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의 호수, 헝가리 발라톤의 잔상(殘像)

문학박사 신상성의 유럽여행기
김지영 bnu0827@gmail.com | 2018-03-09 11: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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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중국신문주간 편집부] 유럽 최대의 호수, 헝가리 발라톤의 잔상(殘像)

 

-신상성의 유럽여행기-


“국가가 국민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가”하는 구체적인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헝가리 판 ‘자유의 여신상’앞이었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같은 조각상인데 횃불을 추켜든 그미는 부다페스트를 가로질러 흐르는 도나우 강을 하염없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미가 서 있는 곳은 ‘치타델라Citadella’라는 명승지로서 겔레르트 언덕 위에 있다. 1848년 오스트리아와의 독립전쟁 때, 코슈트가 이끄는 국민군이 결사 항전하여 승리하였으나 러시아 군의 개입으로 실패하였다. 특히 이웃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와 러시아 사이에서 국토가 늘 만신창이가 되곤했다. 독일과 루마니아에게도 당했다.


헝가리는 역사적으로 13세기 몽골 군의 침입 이후, 쉴새없이 외침을 받아왔다. 제1차 대전 후에는 영토의 약 72%가 잘려 나가기도 했다. 제2차 대전 때는 독일-이탈리아에 가담하여 종전 후, 독립을 기념하여 세운 ‘자유의 여신상’이다. 그러나 그후, 소련의 침공으로 다시 그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역적으로 막강한 나라들에게 삥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주변국들에게 시달려 왔다. 그러나 민족성이 강한 헝가리인들은 그때마다 목숨을 걸고 독립전쟁을 해왔고 그들의 고유어인 마자르어를 지금도 고집할 정도로 자유와 자주성이 유난한 민족이다.


겔레르트 언덕은 서울의 남산 같은 곳이어서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제일 먼저 들르는 코스이다. ‘자유의 여신상’을 중심으로 관광객들이 카메라와 비디오를 마구 들이밀었다. 기념촬영을 하는 대개의 노인들은 혈색 좋은 얼굴과 함께 특유의 강한 억양의 독일어로 떠들어 대었다. 그들을 상대로 구걸하듯 떠돌이 장사를 하는 노인들이 몇 명 다가왔다. 시내 명승지를 찍은 앨범을 파는 한 노인은 군복의 바지를 입고 녹슨 훈장같은 뺏지를 우스꽝스럽게 가슴에 달고 있었다. 진물이 흐르는 눈을 연신 닦으며 구렛나루를 추켜올린 어느 독일인 부부에게 하나 팔아달라고 애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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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근처 벤취에 앉아 그 노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2차 대전 당시 같은 동맹군으로 참전한 이웃 나라 전우일지도 모르는 비슷한 연배의 그들은 지금 대조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2차 대전 때, 전쟁에 패배한 전범 국가로서 똑같이 폐허가 되었던 두 나라가 지금은 GNP 차이가 거의 10배가 되는 국민으로 서 있는 것이다. 헝거리 노점상 노인이 굳이 2차 대전 때의 군복과 훈장을 가슴에 달고 있는 것은 옛 전우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켜 알량한 동정을 바라는 하나의 상술이기도 하다.


헝가리 여행은 워낙 싸기도 해서 유럽인들이 몰려든다. 못 사는만큼 물가가 싸다. 외국인들에게야 여행비가 싸서 좋지만 내국인들은 소외감과 박탈감으로 그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다. 헝가리 돈은 남은 돈은 달러로 환전이 안 된다. 꼭 바꾸려면 국책은행가지 찾아가야 하고 바꾸어 보았자 적은 돈은 환율 차손으로 뻐스값도 안 나올 정도다. 헝가리 인구 약 1천7백만 명의 거의 두 배가 해마다 이곳 부다페스트로 몰려든다고 한다. 특히 유럽의 젊은이들은 호수의 마을, 발라톤으로 밀린다. 어디선가 닫다가 앰뷸런스 소리에 놀라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왠 경적 소리는 자주 나는지, 중국 상해에서도 유난히 자주 앰뷸런스가 소리쳐 다녔다.


그 신경질 나는 소리 사이에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생음악도 들렸다. 그 소리를 따라 뒷켠 언덕을 넘어가 보니 소형 오케스트라가 야외무대를 장식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을 위해서 ‘헝가리 무곡’ 또는 팝송도 연주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중앙에 설치한 헌금함에 손님들이 귀동냥 값을 던져주고는 갔다. 나는 그것을 들으면서 아까 그 녹슨 훈장의 영감에게서 산 기념 앨범을 넘겨보았다. 그러나 나는 곧 사기 당한 것을 알았다. 방금 비슷한 앨범을 팔아달라고 다가선 소년은 150포린트를 달라고 했는데, 그 참전 노인은 500 포린트(10달러)를 받았으니 말이다. 내가 안 산다고 하자 그 소년은 그냥 50포린트만 달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곁에 있던 아내가 100포린트를 주면서 그냥 가져가라고 손짓하자 녀석은 도망치듯 달려갔다.


