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쿼제(八廓街)의 영혼을 찾아서II
- 바쿼제(八廓街)는 라싸(拉萨)의 영혼이다. 이 곳은 수십 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중국의 다른모든 도시들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도시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경제와 주민생활이 빠르게 성장한 반면 이전의 평화로움은 사라졌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11-13 10:59:29
기자/류단칭(라싸(拉萨))
개혁과 변화
니마츠런은 지금도 가끔 1980년대가 그립다.
그 당시 바쿼제의 ‘하드웨어’는 지금보다 못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고 바퀘제에도 새로운 건물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섰다. 모든 것은 주민의 편리 위주로 아름다움, 문화, 스타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물, 전기, 화장실, 함석집 모든 것이 ‘생존’단계에 그쳤다. 방이 부족하면 위로 올리고 오래된 벽은 하나하나 허물었다. 모든 것이 빠르고 거칠게 진행되었고 의견을 내기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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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
그 후 조캉사원이 개방되고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어디서든 불경을 들을 수 있었던 니마츠런의 청년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는 소리소문 없이 찾아와 모두에게 미묘하고도 뼈에 사무치는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둥베이(东北)에서 파견기자로 티베트를 찾은 처강(车刚)은 카메라 한 대로 멋있는 사진을 찍으며 빠르게 티베트에 정착해 이곳을 사랑하게 되었다. 당시 <티베트일보(西藏日报)>의 기자로 그가 가장 많이 찍었던 곳이 바로 바쿼제다.
당시 라싸는 곳곳에 ‘링카(林卡-나무와 잔디가 있는 아름다운 휴양지)’가 있었다—나무 밑 모래와 자갈에 맥주와 안주를 차려놓고 바닥에 앉으면 주변에 물과 습지가 많아 천국이 따로 없다. 당시 도처에 깔려있던 흑돼지, 나이짜(奶渣-크바르크/우유비지), 쑤여우화(酥油花-유지방조소예술) 절마합(切玛盒)의 디자인과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처강은 라싸의 모든 것에 인간미가 묻어나던 그 시절이 그립다. 티베트 전통 설이면 장족(藏族) 동료들이 그를 억지로 집으로 끌고가 함께 설을 지냈다. 티베트 예절에 따라 절마합을 가져오면 보리이삭, 쌀보리, 참파(糌粑-면)을 바쳐야 했는데, 이를 티베트어로는 ‘징쳬마(敬切玛)’ 집마다 향포(香布)를 갈았다.
80년대 바쿼제의 사진을 찍고 다니면서 처강은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그가 짝 없는 총각인 것을 본 장족동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그의 문 앞에 화채를 떠 두었다 “설에 친구 한 명을 깜빡 하고 인사를 안 가면 어찌나 미안한지.” 바쿼제는 곳곳에 참배객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양털을 깎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쿼제는 전경을(转经)을 하는 신성한 길로서 부모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안고 와 절을 가르쳤다. 모두가 웃고 있었고, 거울을 보아도 지금처럼 무서운 표정이 아니었다.
개조
바쿼제의 가장 큰 변화가 시작 된 것은 대략 그때부터 일 것이다.
2007년부터 바쿼제 보수·개조계획 전 과정에 참여한 티베트대학 투덩커주(图登克珠) 교수는 “반드시 민족특색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격과 경력이 뛰어난 티베트대학의 오랜 교수인 그는 평생을 바쿼제에 살며 티베트주민 중의 ‘문화인’으로서 권위 있는 인물이다.
2012년 진행된 대 보수 사업에는 거리와 세부사항마다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 “탕카(唐卡-두루마리 불교그림), 복장, 목걸이 등 장족 특색을 가진 것은 모두 두어야죠.” 가계 배치와 진열에 대해 그는 “전에 있던 노점상들은 반드시 정리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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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
2012년 정부는 바쿼제 정돈과 규범화를 위해 거리의 모든 노점상들이 이사갈 것을 명했다.
이는 구불구불한 바쿼제를 반듯하게 펴고 구 시가지 전역을 관통하는 대형프로젝트였다. 투덩커주 교수의 통계에 따르면 바쿼제의 인구밀도가 1.33km2당 8만여명에 육박하며, 5만여명에 이르는 유동인구와 임시거주자들의 대부분은 노점상을 하거나 (군인이나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 또는 외지에서 이동해 온 일용직노동자이다. 56개 고대건축물 대원(大院)이 여러 해 동안 점점 황폐화되고 잡거지가 되어 한 대원(大院)에 수백 명이 거주하고 있다.
오래된 집과 거리를 공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데다 거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것은 더 어려웠다. 후싱궈(胡兴国)가 임무를 받은 2011년 12월 중순, 라싸는 매우 추웠다. 후싱궈는 1987년 무장경찰 노병으로 티베트에 들어온 후 관리위원회주임으로 전업해 임무를 받고는 골치가 아팠다. “부담이 너무 컸어요. 6개월로는 어림도 없었어요.”
후싱궈는 이번 이주가 예전 무장경찰임무를 수행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며 “자치구 설립 후 라싸의 첫 대형프로젝트.”로 외지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고 밝혔다.
