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교(新都桥)-빛의 세계 속의 선원
- 이곳에서 사찰의 존재는 평범한 생활공간이다. 우리가 다른 곳에서 본 것처럼 의식적인 곳이 아니다. 라마(Lama)들은 마을사람들을 도와 이름을 지어주고 독경하며 다리를 수리하고 길을 닦아준다. 마을 사람들과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2-28 10:21:57
[글/등소하] 318촨장센(川藏线)을 따라 곧장 서쪽으로 가서 해발 4,000m가 넘는 즈어둬샨(折多山)을 지나면 바로 촨씨(川西)의 캉바장구(康巴藏区)에 들어서게 된다. 초입에 마을이 바로 신두교(新都桥)이다. 신두교의 지리적 위치를 보면 동서를 연결하고 남북을 관통하는 교통요지의 중심에 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가면 ‘말 타고 돌다 跑马溜溜’라는 캉띵(康定)이고, 서쪽으로 가서 처음 만나는 곳은 리탕(理塘), 다우청(稻城)이고, 조금 멀리 가면 라싸(拉萨) 혹은 중댄(中甸), 리쟝(丽江)이 있다. 북으로 가면 타궁(塔公), 바메이(八美) 혹은 도우푸(道孚), 단바(丹巴)에 갈 수 있고 남쪽으로 가면 와저(瓦泽), 쥬우룽(九龙)을 거쳐 량산저우(凉山州)에 이른다.
신두교는 해발 3300m로 주위에 있는 산마루는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다. 지형은 넓고 평탄하며 고원의 수풀은 떠나가는 구름이나 흐르는 강물처럼 보인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10월 중순이 되어 도로 양측에 첩첩이 늘어선 숲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크고 높은 시짱 나무집 위에는 다채로운 깃발이 펄럭이는 것이 마치 단체로 전원 목가를 부르는 듯하다. 이곳은 촨시에서 유명한 촬영자 천국으로 불리는 ‘광영 세계 光影世界’이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서는 길고 짧은 카메라를 메고 있는 촬영 애호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오후 4시 우리는 신두교 마을과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백양나무 가로수 길에 다다랐다. 거대한 백양나무는 고원의 뜨거운 햇빛 아래 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적색과 청색 옷을 입은 몇몇 사람이 그 길을 거닐고 있었는데 주위와 어우러져 빛깔이 풍부해지며 아름다움을 더했다. 멀리 연결되어 있는 산비탈은 햇살을 하나하나 여과하여 뜨거운 햇볕을 부드럽고 온화하게 만들었다. 쏟아져 내린 한줄기 빛이 순식간에 산 계곡을 밝게 비추어 준다. 당신이 앵글을 조절하는 순간에 햇빛은 다시 사라져버릴 것이다.
농가 쪽에는 화염처럼 타오르는 나무들이 꿋꿋이 서 있다. 광활한 들판에서는 소들이 노을빛을 받으며 고개 숙여 무언가 먹고 있다. 잠시 되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일몰의 그림자가 흐릿해지며 환상 같기도 하고 꿈 같기도 한 장면이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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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교 쥐리사(居里寺)에 있는 어린 라마들. 사진/등소하 |
아주 오래 전 장족 사람들은 신두교 지역의 흙이 사찰을 짓는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당시 교통이 불편한 상황에서 양떼를 이용하여 흙을 서장(西藏)까지 옮겼다. 일설에 의하면 서장(西藏)의 각 사찰에는 아직 양의 표본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장족의 후손들은 양이 처음으로 지나간 다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다리의 이름을 ‘신두교’라고 지었다.
신두교의 쥐리(居里)마을 쪽에 유명 사찰인 쥐리사(居里寺)가 있다. 이 사찰은 1,4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래된 절간이다. 마을의 작을 길을 따라 몇 키로 미터를 걸으면 사찰의 대문 앞에 도착한다.
같은 서장불교 거루(格鲁)교파의 사찰이지만 쥐리사는 라싸의 저우빵사(哲蚌寺)보다 명성이 높지 않고 칭하이(青海) 타얼사(塔尔寺)의 불교적 지위도 없다. 그는 홀로 깊은 산속에서 장족 주민들의 집과 함께 평온하고 조용하게 자리 잡고 있다.
라우쓰왼(老寺原)은 즈어둬산에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어느 해에 딱히 쥐리사의 몇 대 생불(活佛)인지 모르겠지만 그 생불은 첫눈에 3면이 산에 둘러싸여 있는 쥐리마을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이곳에 백양나무 두 그루를 거꾸로 심고 만약에 나무가 살아나면 쥐리사는 다시는 옮기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 두 그루의 백양나무는 살아나서 굵고 크게 자라났다. 거꾸로 백양나무를 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쥐리사는 300여 년이나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오늘은 주말이어서 라마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외출을 한다. 대문에서 안으로 보면 넓은 사찰에 축구장만한 광장이 있다. 광장 주위에는 집이 몇 줄 늘어서 있다. 아마 라마들의 숙소이리라. 대문 쪽에서 젊은 두 라마를 만나 말을 걸게 되었다. 안에 들어가 참관하겠다고 요청하니 두 라마는 아주 상냥하게 승낙하였다.
두 가이드, 큰 라마는 이름은 니마(尼玛), 높은 코에 두꺼운 입술, 16살 나이에 키는 170㎝를 넘는 듯 보였다. 전형적인 캉바 청년이다. 키가 작은 라마의 이름은 바이마(白玛)이고 12살이다. 둥근 얼굴에 둥근 눈을 가진 그는 활기차고 움직이기를 좋아한다.
