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운명 앞에서는 손쓸 길이 없다

영화 ‘폭스트롯’ 스틸 컷
김지영 bnu0827@gmail.com | 2018-07-23 11: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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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토리에는 거대한 역사가 숨어 있고 개인이 겪은 경험을 압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정신적으로 느껴지는 두근거림과 조열(燥熱)적인 성적 계몽이 교차되어 전적(典籍)과 에로 매거진이 서로 맞물린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모든 미묘한 분위기가 냉정하고 질퍽한 현실에 녹아 들어 영화의 느낌을 살려주고 있다.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글/ 양스양(楊時旸)] 어떻게 설명을 하는 게 맞을지? ‘폭스트롯’은 시작부터 황당하지만 진지를 확고히 정비하고 적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기괴한 분위기가 흐른다. 영화는 시종일관 스산하면서도 어두운 느낌이었고 가끔 폭소를 유발하는 아찔한 장면이 등장하는 것 같지만 그 대목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지 않는 음산함으로 뒤덮였다. 영화는 그렇게 다른 분위기 속에서 흘러가며 독특한 말투로 가족영화와 전쟁영화를 섞어 놓은 듯한 독특한 모습을 지닌다. 하지만 가족의 감성을 담아내지 않았고 전쟁 현장을 담지도 않았으며 의도와 보여지는 것이 다른 몽롱함이 있었기 때문에 의외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사무엘 마오즈 감독은 이 영화에서 고대 그리스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확실히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그 목표를 이루었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고전의 비극적인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운명적인 윤회와 인과응보, 숨을 수 없는 운명의 손길을 그렸다. 

 

이야기는 부고로부터 시작됐다. 카메라 앵글은 어머니의 얼굴을 디테일하게 비추었고 인물이 흐릿해 진 뒤 뒤에 놓인 그림 한 점을 드러냈는데 추상적인 라인이 뒤엉켜 헝클어진 듯 하지만 또 질서가 있어 보이고 정신적으로 짙은 광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카메라는 다시 돌아와 놀란 표정으로 원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부친의 모습을 담았다. 한 겹씩 벗겨내는 장막은 마치 한번쯤은 지나간 뒤의 이야기와도 같아서 모든 것이 겹겹이 쌓여 있었던 것처럼 서서히 펼쳐진다. 

 

‘폭스트롯’은 세부적인 줄거리를 자세히 살펴봐야 할 영화이며 역동적인 전개의 이야기보다 상징과 은유, 그리고 뒷면에서 보여주는 정신적 위기가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다. 현관에 걸려 있는 추상화, 그리고 이 저택에 깔린 기하학적 무늬의 타일, 그리고 주변에 어울리는 창들은 명확한 구도를 통해 의미를 더해 주고 있으며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어 현란해 보이지만 흐트러짐 없는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폭스트롯’이 드러내고자 하는 특징이다. 혼돈과 선명함, 비선형과 선형의 방해와 얽힘이 영화의 특징을 이룬다.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부고를 알리는 장면은 엄숙하다. 군 관계자들은 부모들에게 아들의 사망소식을 전하지만 바로 이런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지나간 후 어딘가 모를 황당한 느낌이 든다. 병사들은 넋을 잃은 채 쓰러진 모친에게 안정제를 투입해준다. 그 모습은 마치 전쟁에서 부상병들을 간호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군인들은 모친을 침실로 옮겼으며 남자는 매 시간마다 알람을 설정해 상대방에게 물을 마실 때가 되었다고 귀띔해 준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군들은 부고를 알리러 갈 때 기본적으로 이렇게 하며 나름의 효율적인 절차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프로세스가 예술화되어 은유적인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볼 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죽음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이지만 모친이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더디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천천히 표현되어야 할 슬픔이 군사화된 규범에 맞게 재구성되어 황당한 느낌을 준다. 더 황당한 것은 슬픔을 확인하려는 찰나에 부친이 부고를 잘못 받았다는 반전이 전개되었고 사망자는 동명이인인 또 다른 남자 아이인 줄 알았는데, 그게 기쁜 소식이 아닌 또 다른 운명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공간은 ‘폭스트롯’의 또 다른 중요한 서사적 기초가 되고 있다. 폭스트롯을 추듯이 평평하게 이동하였다가 후퇴하고 다시 옆으로 이동했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균형 잡히고 닫힘과 열림의 가운데 있어 미묘한 변화 속에서 겉으로 보기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평형을 이룬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상 내면에서 완전히 변화되었다. 이 점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굳이 영화의 줄거리를 종합해 보자면 허위 죽음과 진정한 죽음 그리고 둘 사이에서 표현된 내밀한 비밀과 거대한 의식 흐름의 교차이다.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제1막 방에서 보여준 장면이 어이 없는 전개라면 2막 전쟁 장면에서는 황당한 느낌이 더 짙어졌다가 나중에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바뀐다. 전쟁터라고 하기보다 차라리 유배지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할 듯싶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추방이라기 보다는 더 깊은 정신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 몇 사람이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그 이야기에 들어있는 거대한 역사와 개인적인 경험, 정신적으로 느껴지는 두근거림과 조열(燥熱)적인 성적 계몽이 교차되어 전적(典籍)과 에로 매거진이 서로 맞물린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모든 미묘한 분위기가 냉정하고 질퍽한 현실에 녹아 들어 영화의 느낌을 살려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끝없이 반복되고 있고 벗어날 수 없는 처량함의 연속이다. 젊은이들은 전쟁을 피하려 하지만 낙타를 피하다가 죽는 일이 발생한다. 웃음을 자아낼만한 이야기지만 한없이 서글프기 짝이 없다. 가장 예측할 수 없는 단어가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싶다. 운명 앞에서 누구도 어찌할 수 없다. 영화의 포스터 속에는 사람의 얼굴에 반창고로 X자 표시를 한 장면이 있는데 이 표시는 19금 잡지의 표지에서 민감한 부위를 가리는 데에서 힌트를 받아 만든 것이며 겉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유혹으로 충만한 현실을 표현하였다. 이는 마치 진실을 감추려 애쓰지만 결국 드러나게 되는 생활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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