되었다. 

 

2017년 4월 하이난성 7차 당대표대회 보고에서 하이난의 미래 발전방향이 발표됐다. 그 내용에는 ‘국제관광 섬 건설을 총체적인 계획으로 삼고 3대 우세를 발휘하는 것’, ‘생태 환경 정비를 추진하고 생태환경의 질을 개선하는 것’, ‘개혁개방을 깊이 있게 추진하고 경제특구 체제의 새로운 우세를 확립하는 것’, ‘높은 수준의 발전으로 관광업을 선도로 하는 현대적인 서비스업을 발전시키는 것’, ‘열대 특색의 고효율 농업 브랜드를 만드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상의 내용에는 꿈을 키워 가며 높은 품질의 발전을 이끌어 내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2018년 2월 2일 류츠구이는 외교부 하이난 세계 프로모션 행사에서 “경제특구 설립 30년 이래, 특히 최근 5년간 하이난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고 이런 성과와 변화들은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한 당 중앙의 정확한 지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며,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길은 밝은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경제 글로벌화는 막을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고 개혁개방은 중국, 특히 하이난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조치라는 것을 보여줍니다”라고 말했다. 

 

전면적으로 ‘일대일로(一带一路)’에 융합되다 

 

1997년 7월 남해 완쵄(萬泉) 호숫가 주변에서 중요한 행사가 열렸다. 

 

하이난 보아오지역에서 다년간의 투자사업을 벌려온 쟝샤오숭(蔣曉松)은 친구인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 전 총리 부부, 호크 전 호주 총리,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등을 초대해 새로 오픈 한 보아오 향촌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겼다. 하얀 골프공이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모습과 함께 보아오아시아포럼에 대한 구상도 점차 구체화되었다. 

 

2001년 2월 27일, 25개 아시아 국가와 호주가 발기 설립한 NGO 보아오아시아포럼이 공식 출범했으며 보아오지역은 영구적인 포럼 개최지가 되었다. 17년 동안 보아오아시아포럼이라는 거대한 ‘마이크’는 아시아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세계에 전달했다. 

 

19차 당대회 보고에서는 “인류 운명공동체를 구축하고 지속적인 평화와 보편적 안전, 공동 번영, 개방과 포용을 실현해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두 차례 보아오아시아포럼 연례 총회에서 인류의 운명공동체 사상의 깊이 있는 의미와 실현 경로를 심층적으로 서술했다. 한 번은 2013년이었고 다른 한번은 2015년이었다. 

 

하이난성 외사교민업무판공실 왕성(王勝) 주임은 이 포럼을 ‘일대일로’ 건설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 ‘일대일로 국제협력포럼’과 연결시켜 서로 어울리고 공동으로 ‘일대일로’ 건설을 추진하며 새로운 국제 관계 구축과 인류 운명공동체 구축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5년부터 하이난은 보아오아시아포럼의 이점을 살려 중국-아세안 지역의 시장 대화 채널을 구축하고, 매년 일련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하이난과 ‘일대일로’ 국가, 특히 주변 국가와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2017년 대화 회의에서 류츠구이는 하이난을 대표해 주변지역에 실무합작의 성과를 포럼 취지에만 반영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 프로젝트로 전환하여 실질적인 성과를 올릴 것을 호소했다. 또 아세안 각 성시와 공동으로 ‘남해 관광 경제 협력권’을 조성할 것을 다짐했다. 그는 “끊임없는 개방 협력을 통해 하이난을 인류의 운명공동체를 구축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중요한 창구로 건설할 것”을 기대했다. 

 

진실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이다. 

 

2017년 7월 하이난은 필리핀 바라망성, 인도네시아 발리지역과 우호협약을 맺었다. 하이난의 여러 시는 이미 54개의 국외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난하이 관광경제 협력을 위한 기반을 다진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2016년 하이난과 ‘일대일로’ 연안 국가의 수출입 무역은 504억 위안으로 전 성 수출입 무역액의 67.3%를 차지했다. 

