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차 한 잔에 깃든 한족‧티베트족(漢藏) 과의 교류
- 티베트 민족대학 자오궈둥(趙國棟) 부교수 인터뷰
- 발행인겸편집인: 강철용 kgmsa@naver.com | 2022-08-05 13:14:20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발행인겸편집인: 강철용]
차를 마시는 것은 티베트 민족의 핵심 생활 방식 중의 하나로 찻잎은 천 년 전에 한족 지역에서 티베트로 전해져 티베트와 각 성, 시의 교류과정에 필수품이 되었다. 차문화의 전파는 또 티베트에 대한 중앙의 배려와 티베트 민중의 생활의 큰 변화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신문사 ‘동서문(東西問)’은 이와 관련해 티베트민족대학 부교수인 자오궈둥 박사를 단독 인터뷰해 ‘수유차 한 잔’에 깃든 한족-티베트족 교류사를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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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3월 윈난(雲南)성 디칭(迪慶) 티베트족 자치주에서 민중들이 가족들과 모여 앉아 수유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촬영/임동(任東) 기자 |
기자: 티베트 속담에 “식량이 없어도 되지만 하루라도 차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차는 티베트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이야기 부탁드린다.
자오궈둥: 티베트 민중들이 말하는 차는 찻잎뿐 아니라 수유차, 단 차 등 차도 포함된다. 차는 티베트 민중들의 일상 식사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수유차는 티베트인 음식문화의 중요한 특색 중의 하나이다.
수유차는 마시기도 하고 먹는 음식이기도 해서 매일 마실 뿐만 아니라 충분히 마셔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몸이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다. 목축민 가정에서는 보통 하루에 네 차례 비교적 정식으로 차를 마신다.
아침 차는 볶은 국수나 떡과 함께 먹어야 하며 충분히 마셔야 하루 동안 힘이 난다. 오차로 차를 마실 때도 참파(糌粑)를 좀 먹어야 한다. 오후 차는 보통 오후 5시쯤에 마시는데 이때가 방목시간이라서 식사와 함께 곁들여 먹는 차에 속한다. 마지막 차는 저녁에 마시는 차로 바쁘게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 난롯가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가족들과의 시간을 즐긴다.
차는 건강의 수호자이다. 티베트문헌인 <한장사집(漢藏史集)>에는 찻잎의 약용 기능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일찍이 찻잎의 약용 가치를 인정하였다. 티베트 의약 명작 <정주본초(晶珠本草)>에 따르면 차는 “뼈에 열이 나는 현상을 치료하고 해열, 열병 치료”의 효능이 있다. 또 칭짱(青藏)고원 사람들은 차를 마시며 비타민C를 보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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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티베트 라싸에서 대중들이 대소사(大昭寺) 광장에서 수유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다. 촬영/이림(李林) 기자 |
현대 티베트 사람들은 여전히 매일 수유차를 마셔야 한다. 날로 풍부해지는 각종 음료는 수유차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찻집은 티베트의 도시와 시골에 널리 퍼져 있다.
기자: 티베트는 역사적으로 찻잎을 생산하지 않았다. 찻잎은 언제 한족 지역에서 티베트로 들어왔으며 티베트 민중들에게 받아들여졌는가? 찻잎이 칭짱고원으로 전파된 것은 어떤 문화적 의의가 있는가?
자오궈둥: 최근 몇 년 동안 티베트 고고학에서 얻은 많은 중대한 성과들은 우리가 찻잎이 티베트에 전해진 시기를 인식하는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했다. 아리고여가목사(阿裏故如甲木寺) 유적의 고고학에서 찻잎의 잔존을 발견하였는데, 그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800여년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 차들은 내륙의 중동부, 남부 지역에서 왔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심지어는 유일한 공급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내륙의 중동부와 남부지방에서 주로 생산되는 찻잎이 일찍부터 칭짱고원의 오지에 도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나라 때 지금의 티베트 라싸와 산시성(陕西省) 시안(西安) 사이에 소통의 당번(唐蕃)고도가 형성됐다. 서기 781년, 상로공(常魯公)이 토번에 행차할 때 티쏭데첸 왕과 찻잎에 관한 대화가 있었는데, 티쏭데첸 왕은 한지에서 온 6종의 명차를 전시하였다.
이는 당시 한지의 찻잎이 토번왕실에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송대에 찻잎이 소수민족 구역 내에서 더욱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교통 옛길의 확장을 촉진시켰고 라싸와 쓰촨(四川) 사이, 라싸와 윈난(雲南) 사이에 많은 도로를 형성시켜 주었다.