나는 그 소년의 뒷모습을 보면서 공중변소 화장실 벽에 회칠한 낙서가 생각났다. “You say, You love animal, but You eat them. / You say, You love tree, but You kill them. / That why I'm afraid when You say, I love You, You love me!” (당신은 말했다. 당신은 동물을 사랑한다고, 그러나 당신은 그들을 먹었다./ 당신은 말했다. 당신은 나무를 사랑한다고, 그러나 당신은 그들을 죽였다./ 나는 당신이 나를 보고, 나는 당신을 사랑해, 당신도 나를 사랑해 하고 물을 때는 두렵다.) 누가 누구를 속였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좀 혼란스러웠다.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헝거리 젊은이들이 아무데서나 쭉쭉 뽀뽀를 하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운 것인지, 그 중에는 고교생 티의 십대들도 있었다. 하여튼 그 야외무대를 벗어나 우리도 발라톤으로 향했다.


다시 기차를 타고 발라톤에 떨어진 것은 밤 자정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무작정 젊은이들이 움직여 가는 모습만 보고 따라갔다. 부슬비가 뿌리는 야밤에 그들은 철길도 지나고 군대의 야간 행군하듯이 끝없이 걸었다. 배낭족도 있고, 통키타만 둘러 맨 보헤미안도 있고, 히피족도 섞여 있었다. 철조망도 둘러친 곳도 지났다. 다소 불안하지만 밤이 깊어 되돌아 설 수도 없었다. 드디어 째즈 터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더니 광란의 거리가 나왔다.
야밤의 강남역 주변 같은 발라톤은 유럽 여러 나라의 청소년들이 떼지어 떠들고 흔들거렸다. 살벌한 눈빛과 헤비메탈, 밤하늘을 퍼렇게 채색하는 마리화나 연기, 전자오락실의 기관단총 소리…… 누가 옆구리에 권총을 대고 털어도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숨 죽인 채, 게스트하우스 간판만 찾았다. 그러나 그 일대를 몇 바퀴 돌아도 이미 불을 꺼버린 지 오래다. 손님들이 가득 차면 일찌감치 꺼버린다고 했다. 딱 한군데 ‘리자 게스트하우스 앤드 레스토랑’이란 불빛이 반짝이는 곳을 반갑게 들어갔으나 하룻밤에 3천 포린트를 달라고 했다. 가까스로 2천5백 포린트까지 깎았다. 좀 비싸긴 해도 이 밤 중에 어쩔 수 없다. 옷을 벗고 목욕을 하려고 가방을 전부 풀어 놓았는데 지배인 녀석이 오더니 내가 낸 돈을 도로 주면서 안 되겠다고 했다. 그러면 애초에 부른 금액을 다 주겠다는 데도 고개를 저었다. 문밖에 있는 어느 손님을 가리키면서 5천 포린트 준다고 했단다. 화가 나서 따졌더니 경찰을 부르겠단다.


나의 짧디 짧은 영어 실력에다가 더구나 그곳 마자르어 경찰관과 시비를 가린다는 것은 처음부터 시간낭비다. 후진국들은 어쩔 수 없다. 풀었던 가방을 다시 챙겨서 나왔다. 우범지역 길거리 한복판에서 새우잠을 자는 수밖에 없었다. 아까 손님도 5천 포린트 바가지라도 잡으려고 했던 것은 근처의 호텔도 방이 없다는 뜻일 게다. 우리는 복도에서라도 잘 생각으로 불 꺼진 게스트하우스 현관 문을 흔들어 대었다. 몇 군데를 돌자 다행히 구석진 곳에 방이 남은 게 있단다. 들어가 보니 1인용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1평 반짜리 방이었다. 이런 집들은 영업용으로 아예 방 구조를 전부 이렇게 한 모양이다.