 

지난 몇 년간 하이지오(海膠)그룹, 하이난광업 등 여러 기업들이 우대정책, 자원 우세를 앞세워 해외 투자, 해외 인수합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을 해외로 확장하여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함과 동시에 현지 발전을 위한 수익과 기회를 창출했다. 

 

‘대외로 나아간 것’은 기업뿐만이 아니다. 하이난의 첨단기술도 해외로 널리 퍼져 나갔다. 

 

예전에 하이난 열대농업 전문가들이 몰디브에 가 야자수 성장을 위한 기술지도를 해주었고 몰디브에 브론티스파 롱기시마(Brontispa longissima 椰心葉甲, 야자나무에 사는 딱정벌레의 일종) 천적 공장과 야자해충 합동실험실을 설치해 브론티스파 롱기시마 천적 인공번식과 실내 사육 기술 문제를 해결했다. 

 

하이난성은 2016년 9월 이후 4차례에 걸쳐 캄보디아 의료팀을 파견해 백내장 재활 수술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는데 누적 진료 환자는 2,500명, 백내장 수술을 받은 사람은 543명이었고 수술 성공률 100%를 기록했다.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현대화된 교통 인프라, 편리한 통관 서비스, 신속한 성장 수요 등은 하이난의 크루즈경제 발전을 살릴 수 있는 장점이다. 현재 싼야국제크루즈항구는 2기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15만 톤 급 크루즈 정박 위치가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으며 2개의 22만5,000 톤 급 부두가 완공되면 시설물을 설치하고 장비를 공급한 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이난 국제관광 섬 건설에서 가장 큰 기여를 했고, 가장 광범위한 정책 중 하나로 꼽히는 국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섬 내 면세정책은 2011년 4월 20일 실행에 옮긴 이후로 하이난성의 ‘골드 명함’이 되었다. 하이커우관세청에 따르면 2018년 1월 말까지 싼야, 하이커우 두 곳 면세점의 누적 매출액은 314억8,000만 위안, 쇼핑 건수는 4,027만2,000여 건이며 쇼핑객은 연인원 1,000만7,000명에 달했다.
2018년 3월 23일 마드리드 시간으로 저녁 9시 50분,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공항에서는 난하이 에어라인 첫 운항을 알리는 HU7983 비행기의 운항이 이루어졌다. 하이난항공은 2017년 말까지 ‘일대일로’ 주변국가와 지역을 잇는 항공노선 100여 개를 개통하고 ‘일대일로’ 일대를 아우르는 경제, 인문교류에 필요한 ‘공중 실크로드’의 시대를 개척했다.  

 

하이난항공은 하이난지역의 최대 기업이자 본토에서 육성해 성장한 우수기업이며 하이난지역을 대표하는 명함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기업이다.

 

“개혁개방의 깃발을 끝까지 추켜들어야 합니다!” 선샤오밍(沈晓明)은 “개방으로 개혁을 추진하여 하이난성이 중국 서비스산업의 개방적인 창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이난은 개방 전략에서 국가의 ‘일대일로’ 전략의 대세에 잘 융합되어 ‘남해 경제 협력권’을 구축하고 하이난지역과 인근 국가와의 공중, 해상에서의 상호 연결을 강화하였다. 2017년부터 3년간 100개의 국제선을 개통하였고 중점 산업의 국제공조를 심화시켜 국제화 수준을 상승시켰다. 

 

실행을 통해 새로운 개혁개방을 추진하다  

 

세상만사 변화가 많기 마련이다. 격동의 세월 속에서 하이난은 난관에 봉착했고 어려운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지만 한번도 전진할 동력을 잃지 않았다. 

 

경제특구 건설 3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하이난은 어떻게 ‘삼십이립’의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어떻게 경제특구의 질량과 의미를 향상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업그레이드된 국제관광 섬을 만들 수 있을까? 이는 이 시대 하이난 건설의 명제로 떠올랐다. 

 

개혁개방은 하이난 발전의 관건이다. 중국공산당 중앙 총서기인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3년 하이난성을 시찰하면서 이 점을 강조했다.

