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아이운(El Aaiun): 이생이 시작되는 곳
-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덤과 여전히 어지럽게 쌓여있는 돌들.
달라진 점은 싼마오는 시체와 영혼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했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담과 철문이 생겼고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가방을 매고 웃으며 지난다는 것이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4-27 1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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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로코 엘아이운, 서 사하라사막의 낙타 무리. 사진/정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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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음날 오후, 카사블랑카 공항 탑승구에서 ‘라윤(Laayoune)’을 본 우리는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치위(齐豫)의 노래 <사막(沙漠)>이 귓가에 맴돌았다. ‘전생의 그리움이 눈 앞에 펼쳐지네. 아. 깊은 황금사막이여(前世的乡愁,铺展在眼前,啊一匹黄沙万丈的布)…’ 이렇게 오랜 세월 후에도 <사하라이야기(撒哈拉的故事)>를 읽던 소년의 꿈이 가슴에 남아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엘아이운은 28만k㎡의 대지 서(西)사하라사막에 위치한 도시로 UN 분쟁지역이다. 싼마오의 <낙타의 울음(哭泣的骆驼)>이 바로 사하라 현지토착민들과 스페인 사람들(당시 서사하라는 스페인령이었다)의 전쟁을 그린 소설이다.
읽을 당시에 사막에서 그렇게 처절한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신기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 곳곳의 무장군인(하나 같이 훈남 이었다)들을 보니 누군가가 비행기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머리에 총을 겨누었던 일이 생각 나면서 약간 긴장되었다.
출구에서 우리는 철학적인 질문을 받았다. 너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는 자세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무엇을 하러 왔는가? 어디를 여행할 건가? 며칠이나 머물 건가?…꼬치꼬치 묻고 적더니 엄숙하게 도장을 찍은 후에야 헤어지기 아쉬운 듯한 손짓으로 보내준다.
짐을 찾아 나온 후에야 공항 위 Laayoune 글자를 배경으로 푸르른 하늘 아래서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었다.
택시를 부르자 행선지를 묻는다. 내셔널게스트하우스! 엘아이운에서의 유일한 선택이다.
엘아이운에서의 첫 날, 싼마오는 호세(荷西)를 따라 마을로 쇼핑을 갔는데 회교궁전 같은 게스트하우스가 한눈에 보였다. 그 후 그녀는 내셔널게스트하우스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 하려는데 하이힐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웃 구카(姑卡)가 빌려가서는 더럽혀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치마를 갈아입고 운동화 차림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화려하게 치장한 귀부인들 사이에서 목동의 행색으로 있어야 했다. 이후 그들은 자가용을 구입해 해변에서 잡은 물고기를 살림에 보태고 가까스로 호텔 주방에까지 납품하게 되었으나 우연히 호세의 상사라도 마주치는 날이면 저녁식사를 대접하느라 12배의 돈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의 투숙객은 거의 우리뿐이었다. 엘아이운이 관광명소도 아닌데다 사업자들은 더욱이 새로운 호텔을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파란 식당 가운데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손님이라곤 밤새도록 우리뿐이었다. 밤이 깊어 정원으로 나가니 온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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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안고 있는 사하라족 여성. 사진/Robert Griffin |
새벽에 맨발로 다시 한 번 정원에 나가 날아가는 새와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보며 깊이 공기를 들이 마셨다.
지난 수업을 통해 싼마오의 집이 엘아이운 작은 마을의 골든리버(Golden River)가 44호라 알고 있었다. 그 거리는 카탈루냐(Catalunya)로도 불리는 매우 스페인스러운 이름의 거리이다.
높은 흰색 벽 위에 붙어 있는 ‘골든리버가 44호’ 표지판과 푸르른 하늘 빛의 조화가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넓고 깨끗한 거리는 더 이상 싼마오 작품 속의 더럽고 좁은 곳이 아니었다. 정오 녘의 태양이 반짝이며 거리 양 쪽 집들의 채색된 벽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길 양쪽으로는 사하라토착민들의 무덤이 이어진다. 싼마오 역시 그녀의 작품에서 그들의 매장방식을 소개한 바 있다. ‘그들은 천으로 싼 시체를 모래 굴에 넣은 후 그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돌들을 쌓는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덤과 여전히 어지럽게 쌓여있는 돌들.
달라진 점은 싼마오는 시체와 영혼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했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담과 철문이 생겼고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가방을 매고 웃으며 지난다는 것이다.
골든리버가를 따라 서쪽으로 걷다 보니 소박하면서도 조용한 3층집들이 눈 앞에 나타난다. 거리 쪽으로 난 문과 옅은 노랑색의 거친 벽 위에 흰색 분필로 쓴 ‘44’ 숫자가 선명하다. 건물에는 가무잡잡한 얼굴이 보기 좋고 친절한 사하라토착민들이 살고 있다.
