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춰린·챵바단쩡투덩자바(江措林·强巴丹增土登扎巴): 1990년대생 스님의 성장기 III

진상욱 기자 amote521@gmail.com | 2015-11-11 1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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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 불교대학 사진
정치

 


자신이 자치구 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뽑힌 사실을 알고 생불 쟝춰린은 자신의 전 생불이 생각났다. 자치구 정치협상회의의 부주석은 비판적이면서도 친화력이 좋아 자치구개혁으로 명성이 자자했으나 입적 전 고생을 많이 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그가 젊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말에 그는 관직이라는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3년 1월 22일 티베트자치구 정치협상회의 제10기 1차회의 615명의 위원 중 생불 쟝춰린은 115명의 종교대표 중 한 명이었다. 


당시 그는 티베트불교대학을 졸업하기 전이었고 정치협상회의에 대해서는 사상정치과목에서 배운 것으로 알고 있었다. 


회의에서 그는 위원들이 관찰한 것을 적어 자신의 관점과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관련 부처가 이러한 제안들을 중시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정치를 하는 좋은 점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의 앞에 찾아왔다. 


지난 몇 년 동안 그가 어려움을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었다. 정치협상회의를 통해 정치에 참여해 정무를 논의하는 것은 그에게 분명히 새로운 기회였다. “제게 필요한 것이었어요 이 중요한 신분을 이용해 신도들과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쟝춰린사가 있는 창두지역 볜바현 진링향과 인접한 자궁(加贡)향 사이에는 갈대 숲이 있어 물과 토양을 보호하고 공기를 정화해준다. 규모도 자치구에서 드물게 큰 편이다. 사원이나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보호작업을 하다 보니 자금조달이나 작업시행이 순조롭지 않았다. 


생불 쟝춰린은 2015년 볜바현 자치구 정치협상회의의 다른 두 명의 위원과 공동으로 이 갈매 숲을 보호하자는 의안을 제출했다. 이 의안은 자치구 정치협상회의에 최종 채택되고 총회에서 칭찬까지 받았다. 


그는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뉴스사이트의 불교칼럼을 읽고 사원의 상주임원에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최근 시행한 종교정책을 묻기도 한다. 회의에 참가해서는 자신이 모르는 관련 정책 이야기가 나오면 적어 두었다가 인터넷을 검색해 본다.


정부의 기능부처와도 자주 연락한다. 그는 신앙이 다르다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모두가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불법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사람들이 법률에 따라 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하죠. 국가는 국민들이 더 잘 살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고요.”


그의 마음속에 국가의 법과 불교의 법은 호혜상승의 효과가 있다. 현지정부 역시 자치구 정치협상회의 위원 신분의 이 생불에게 기꺼이 문제해결의 도움을 청한다. 


짱베이(藏北)에서는 동충하초 캐기가 유행인데 진린향의 8개 마을 중 3개에서 동충하초가 자라자2013년부터 마을간에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지정부는 생불 쟝춰린을 찾아 생불의 신분으로 신양적인 측면에서 함께 이 갈등을 해결하고 마을간의 불필요한 소모전을 즉시 해결해 주기를 바랐다. 매년 여름 티베트 불교대학이 여름방학을 하면 생불 쟝춰린은 자신의 본 사원과 소속 사원으로 돌아가 불법을 전수하고 법회를 열고 사원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했다. 2014년 7월에는 쟝춰린사에 돌아와 시간을 내어 마을을 방문했다. 


활불은 마을 주민들에게 상호분쟁은 불법으로 볼 때 옳지 않은 방법으로 조상들이 부끄러워하고 후손들의 안녕을 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티베트 신도들은 생불의 이 말을 받아들였고 머지않아 8개 마을의 합의로 동충하초와 토지분쟁이 일단락되었다. 


혹자는 권력에 너무 오래 몸담다 보면 권력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하지만, 생불 쟝춰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 티베트에서 생불은 사원의 정책, 경제, 법사활동에 대한 직접발언권을 가졌다. 그러나 자치구가 세워지고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면서 생불의 권력은 종교 교의분야와 불법전파, 정상적인 종교 법사활동으로 제한되었다. 