 

“하이난은 개혁개방으로 태어났고 개혁개방으로 인해 번영하게 되었습니다.” 류츠구이는 ‘3갱(三更)’이라는 말로 미래의 하이난 개혁개방의 길을 설명하였다. 하이난은 시진핑 주석의 새로운 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과 당의 19차 당대회 정신을 잘 배우고 하이난 시찰 중 시진핑 총서기의 중요한 연설 내용을 기초로 새로운 개혁개방을 추진해 보다 효과적인 개혁 조치로 새로운 시대 더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국제적인 경제특구로 변모해야 한다. 

 

하이난의 새로운 개혁 로드맵 설계에 따라 류츠구이는 네 가지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다. 하나는 새로운 개혁개방을 위한 체계적인 방법을 강구해 서비스 국가전략을 위한 서비스의 높이에 서서 대외개방, 생태문명, 산업발전 등의 체계적인 혁신을 제시했다. 두 번째는 ‘다규합일’ 개혁을 심화시켜 ‘하이난성 마스터 플랜’을 중심으로 전 성을 대도시, 대자연 풍경구로 묶어 통일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셋째로 새로운 지역발전 종합평가 방법을 적용해 올해부터 성의 2/3 지역에 대한 GDP 심사를 취소하고 생태보호, 빈곤 극복, ‘5망(五網)’ 인프라와 ‘아름다운 하이난 백 개 진, 천 개 마을’ 건설 등을 통해 ‘유(唯) GDP사상’과 ‘부동산의 존증’을 극복해 질 높은 발전을 추진한다. 네 번째는 칼날은 안으로 향하게 하고 작은 것을 희생하고 전체를 보전시키는 용기로 행정 인허가제도 개혁을 가속화하고 행정구역과 행정체제 국유화를 가속화하고, 경제 사회 발전의 동력과 활력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과거의 일방적인 개혁 방식과 비교했을 때 새로운 시대 하이난의 개혁개방은 국가 전체의 대외개방에 걸맞으며 국가전략에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하이난 개방의 일거수일투족은 시험장이 아니라 국가 개방의 선두 작용을 하고 있다. 

 

현재 하이난은 최대 경제특구로서 경제개방 면에서 일부 섬 경제권과 국내에서 개방도가 높은 성에 비해 격차가 큰 편이다. 

 

뤼융 하이난성 상무청장은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단계에서 무역 혁신 발전 시범구에 대한 서비스를 추진하고 하이난 서비스 무역의 전면적인 발전을 심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6년 2월 하이난성은 국무원으로부터 서비스 무역 혁신 발전을 위한 시범사업을 허가 받았고 시범 실시기간은 2년이며 이 사이에 60여건의 정책 조치를 실시하여 많은 효과를 거두었다. 관광, 교육, 의료 건강, 운송, 문화 체육 오락, 보험, 서비스 아웃소싱, 중의약 등 8개 분야에서 체계적인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정치체계, 감독 기제 등 방면에 대한 탐색을 추진했다. 

 

중국(하이난)개혁발전연구원 츠푸린(遲福林) 원장은 인터뷰에서 30년간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개방 면에서 중대한 돌파가 있었을 때 하이난의 개혁과 발전이 빨리 추진되었다고 전했다. 

 

2018년 2월 2일 외교부에서 개최한 제1회 글로벌 홍보 포럼에서 당시 임시 외교부장을 지냈고 현재 국무원 위원 겸 외교부장을 맡고 있는 왕이(王毅)는 160여개국과 국제기구의 240여 명 외교관을 만나 하이난섬을 소개했으며 “하이난에 오면 더 건강해지고 하이난과 인연이 닿으면 더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하였다. 

 

30년 전 충칭(重慶)대학교를 졸업한 허난 청년 징주(景柱)는 ‘10만 명 인재 하이난 진출’ 대오에 합류하였다. 현재 그는 하이난성 상공회의소 회장, 하이마(海马)그룹 회장을 지내고 있다. 3월의 어느 날, 그는 하이커우 서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징주 회장은 필을 날려 ‘바다의 속삭임 ‘이라는 시를 이렇게 지었다. 

 

“또 30년이 지났다.
우리는 파도가 되어 출렁이고 있다.
수많은 꽃송이가 만개했다.
그 안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그대와
영원한 청춘인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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