라마복을 입지 않았다면 보통 아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사찰이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방문하는 사람이 적어서인지 두 라마는 우리에게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정보도 교환하였다.
쥐리사에는 현재 120명의 라마가 있다. 밀교 수행을 가르치는 사찰이다. 니마와 바이마는 사찰의 라마이며 사찰학원의 학생이기도 하다.
니마는 마을의 중국어학교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지 않고 자진해서 불교를 배우러 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는 중국어 문화와 비교한 후 서장불교를 더 배우고 싶어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이마가 선택한 이유는 더 간단하다. 그는 사찰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리는 들은 적이 있다. 대개 장족의 가족들은 아이 한 명을 사찰에 보내어 불법(佛法)을 배우게 한다. 생활비는 집에서 전부 부담한다. 니마는 이곳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사찰에 들어가 불법을 배우는 것은 자원해서 온 것이고, 사찰에서 라마들이 먹고 자는 것은 무료이다. 나중에 환속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고 가는 것이 모두 자유롭다. 휴일에 니마는 할머니 집에 가서 그가 도울 수 있는 농사일도 한다. 나는 두 라마에게 사찰에서 언제까지 공부할거냐고 물어보자 두 라마는 바로 ‘평생’이라고 대답했다.
사찰 구조는 전통적인 나무 구조이다. 로비와 방의 배치도 원시적 서장불교의 특색을 보존하고 있다. 사찰은 40대 칸부(堪布-주지)를 배출했다. 생불 시캉파하이(西康法海)가 돌아가셨을 때 18개의 불사리가 나와 한동안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서장불교에서 불사리가 있는 5명의 대덕고승 중의 한 명이다. 현재 쥐리사에는 그의 불사리 3개를 보존하고 있다.
서재를 관리하는 라마의 동의하에 두 라마는 우리를 데리고 안에 들어가 참관할 수 있도록 했다. 서재에는 수 백 권의 천 년 역사가 깃든 진귀한 경서들이 있다. 바이마는 조심스럽게 그 중의 한 권을 펼쳤다. 경서는 천으로 감싸여 있었다. 경서는 순금가루를 섞은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종이는 완전하게 보존되고 있고 글씨도 선명하다.
니마의 소개에 의하면 선학원(禅学院) 선생은 자주 그들을 데리고 와서 경서를 본다. 이것도 그들이 배우는 불교 내용 중의 하나이다. 서재에는 전등이 없어 낮에도 어둡다. 경서를 저장하는 곳에는 비밀 통로가 있다. 손을 내밀어도 보이지가 않는다. 니마는 우리보고 이 통로를 지나가라고 했다. 몸이 경서를 지나면 재난을 없앨 수 있다고 한다.
사찰의 벽에는 역사가 오래된 채색 벽화가 있지만 지금은 판자벽을 쌓아 보관하였다. 바이마는 열쇠로 문을 열어 우리한테 보여주었다. 한 폭의 벽화는 지옥윤회를 표현한 것이었다. 분칠은 벗겨졌지만 전체적으로는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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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교 부근의 티베트인. 사진/CFP |
사찰의 향불은 주로 부근의 열 몇 개 되는 마을에서 온 것이다. 사찰도 마을들을 돕고 있다. 작게는 신생아의 이름을 지어주고 각 집안에서 필요하면 가서 경을 읽고 불사를 치른다. 크게는 마을 주민의 장례를 치르기도 한다. 니마는 자주 나이 많은 라마와 함께 마을에 가서 경을 읽고 불사도 치른다. 사찰의 현재 생불인 앙왕뤄주(昂旺落珠)는 연세가 높고 건강이 좋지 않아 날씨가 추우면 사찰 부근의 마을에서 지낸다.
오전에 쥐리마을을 지날 때 장족 주민들이 강변에서 다리를 수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라마들도 같이 참여하여 수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절간과 마을 주민들이 서로 의존하면서 생존한다. 이곳에서 사찰의 존재는 아주 평범한 생활화된 공간이다. 우리가 다른 곳에서 본 것처럼 의식적인 곳이 아니다.
사찰 뒷산에는 장대(葬台)가 하나 있다. 문 크기와 비슷한 돌 판이다. 위에는 도끼 같은 도구들이 놓아져 있다. 옆에는 독수리들에게 다 뜯기지 않은 시체를 매장한 무덤이 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서장에서 몇 곳 안 되는 천장(天葬)의식을 하는 곳이다. 며칠 전에 이곳에서 천장을 치렀다고 니마가 말한다. 이 기회를 놓친 것에 우리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과 헤어질 때 감사의 뜻으로 점심을 같이 하려 했지만 일정에 변동이 생겨 최소하게 되었다. 우리는 니마와 위챗에서 친구로 등록하였다.(바이마는 아직 핸드폰이 없다.) 얼마 전에 니마는 위챗에서 사찰은 라싸에서 법회를 하는 선생님을 모셔왔다고 하였다. 행사는 15일 동안 계속되어 놀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가 보내온 사진을 보면 법회를 듣는 사람은 라마 외에 세속 사람들도 있었다. 설법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엄숙한 분위기에서 집중하고 있다.
TIP-촨시(川西)고원은 해발 3,000~4,000m된다. 출발 2주 전 저산소증 예방약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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