티베트 사가 정권 시절 원나라 정부가 설치한 ‘서번차추천사(西蕃茶提舉司)’는 한티베트(漢藏)차 무역을 관리하는 중요한 기구였다. 청나라에서는 차 ‘교장(榷場)’관리 체제를 실행하였고 라싸에 4개의 역(驛)을 설치하여 차와 말 관련 상품의 운송을 주로 관리하였다.
또한 칭짱고원에서 전해지는 ‘신령한 새가 차를 물어와 국왕을 구한 이야기(神鳥銜茶救國王)’와 문성공주가 차를 가지고 티베트에 들어온 것 등 한족 지역과 티베트 지역은 문화의 서사적 요소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는 한티베트 문화교류에서 찻잎의 중요한 지위와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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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6월, 윈난성 푸얼(普洱)시 닝얼(宁洱)현 나커리(那柯里)촌에서 관광객들이 차마고도 유적지를 걸으며 체험하고 있다. 촬영/유염양(劉冉陽) 기자 |
티베트 민중이 차를 받아들이고 찻잎을 운용하는 실천은 한티 문화교류, 각 민족 간의 왕래, 교류, 융합의 기초 위에 장기적인 실천을 통해 축적되었고 진화한 것이다. 각 민족 민중의 문화적, 정서적 연결고리는 찻잎을 통해 강화됐다. 차 중 특히 수유차는 하나의 문화적 유대와 상징이 되었다
기자: 차마(茶馬)무역을 위해 만들어진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제무역상로(商路)다. 어떻게 이 옛길이 상품과 화물이 유통될 뿐만 아니라 한·장 민족 문화 교류의 연결고리가 되었는가?
자오궈둥: 차마고도의 부흥은 다양한 형태를 거쳤으며, 유구한 역사가 이 지역에 중요한 문화적 유대감을 부여했다.
캐러밴들은 차마고도의 주력군이자 차 무역의 주요 참여자 중 하나였다. 그들의 모험 탐구, 노력, 근면함, 그리고 예리하고 창조적인 정신은 옛길 변방의 각 민족과 집단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 문화 유대의 역할은 도시와 농촌의 발전, 무역 왕래, 인구 이동, 종교 및 음악 문화 교류, 민족 교류와 융합 등에서도 나타났다.
2019년 우리가 티베트 아리푸란(阿里普蘭)현에서 조사했을 때 한 고택에서 ‘보흥다형경정제창(寶興茶滎經精製廠)’, ‘강정다호(康定茶號)’, ‘형경아세(滎經芽細)’, ‘서강성다업회사(西康省茶葉公司)’ 등 차 문화 표지가 많이 발견됐다. 이것들은 주로 1930~1940년대에 있었던 곳이며 벽면에 정교하게 붙어 있었다.
‘보흥다형경정제공장’과 ‘강정다호’의 두 가지 표지 문양에는 모두 화염도(火焰圖)가 있는데, 한족과 티베트 두 가지 문화요소가 녹아 있었다. 이는 티베트, 쓰촨, 윈난 등지에서 좋은 찻잎을 표시하기 위해 그린 공통 문양이다.
이는 차마고도를 따라 찻잎에 관한 일부 문화 형식은 한족과 티베트 민족이 함께 완성한 것으로, 문화의 상호 구성과 공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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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7월,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에서 온 꼬마 관광객들이 라싸에서 수유차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촬영/허펑레이(何蓬磊) 기자 |
기자: 티베트 민족은 차를 마실 때 장유유서, 주객의 서열을 중시하며 일련의 예절과 규범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이것이 한족의 차 문화와 어떻게 통한다고 보는가?
자오궈둥: 티베트 민족들의 열정적인 환대는 차를 마시면 드러난다. 집에 손님이 오면 주인이 손님을 주인 자리에 모신다. 차를 따르기 전에 먼저 차구를 깨끗이 씻어야 하며 차를 따를 때는 정면으로 손님을 향하고 찻주전자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천천히 찻물을 부어준다.
그날의 신차가 아닌 경우 손님에게 차를 따른 즉시 신차를 타와 손님 앞에 있는 차를 갈아준다. 주인은 몇 분 간격으로 손님에게 뜨거운 차를 부어준다.
차 문화의 생성과 변천을 보면 한족들의 차 문화는 깊은 예술성과 문화의 축적을 가지고 있으며, 차를 끓이거나 전차(煎茶), 점차(點茶) 등 모두 예절과 규범을 중시하며, 이러한 문화요소는 티베트인들의 차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당나라의 루위(陸羽)가 지은 <차경(茶經)>에서는 “차를 마시기에 적합한 사람은 정성스러운 행실과 검소한 덕을 갖춘 사람”이라고 했는데, 한족과 티베트인들의 차 문화는 모두 차를 마시는 것과 좋은 품행과 도덕 정서의 관계를 강조했다.