이제까지 사막에서 보았던 집 중에 제일 아름다운 집이다! 주워온 관 판으로 직접 만든 DIY 가구, 폐타이어를 활용한 소파, 결혼예물이었던 낙타머리뼈, 톈타이(天台) 천장에서 띠어온 염소… 이 모든 것들을 눈으로 직접 보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벨을 눌렀더니 정말 문이 열렸다. 철조망 너머로 실내복차림의 사하라토착민이 아름다운큰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나는 당황해서 내가 중국에서 온 작가이며 몇 년 전에 이 집에서 살았었노라 설명하고 들어가 보아도 되겠냐고 물었다.그녀는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더니 ‘남편이 없어서 당신은 되지만 저 사람은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는 밖에서 기다리고 나만 여주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자 좁은 복도가 이어졌다. 싼마오는 호세에게 안겨 이 집에 처음 들어왔다. 호세는“나의 신부가 되었으니 내가 당신을 안고 돌아가겠소.”라고 말하고는 싼마오를 안은 채 크게 네 걸음 만에 복도 끝에 도착했다. 복도 끝은 빈 홀로 이어지는데 고개를 드니 내가 수 없이 상상해 온 톈타이 염소가 떨어진 천장이 보였다. 지금은 철사를 둘러 놓았다.
어둑한 홀에 서서 여주인에게 40년쯤 전에 에코(Echo)라는 중국의 유명한 여 작가가 사하라이야기를 많이 썼으며 그녀가 살았던 집을 보고 싶어 그냥 한 번 와 본 것이라고 다급히 설명했다. 나와 마주 서있던 여주인은 이해하며 가련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국인 들이 이 곳을 찾을 때마다 에코를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귀여운 두 딸을 둔 네 식구가 이 곳에 세 들어 산 지도 8년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사탕을 모두 꺼내 주었다. 여주인에게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했다.
여주인이 옷을 갈아입으러 간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하긴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그럴 만도 하지.
큰딸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을 찍은 후에야 여주인이 보기만 할거면 친구를 들여와도 좋다고 허락했다. 나는 기쁘게 달려나가 입구에 얌전히 앉아있는 친구를 불러들였다.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천장을 한 번 바라보며 생각했다. “진짜로 염소가 떨어진 거였구나.”
우리는 입구에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 바람은 세고 찬란한 햇살이 좋았다. 그제서야 여주인은 영어를 할 줄 알고 나의 형편 없는 영어로도 그렇게 많은 대회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맞은편에 사막이 바로 보였던 것 같은데 지금의 엘아이운은 번화가가 되어 버렸다. 모로코의 하산왕이 이 지역을 점령한 후 우대정책으로 많은 상인들을 끌어 들였으니 번화할 만도 하다.
우리는 6인승 구형 벤즈 택시를 타고 해변으로 향했다. 당시 싼마오와 호세가 낚시를 하고 자갈을 줍던 곳일는지도 모르겠다. 센 바람과 파란 바다. 우리는 해변의 바위에 말 없이 한참을 앉아 자갈을 주었다. 싼마오도 자갈을 주워 그림을 그렸다지.
다음날 새벽.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의 멋진 프런트직원에게 우체국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그대만 해도 주거지와 묘지에 문패번호가 없었기 때문에 싼마오는 우체국까지 매일 한 시간을 걸어 사서함의 편지와 소포를 받아왔다.
타이완에서 부쳐온 ‘비(雨)’(싼마오는 반 투명한 당면을 산에서 얼어버린 ‘비’라며 호세를 놀리곤 했다)가 바로 그 우체국에서 찾아 온 것이다. 프런트직원이 “5분 정도 가시면 있어요”라며 입구를 나와 손으로 가리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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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옛날 법원이 없어지고 엘리베이터가 들어섰다. 우체국의 문은 닫혀있었다. 이웃에 물어보니 문을 닫았단다. 아! 우체국까지 없어지다니. 조금 더 지나면 이 건물 전체가 없어지는 것 아닐까?
나는 햇살 아래 다소 멍해져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마라케슈에서 출발해 사하라사막 깊은 곳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던 그날 저녁. 호텔 식당에서 우연히 중국인들을 만났다. 그 중 세 명은 영국에서 유학 중인 지우링허우(90后, 90년대생 젊은이)였고 나머지 한 명은 베이징(北京)아가씨였다.
그들은 우리가 엘아이운에 갔던 이야기를 듣고는 탄성을 질렀다. 베이징(北京)아가씨는 그 천장이 아직도 있는지, 산양이 먹었던 잎의 식물이 아직 있는지를 물었고 지우링허우 여학생은 영국에 처음 갈 때 싼마오의 책을 챙겨갔다고 했다.
그 후 베이징(北京)아가씨는 혼자 엘아이운에 갔다고 한다. 사막이 모래 위에 ‘Echo’의 이름을 쓰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내왔다.
사하라사막에서 야영을 하던 날 밤. 홀로 모래밭 위에 누워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바라보며 <7시(七点钟)>이란 노래를 계속 들었다. 싼마오가 직접 작사하고 리종셩(李宗盛)이 작곡한 싼마오의 첫사랑 이야기로 <이생(今生)>이란 별제가 있다.
이생은 그렇게 시작되었지(今生就是那么地开始的)
운동장 잔디밭 지나(走过操场的青草地)
그대 앞으로(走到你的面前)
못 다한 한마디(不能说一句话)
펜을 들어(拿起钢笔)
일곱 자로 그대 손바닥에 써 보네(在你的掌心写下七个数字)
고개 한 번 끄덕이고(点一个头)
달아나 버린 그대여(然后狂奔而去)
첫 사랑 생각에 울적해 진 싼마오는 스페인에 간 후 다시 사막으로 향했다.
‘이생은 그렇게 시작되었지…’ 깊은 곳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는 이생. 싼마오와 우리의 이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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