구 시가지에는 101개의 골목이 있고 거리의 3,031개 노점이 조캉사원을 둘러싸고 세 줄로 늘어서있다. “가게 하나가 많은 사람과 관계되어 있어요. 주인 자신과 라싸에 있는 주인의 친척과 자녀들까지 인척관계임 셈이죠. 이렇게 이들 3,031개의 노점과 관계된 사람의 수가 20만 정도에 이르다 보니 일을 진행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당시 후싱궈는 정신 없이 바빴다. 수십 차례 직급별 회의를 열어 의견을 듣고 수정을 반복하다 보니 건장한 남자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했다. 제한된 시간—6개월 동안 반드시 완성해야 했다. 바쿼제의 3개 사무소와 15개 주민위원회가 한바탕 바빴다.
프로젝트에 투입된 3,000여 명의 임원 중에는 현직 임원도 있었고 퇴직했다 복귀한 임원도 있었다. 임원 한 명이 5만가구를 맡아 10일내에 설득, 서명, 이주를 마쳐야 했다.
낮에는 주민들이 장사를 했기 때문에 집에 사람이 있는 저녁9시 이후에 집집마다 다니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쫓겨났다. “어디로 이사를 나가? 일 못한 만큼 당신이 돈 줄 거야?” “개조된 다음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건가요” “이사 가면 장사를 못하는데, 가게를 정부에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나요?”
후싱궈는 한 가지도 약속할 수 없었다.
정책이라는 말로는 소용이 없어 “우리 민족문화를 보야 줘야죠! 이사를 안 나가서 바쿼제를 개조하지 못하면 외지인들에게 우리 민족문화를 어떻게 보여주겠어요?” 라며 민족적 자긍심으로 주민들을 자극했다.
주민들은 “민족문화가 뭔데?”라며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대들며 그와 대립했다.
“압력이 너무 컸고 너무 조급했어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후싱궈가 말했다. 모든 노점상들이 라싸 구 시가지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바쿼제에서 이주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정부는 다른 지역에 ‘바쿼 쇼핑몰’을 조성하고 노점들을 야외에서 실내로 모아 깔끔하게 정리하는 방안까지 특별히 기획했으나 노점상인들은 그 곳의 유동인구와 수익성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들에게 이주를 나간다는 것은 곧 돈벌이가 끊기는 것이었다.
더구나 쇼핑몰은 완공되지도 않은 상태였고 눈에 보이는 보장도 없는데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여기저기 끊이지 않아 주민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정책이었기에 반드시 이주를 해야 했다. 더 큰 의미에서는 후싱궈 역시 노점상인들과 마찬가지로 막연했다. 이주를 하던 날 밤 늦게까지 운송부와 정부차량, 개인차량까지 쓸 수 있는 차량은 모두 동원했다. 대열은 위풍당당하게 우척로(宇拓路)로 이전해 임시거처를 마련했다.
바쿼 쇼핑몰이 완공되지 않아 우척로의 야외상가가 3,031여개 노점의 유일한 거처였다. 겨우 설득해 우척로로 이주시켰더니 이번에는 먼저 장사를 하고 있던 상인들이 반발했다. “그들이 우리 앞으로 옮겨와 가게를 차리면 우리 장사가 되겠냐고.” 그들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보조금을 요구했다.
이쪽이 잠잠해지기 무섭게 저쪽이 시끄러워졌다. 바쿼 쇼핑몰이 완공되자 1층은 괜찮았는데 위층가계는 손님이 없어 이번에는 누가 1층에 가게를 내고 누가 3층으로 올라갈 것인지가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탁구공 수만 개를 샀다—불교를 믿는 티베트인들은 자신이 짚은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6개월 후 바쿼제가 깨끗해져 2013년 6월 거리가 전혀 새롭게 바뀌었다. 모든 가계가 질서정연하게 분양주택으로 들어가고 훼손된 옛날 벽은 허물고 다시 지었다. 삐뚤삐뚤하던 티베트식 건물도 줄을 맞춰 최신건물로 바꾸고 창문에는 통일되게 티베트장식을 걸고 벽의 먼지도 쓸어냈다.
아름다운 물건들도 매우 많다.
번화하면서도 질서 있고 물과 전기사용이 편리해 뛰어난 민족적 특색과도 맞는다…. 기존 건물에호텔, 다이코스(Dicos) 등 있어야 할 것이 다 갖춰져 있고 거리에 이어지는 작은 밀납, 붉은 산호, 터키석 등 다양한 진품과 모조품 티베트 액세서리 가게에는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경관은 관광지 상업가가 갖춰야 할 모습이다.
깔끔해진 환경으로 바쿼제에 오가는 관광객은 늘었으나 바쿼 쇼핑몰은 인적이 드물다. 노점의 장사는 지원되지 않고 정부가 매년 바쿼 쇼핑몰에 지급하는 보조금 1억위안이 전부이다.
정부는 관광단체가 업무에 협조해 손님들을 바쿼 쇼핑몰에 데려가 소비를 하게 하도록 요구했다. 모든 기관의 임원들도 바쿼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도록 하고 쇼핑을 위한 특별비용까지 지급했다.
후싱궈 역시 이 돈을 받아 들고 바쿼 쇼핑몰 안과 밖 3층과 밖의 3층을 구경했다. 터키석과 티베트 장식품은 그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돈을 못 쓰겠더라구요. 정말 뭘 살지 모르겠어요.” 며칠을 돌아보고도 수확이 없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조급해 있는데 3층에서 돌아서자마자 한 농부가 티베트달걀을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결국 달걀 300개 사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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