다도, 다예는 또 다른 유형의 음차 문화로 기술, 예술, 감정의 결합을 강조해 특정 미학을 부각시킨다. 최근 몇 년 동안 티베트인들의 다도, 다예 공연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중화 다도, 다예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민간에서 생활화된 차, 음차 문화와 예술 공연 형식을 띤 음차 문화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은 한족과 티베트인들의 음차 문화에서 서로 통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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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1월 티베트 뭐투어(墨脫) 현 더싱(德興) 향 이궁바이(易貢白) 촌 먼바족(門巴族) 주민들이 찻잎을 따고 있다. 촬영/공갈래송(貢嘎來松) 기자 |
기자: 티베트의 평화 해방 70여 년 동안, 국가는 어떤 조치를 취하여 티베트 민중들의 차 마시는 수요를 보장하고 향상시켰는가?
자오궈둥: 국가는 티베트 각 민족 민중들의 음차 수요에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많은 작업을 해왔다.
하나는 찻잎의 공급을 보장하고 찻잎 가격을 낮추는 것이었는데 특히 많은 농목민 대중들을 중심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쓰촨, 윈난성 등지의 국경지역 차 생산 기업에 대한 국가 지원 강도를 높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 소비를 보장했다. 티베트 평화 해방 초기에는 해방군 주둔 부대에 찻잎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구매처를 설치했고 이를 바탕으로 ‘티베트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1954년 칭짱, 촨장(川藏) 고속도로가 개통되자 티베트 무역회사들은 차 등 물자를 대량으로 라싸와 티베트 각지로 보냈다. 많은 농목민들의 수요를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는 특히 외진 농목 지역에 대한 차 공급을 늘렸다.
1960년대부터 라싸시 국영무역부는 ‘선(先) 생산 후 생활, 선(先) 군중 후 근로자, 선(先) 고한(高寒)지역 후 일반지역’이라는 원칙에 따라 상품 공급 배분을 실시해 차 수요를 효과적으로 보장했다. 1980년 이후 시장화 경영은 티베트 각 민족 민중들의 차 수요를 만족시키는 중요한 버팀목이 됐다.
티베트에서는 평화 해방 초기 쓰촨 윈난성 등지의 찻잎이 산지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다 1959년경 가격이 떨어졌다. 이후 국가는 수차례 찻잎의 티베트 판매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다른 하나는 티베트의 차 재배와 차 산업 발전을 강력히 지원한 것이다. 1953년 현재의 티베트 파미(波密), 줘궁(左貢), 차야(察雅), 궁줴(貢覺), 레이우지(類烏齊), 빠수(八宿) 등의 현에서 찻잎 재배가 시작되었다. 1956년 현 린즈(林芝)시 차위(察隅)현 경내에 소규모의 차밭이 조성됐으며 1960년대에 차 씨앗을 잇달아 들여와 시험 재배했다.
현재 티베트 차 산업은 국가 지원, 성과 시의 지원과 더불어 티베트 각 민족 민중들의 노력이 더해져 발전 추세가 양호하다. 우량 차밭의 규모가 확대되고 차나무의 품종과 차제품의 종류가 끊임없이 증가하여 찻잎의 품질이 안정적으로 향상되었다. 티베트인들은 티베트산 차뿐만 아니라 차 산업 발전에 따른 경제적, 생태적 혜택도 누렸다.
찻잎 소비가 티베트에서 시종 지속되고 있으며 고도로 풍부한 현대 음료의 도입에도 도태되지 않고 있다. 이는 티벳 특유의 실용성과 문화, 정서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티베트의 차 산업 발전에서 우리는 한족 티베트 인민들의 두터운 정의를 볼 수 있다. 차가 티베트에서 새로운 이야기의 페이지를 써 내려갈 것이며 한족 지역과 티베트 지역의 교류를 더욱 촉진할 것으로 믿는다.
기자/염문연(冉文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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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오궈둥, 박사, 티베트민족대학 부교수, 티베트-진나라(藏秦) 히말라야의 걸출한 청년학자, 함양시에(咸陽市) 특출한 공헌을 한 전문가, 제1회 "중화 우수 차 교사" 영예 칭호 수상자, 현임 중국국제차문화연구회 학술위원, "차와 티베트", " 티베트차문화 "등 여러 편의 전문저서를 저술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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