얼씨구나 하고 무조건 들어갔다. 방 하나만 얻어서 포개어 잘 생각을 했더니 안 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두 개를 얻었으나 결국 우리는 신나게 포개어 잤다. 방 두 개 해봐야 5백 포린트, 한화로 8천원 밖에 안 되니 아까 쫓겨나길 천만번 잘한 게 아닌가. 이런 게스트하우스는 홍콩에서도 있었다. 홍콩은 이곳보다 더 뇌꼴스러운 것이 침대 옆을 빼면 또 하나의 간이 침대가 나와서 2인용 값을 받아먹는 것이다. 나는 거기에 다가채기로 두 명분만 내고 세 명이 잤다. 그때는 막내도 우리와 함께 배낭을 돌던 때여서 3명이 비비적댄 것이다. 이런 것도 배낭여행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가난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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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어디선가 눈썹까지 나들명 거리는 파도소리에 선잠이 깨었다. 피곤했지만, 얼른 일어났다. 서둘러 파도소리를 따라 나섰다. 유럽 최대의 호수답게 거대한 유람선도 서 있었다. 수평선 끝이 아뜩히 달려 나가는 게 바다 같았다. 낙낙한 윈드셔핑도 보이고 요트도 바람을 잡아 끌고 있었다. 녹색의 거대한 호수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우리는 해변을 따라 걸었다. 어젯밤의 늑대 무리 청년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 알콜에 마약에 곯아 떨어져 게스트하우스 침대 헝겁에 침을 흘리고 있을 게다. 유람선 주변에는 어린이와 어른들만 줄 서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바퀴 돌아나오니 양털가죽, 암소가죽, 사슴가죽 등 가죽 노점상과 잡상인들이 장날을 연상시켰다. 그들 고유한 음식인 한국식 비빔밥에다가 돼지고기로 싼 밥을 아침 겸 점심으로 떼웠다. 콜라 맛이 그때같이 시원하게 넘어간 적은 많지 않다. 아주 싼 방에서 포개 잔 기억이 말이다. 숙박비를 많이 남겼다는 사실에 생긴 것 없이 즐겁다. 어젯밤에는 없었는데 호수에서부터 발라톤 역까지 계속 노점상이었다. 황학동 마지막 시장같이 괴상한 잡동사니가 많았다. 어느 벤치에서는 비둘기에 발을 묶어놓고 팔고 있는 터키인 아주머니도 있었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더 배가 고픈 것 같다. 수영할 때는 평상시 보다 더 숨이 가쁘다고 했던가.


눈섭과 콧등의 선이 날렵한 헝거리인들, 깊숙하게 그림자는 그들의 얼굴은 어떻게 보면 미남미녀들이다.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스며있는 고난과 슬픔, 오랜 외침에서 오는 불행같은 것이 우리와 비슷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다시 부다페스트 역으로 나왔다. 예정에 없이 사흘이나 허비했다. 왠지 모르게 한국의 시골 같은 편안함과 아늑한 정감을 준다. 유고슬라비아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역에서 만난 한국 배낭족들이 한사코 말렸다. 내전 때문에 유엔에서 현재 위험지역으로 선포되어 있고, 특히 이런 밤 열차에는 열차 갱들이 휩쓸고 다닌다고 했다.

 

그렇다면, 루마니아로 가자고 시간표를 찾았더니 루마니아는 비자를 따로 받아야 되는데 오늘 같은 금요일 날은 오전까지만 영사업무를 본단다. 그렇다고 월요일까지 3일간이나 허송할 수는 없어서 불가리아로 가려고 했더니 그곳도 치안이 엉망인데다가 약 13시간을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동구권 국가들은 위험지역인 것 같다. 개방-개혁이 되면서 정치-사회적인 혼란과 불법이 판을 치고 있단다. 할 수 없이 예정에도 없던 이탈리아로 방향을 바꿨다.

 
이탈리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터레일Inter-rail 패스’에도 불인정된 곳이지만 일단 떠나기로 했다. 무슨 일이든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것이 이제까지 내 삶의 한 방법이었다. 그런 만큼 그 동안 실수와 위험도 많았다.
베네치아! 내일 아침이면 물의 도시, 베네치아 역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열차 유리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피로가 몰려왔다. 아마 아내만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유고나 불가리아 열차를 지금쯤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 © 문학박사 신상성

신상성(申相星) 약력
문학박사, 소설가. 동국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졸업, <동아일보>신춘문예 ‘회귀선’ 소설당선(1979). <풀과별> ‘경춘열차’ 시 신인상(1975), 디지털서울문예대학 및 피지(FIJI)수바외대 설립자 겸 초대총장, (사)한중문화예술콘텐츠협회 이사장, 국제한국어평생교육원원장, 국제펜클럽한국(PEN) 대외협력위원장, 전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부회장, 문예운동, 조선문학, 한국 노벨사이언스 등 편집위원, 용인대 명예교수. 중국 낙양외대, 천진외대 등 석좌교수.
수상: 국가훈장(홍조교육훈장), 국가유공자(월남전), 경기도문화상, 한국펜문학상, 동국문학상, 성호문학상, 중국 장백산문학상 등 다수 소설집, 평론집, 수필집, 시집 등 저서 약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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