생불 쟝춰린은 부차적인 다른 권력을 없애고 불교 교의상의 권력으로 돌아가면 생불이 더욱 순수하게 자신의 사명을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불 파뤄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생불 쟝춰린이 많은 젊은 생불과 달리 자신의 스승에 대해 지극히 전통적인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색랍사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스승은 지금도 티베트 불교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그는 물욕이 없고 젊은 스님들에게 정치가 아닌 불도의 진보를 추구할 것을 요구한다. 


생불 파뤄는 생불 쟝춰린이 스승의 영향을 받았다며 “그는 정치자본을 모으기 위해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당선되었을 때에도 수행자의 기질은 여전했다.”고 밝혔다.


관정(灌顶)

 


1,000m2가 채 되지 않는 대전에서 톄방라마(铁棒喇嘛)가 스님들을 인도해 불경을 읽고, 신도들이 한 줄로 벽에 붙어 서있다. 행렬은 대전까지 이어져 사원의 세 개의 벽을 따라 두 바퀴를 돌고 대문으로 빠진다. 


제8대 생불 쟝춰린은 보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왼손으로는 영저(铃杵)를 흔들고 오른손에는 보병을 들고 입으로는 불경을 외운다. 신자가 고개를 숙이고 그의 앞에 오면 오른손의 보병을 정수리 위로 한번 살짝 닿도록 하는데, 이것이 ‘관정(灌顶-세례)’이다.


관정은 밀교의 의궤로 일반인들이 밀교의 불도를 수행하려면 자격을 갖춘 그루의 위임을 받아 관정을 받은 사람이 수행을 할 수 있다. 


2015년 8월 14일 오후2시30분, 장수불(长寿佛)의 장수관정의궤가 곧 거행된다. 


생불 쟝춰린이 승포를 입고 한쪽 어깨를 드러낸 체 침전에서 나왔다. 맑은 여름날 니무(尼木)향의기온은 높지 않아 주민들은 긴 소매의 장포(藏袍)를 입고 허리를 숙여 기다리다 생불이 나온 것을 보고 자각적으로 몇 걸음 물러섰다. 


모자를 쓴 승려들의 대열이 생불 앞에서 불교악기를 연주하며 생불을 대전으로 모신다.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생불은 보좌에 올라 관례대로 갈색 발목부츠를 벗고 역대 생불 쟝춰린 보좌에 절을 세 번 올린 후 가부좌자세로 승려들을 이끌어 <심경(心经)>, <마합알랍호법기청문(玛哈嘎拉护法祈请文)>, <길상천모례찬문(吉祥天母礼赞文)> 등을 읽는다. 두 시간 후 관정이 시작된다. 

 


빽빽이 들어선 신도들은 평균 1분당 25명이 관정을 받는다. 3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장수보병이 오른손을 따라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온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갓난아기를 안고 와 생불 쟝춰린 앞으로 들고 관정을 받은 후 이름을 지어달라 부탁하는 신도도 있고, 혼자 움직일 수가 없어 사람들에게 부탁해 자신의 옷을 가져가 옷에 가지를 해 달라 부탁하는 신도도 있다. 


오후 4시 48분부터 저녁 6시 25분까지 방울소리가 끊이지 않고 장수보병이 2,183번 떨어졌다. 


의식 중에 근시인 생불은 자신이 콘택트렌즈를 반대로 낀 것을 발견하지만 의식을 중단할 수 없어 두 눈을 크게 뜨고 쉴새 없이 깜빡여 불편함을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의식이 진행되는 4시간 동안 그는 보좌에서 내려올 수도, 자세를 바꿔 앉을 수도 없고 양손을 쉴 수가 없어 시종이 물을 가져오면 한 모금 마시는 정도이다. 


