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다

영화는 황당한 코미디의 색체로 감독이 끊임 없이 반복하는 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으로서 인생은 짧고, 냉정하며 외롭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5-29 10: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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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무웨이얼] 사람들은 영화촬영을 신성하고 중요한 작업으로 보고 촬영이 끝난 후에는 관객들과 경쟁하려 든다. 그러나 로이 앤더슨(Roy Andersson)처럼 취미활동의 하나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는 CF촬영으로 생활하면서도 광고를 영화로 찍고 싶은 생각이 있다. 올해 홍콩과 베이징(北京) 국제영화제에서 이 스웨덴감독의 광고가 개인회고전에 포함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로이 앤더슨은 특유의 ‘슬로우 스크루’ 바이러스를 제조해 영화 속 캐릭터에 전염시킨다—이 지구의 자전을 늦추려는 듯. 그의 7년 만의 복귀 작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다>은 답답하고 가식적이고 냉담하고 (전개가)느리고 행위예술 같다는 평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지금까지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황당한 코미디의 색체로 역시 감독이 끊임 없이 반복하는 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으로서 인생은 짧고, 냉정하며 외롭지만 보잘것없고 가소로운 인생이 즐겁게 않다면 억지로라도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 


영화 전반부는 장면마다 전혀 관련 없는 낙심과 죽음, 곤궁한 인생을 이야기 하는 듯 싸늘한 농담이 등장한다. 그러나 머지 않아 로이 앤더슨의 레퍼토리가 다시 시작됨을 느끼게 된다. 중반부 이야기부터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다>의 줄거리가 떠오르며 감독은 두 세일즈맨의 난처한 인생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밀린 임금을 독촉하면서도 빛 독촉에 시달리고 웃을 수 없는 ‘도끼 식’판매를 반복한다. 사람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주고자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웃을 수 없어 결국 찢어져 불쾌하게 헤어진다. 


왜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세일즈맨을 선택했을까?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세일즈맨은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한다. 돈 몇 푼을 벌기 위해 양복차림으로 매일 바쁘게 살아간다. 이렇게 서류가방이나 짐을 들고 있는 인물의 모습은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불쌍하면서도 웃긴 인간의 자아상이기도 하다. 


존재, 혹은 진실은 감독이 오랫동안 주목해 온 영화의 주제이다. 관중들이 영화 속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배우임을 관중들이 안다는 것에 개의치 않는 듯 영상에는 극단적이고 독자적인 형식주의가 표현된다. 그는 대사를 최대한 없애거나 줄이고 배우들의 신체와 위치의 움직임에 의존하고 초점범위의 공간(유리창)을 충분히 활용하여 장면 안의 몽타주를 구성한다. 군대출정장면은 영화의 중요한 장면으로 감독이 작품 중 가장 공을 들이고 스케일이 가장 큰 군상극이다. 


따라서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 속으로 들어오기 보다 영화 밖으로 나가 무대 밖 관객의 입장에서 작품을 보기를 원한다—작품 속 배우들이 꿈을 꾸거나 해괴하고 무서운 상상에 빠지듯. 로이 앤더슨은 또한, 고도로 상징적인 신 객관주의 그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다>의 인물은 희극무대에 있으면서도 영화의 극중극에 있는 듯 한데, 이는 인류의 존재에 대한 다중적인 은유이기도 하다.

 

또한, 다른 시간과 공간의 인물이 개입되거나 초현실적인 꿈이 갑자기 삽입되어 언제나 적합한 슬픔을 드러내면서도 감독이 직접 설명하지 않고 관객들에게 여운과 질문을 남김으로써 영화제목의 비둘기처럼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영상의 분위기 역시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다>는 차가운 색조를 주로 사용하였다. 새하얀 방, 덩 빈 복도, 인적 드문 거리…이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북유럽의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로이 앤더슨이 자신의 회사에 제작한 세트이다. 얼굴을 하얗게 칠한 배우가 무표정에 초점 없는 눈빛으로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한다. 그들의 동작은 보통사람들 보다 2~3템포 느리다. 그들은 곤혹스럽고 생기 없고 절망적으로까지 이 세상을 바라보며 기이하고도 냉소적인 유머를 자아내는 한편 사람이 상상력을 펼치게 한다.


그러나 베리만(Bergman)의 영화에 갑자기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로이 앤더슨의 영화는 이 황당한 무대에 배경음악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술집의 노인이든 배경음악이든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다>는 세월의 시공을 가로지르는 우울함이 풍겨온다. 그러나 영화의 더 많은 정서는 연인과 커다란 검은 개, 그리고 흑인노예대열이 커다란 동관악기 속으로 던져지는—이 장면은 많은 영화 팬(Fan)들에 의해 계속 이야기 될 것이다 포스터의 장면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색다르다. 

 

전 작품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로 나체의 여성을 처형하는 장면의 놀라운 것과 비슷하다. 감독은 여전히 그것들의 의도를 설명하려 하지 않고 ‘갑자기 깨버린 꿈’이라고만 이야기해 많은 가능성을 남겼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영혼의 음악 역시 참을 수 없는 처참한 비명일 수도 있다.


영화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다>는 작품자체나 인간의 생명에 대한 신비와 가능성을 나타냈다. 완전무결한 작품은 아니라도 로이 앤더슨의 영화가 세계영화 흐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이렇게 수십 년을 한결같이 나아온 것은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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