관정이 끝나면 마치는 의식이 있다. 생불 쟝춰린이 의궤에 따라 장수보병을 거두는데, 이때까지도 신도들이 계속해서 사원으로 들어오면 다시 영저를 흔들고 보병을 들어 관정을 행한다. 


침전으로 돌아오면 거의 반신불수 상태가 되어 침대에서 꼼짝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복강발성이 효력을 발하는 순간이다. 불경을 읽을 때는 평소와 말할 때와 전혀 다른, 낮고 묵직하면서도 크고 낭랑한 음질이 나온다. 그러나 법사활동이 끝나고 다시 이야기를 하면 목이 잠겨 얼마 후에야 회복되곤 한다. 


신도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한다. 신도들의 눈에 그는 높은 보좌에 엄숙하고 경건하게 앉아 있는 곳에 있는, 무한한 법력을 지닌 부처이다.


이럴 때는 생불만이 생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 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쟝춰린의 생불생활에 ‘같은 부류의 사람’이 늘어났다. 


그는 또 다른 1990년대생 생불과 같이 기숙사를 같이 썼다. 전에도 알았지만 속 깊은 대화는 나눠보지 못했다. 2년간 함께 생활하면서 둘은 함께 공놀이를 하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등산을 하고, 공부하다 모르는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생불의 신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강사로 학교에 남은 후 생불 쟝춰린과 1980년대생 생불 파뤄은 강사들 중 두 명뿐인 생불이자 젊은이였다. 신분이 같다 보니 둘은 서로간에 타고난 믿음 같은 것이 있어 단도직입적으로 대화하며 더욱 편한 관계가 되었다. 


둘은 법사활동 때 자신이 겪은 난감한 일들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남모르는 슬픔도 이야기 한다.


사원에서 지내는 동안 생불 쟝춰린은 매일 아침7시에 일어나 아침예불을 드리고, 8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8시 반 정도부터 오후 1시까지 신자들을 진료했다. 짧은 점심시간 후 그는 대전으로 가 보통 6시 반까지 신도들에게 안수가지나 관정을 행한다.


저녁에도 자기시간은 없다. 신도가 찾아와 단독으로 만나기를 청할 때도 있고 병에 걸려 집으로 왕진을 부탁하는 사람도 있고, 정부의 관계자가 찾아와 근황을 이야기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보통 새벽 1시에나 잠자리에 눕는다.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생불 파뤄가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생불들은 한편으로는 남을 기꺼이 도우며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은 나만의 시간을 좀 가지면 안될까’, ‘좀 쉬면 안될까’라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자신의 소감과 견주어가며 그들은 이러한 ‘희생’에 대한 반향이 있는지 더욱 신경쓰게 된다.


생불 파뤄는 관정의식을 예로 들었다. 관정은 밀교의 의궤로 신중히 행해야 한다. 관정을 받으려면 관정의 내용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수행도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신도들이 관정을 전통으로 보고 법맥(法脉) 자체는 전혀 모르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무뎌진 상황에서 관정을 행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생불이 관정을 행하는 것은 신도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것인데, 신도가 스스로 수행 없이 단순히 법회에서 합장하고 불경만 읽고 관정을 받으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젊은 생불들은 이런 문제들을 토론하면서 자신의 신분과 노력이 진정한 효과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숙명


생불 파뤄는 식탁분위기가 매우 가라앉았다고 느꼈다. 


주변 사람들은 둘이 토론하는 불법의 학술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이 각자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하고 있다.


이때 생불 쟝춰린이 들어왔다. 그의 휘파람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불법을 토론하던 사람은 문제를 그에게 돌려 그의 생각을 물었다. 생불 쟝춰린은 추호의 망설임 없이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자 생불 쟝춰린 역시 실눈을 뜨고 덧니를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생불 파뤄는 문득 감동이 되어 눈 앞의 생불들이 언뜻 보기에는 여느 일반 젊은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독특한 파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생불 쟝춰린은 사원에서도 생불이라고 무게를 잡지 않는다. 


식사를 할 때 일반 스님들이 그의 발치에 앉아 수시로 차와 물을 따라주는데, 그는 그게 싫어 스님을 ‘쫓아내어’ 스님들도 시간에 맞춰 식사할 수 있도록 했다. 재미있는 기사가 있으면 중국어(표준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원의 스님들에게 통역(번역)을 해주며 모든 스님들과 공유한다.


가사만 입지 않으면 일상에서 그는 평범한 ‘지우링허우(90后-1990년대생) 같다. 


그는 불사활동이 아닌 장소에서는 검은 뿔테안경과 안경테가 큰 선그라스를 낀다. 식사를 할 때는 레몬 맛 탄산음료를 마시며, 식사 후에는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이다(益达)껌 두 알을 씹는다. 운전을 하면서 차오윈진(曹云金)의 만담을 들으며 표준어를 공부하고 경전구문까지 외운다. 타오바오(淘宝)에서 각종 사원용품을 구매하고, iPhone6 plus 휴대폰의 배경화면은 닌자거북이다. 영화, 특히 판타지물을 좋아하며 짱시(藏戏-티베트족의 전통극)와 <보이스 오브 차이나(the Voice of China>를 좋아한다. 휴대폰에는 불교음악도 있고 리듬감이 강한 서양음악, 나잉(那英)이 부른 드라마 <생황과 퉁소는 왜 검은가(何以笙箫默)>의 주제곡도 있다. 


생불 쟝춰린은 법고(法鼓)를 할 줄 알고 독학으로 드럼도 배웠다. 리듬감이 매우 좋다. 생불 파뤄는 가쥐파(噶举派) 미라르바(米拉日巴)도가의 42대 계승자로 전문 악단의 반주에 맞춰 도가를 부른다. 그는 생불 쟝춰린은 박자 판 가락의 박자도 읽을 줄 알고 불경도 읽을 줄 알아 도가를 리드해 낭송하는 사람으로 어울리며 가장 완벽한 법고수라 생각해 생불 쟝춰린을 악단에 들어오라 강력히 권하고 있다. 


그는 생불 쟝춰린이 폐쇄적인 성장기를 보냈음을 알면서도 사원에서 자란 생불들에 비하면 밝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회를 접할 기회도 없이 스승을 따라 공부만 하다 보니 성격적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외로웠던 어린시절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생불 쟝춰린의 삶에는 그 시절의 그림자가 아직 남아있는 듯하다. 


침선은 그의 취미가 되었다. 정서적으로 불안할 때면 그는 참선을 하며 안정을 되찾고 문제를 분석, 해결한다. 그는 격투기게임도 좋아해 NPC(논 플레이어 캐릭터)와 팀 협력으로 적을 무찌르고 나를 보호한다. 또한, 그는 닌자거북이를 좋아하는데, ‘보이지 않는 영웅’으로 사람들이 존재를 모르지만 누군가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집에 가면 어른들의 말씀은 잘 듣지만 지금의 어려움이나 마음 속 생각들을 많이 이야기하는 편은 아니다. 혼자 해결책을 찾는 데 이미 익숙하다. 


그는 심리학을 공부한 적이 있어 자아를 분석하는 법을 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서로 간의 거리감이 있는데, 자신의 경우 신분으로 인한 심리적인 거리감이 있지만 그 거리감이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니지는 않는다.


10년 전 자유를 추구하던 시절, 그는 자신이 생불이 아니었다면 의사가 되거나 작은 식당을 하나 운영하면서 중산층 정도의 수입으로 생활하며 홀가분하게 지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가설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않다. 일반인들은 이생에 못한 일을 다음 생에 기대할 수 있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 


“전 생불님들의 업적을 이어가고 싶어요. 모든 신도들과 사원, 스승님, 가족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무엇보다 역사와 국가에 대해 책임을 다 해야죠.” 


그는 윤회를 진심으로 믿으며 자신이 용수보살의 환생으로서 인간세상에 온 사명이 있음을 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숙명은 같다. 불법을 드높이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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